그가 온몸의 기를 모아 발로 보내는 문자

"너의 유일한 의사표현을 무시해서 미안해"

등록 2006.07.26 14:09수정 2006.07.2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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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3월 강원도 '번개' 때 만난 명근이의 모습입니다.

지난 3월 강원도 '번개' 때 만난 명근이의 모습입니다. ⓒ 김미정

저의 무심함으로 인해 기분 상했을 친구를 위해 이 글을 씁니다. 몇 해 전 인터넷 한 장애인 카페를 통해 전신마비장애를 갖고 있는 친구(35·정명근)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는 누워만 지내고 앉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으며, 그러기에 제대로 자신의 의사표현을 할 수도 없는 중증 장애인입니다.

학교는 다닌 적 없지만 독학으로 한글을 뗐고 컴퓨터도 혼자 공부해 수준급인 똑똑한 친구이지요. 누구나 보면 볼수록 본받을 게 많은 친구란 걸 느끼게 됩니다.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매사를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이 친구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는 멋진 친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의 대화수단은 '발'

그런데 이 친구의 유일한 의사표현 방법을 제가 본의 아니게 무시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35년 넘도록 한 번도 제 의지로 의사표현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몇 해 전부터 컴퓨터를 통해 조금씩 자기표현을 하고 카페도 만들어 지인들과 정기적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모임에 나와서는 한쪽 발을 들어 가만히 있거나 흔들어서 자신의 생각을 간신히 표현합니다. 그러니 그의 답답함은 시원스레 해결되지 않았지요.


그러던 지난 5월 경 휴대폰을 드디어 구입하고 자신의 생각을 문자로 지인들에게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컴퓨터를 사용할 때는 메신저 기능을 통해 간간이 문자만 보냈는데, 이젠 컴퓨터가 없어도 언제 어디서나 문자를 보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 친구는 컴퓨터 키보드나 휴대폰 버튼을 누를 때 모두 누워서 발로 칩니다.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누워서 키보드와 휴대폰을 이용하는 모습을. 진정 온몸의 기를 모아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동안 저도 이 친구가 직접 컴퓨터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일 이 친구의 집을 카페 회원 한 분과 방문했는데 그때서야 이 친구가 온몸을 이용해 휴대폰 문자를 찍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 그때 기분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는지요.

유일한 통신방법은 '문자메시지'

a 지난 20일 찾아가기 전날. 명근이는 미리 점심식사 걱정까지 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자 씹음!

지난 20일 찾아가기 전날. 명근이는 미리 점심식사 걱정까지 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자 씹음! ⓒ 박준규

a 내가 집으로 오는 도중 왔던 문자입니다. 또 씹었어요.

내가 집으로 오는 도중 왔던 문자입니다. 또 씹었어요. ⓒ 박준규

a 다음날 취재 중 전화가 왔는데 못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문자를 보냈군요.

다음날 취재 중 전화가 왔는데 못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문자를 보냈군요. ⓒ 박준규

a 취재중 온 전화. 명근이 어머니가 하신 모양입니다. 문자는 씹고 오후 5시가 넘어 어머님과 통화했습니다.

취재중 온 전화. 명근이 어머니가 하신 모양입니다. 문자는 씹고 오후 5시가 넘어 어머님과 통화했습니다. ⓒ 박준규

그날 이후 참 많은 걸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 친구가 제게 보냈던 문자들을 속된 표현으로 '씹었던' 일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양양에 있는 한 복지시설에 입소해 지내다가 요 며칠 춘천 집에 와 있으면서 얼마나 답답했으면 제게 문자를 보냈겠습니까. 그에게 있어 유일한 의사표현을 저는 아무런 생각 없이 무시를 해 버린 것입니다.

실은 저에게는 바로 확인하지 못한 문자나 부재중 전화에 대해선 거의 답장을 하지 않는 안 좋은 습관이 있습니다. 해서 여러 지인들에게 지적을 받고 있지요. 온몸으로 보낸 친구의 문자도 좀 늦게 확인했다는 이유로 무시해 버렸다는 사실이 제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요즘 누구든 휴대폰을 안 갖고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만큼 휴대폰이 많이 보급되었고, 문자메시지도 흔한 통신 수단이 되었지요. 난무하는 상업적 문자메시지들에 신경 예민해져 있는 사람들도 많을 테고요.

그래서 문자메시지를 귀찮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자메시지가 자신의 유일한 의사표현인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뿐만 아니라 문자메시지로 말로는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들 보낼 수도 있습니다. 저도 지금 부터라도 문자메시지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인간미 넘치는 내용이 오갈 수 있게 답장도 친절히 해주는 습관을 가져봐야겠습니다.

그동안 본이 아니게 문자메시지를 씹어 속상했을 친구 명근이에게 용서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명근아~ 문자 씹어 미안했다. 앞으로 문자메시지 오면 좀 늦더라도 답장 꼭 보내주마. 혹시 늦더라도 속상해 말고 기다려라.~"

덧붙이는 글 | <미디어다음>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미디어다음>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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