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방측이 제시한 합의안. 11번째 항에 '노조 탈퇴'를 전제로 위 10개 항에 합의한다는 문구가 있다. 사실상 노조탈퇴 종용으로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오마이뉴스
민주노총 광주지역일반노동조합 등에 따르면,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동 소재 ㄱ한약방 직원 임종숙(69)씨 등 8명은 지난 5월 중순 민주노총 광주지역일반노동조합(위원장 김광민)에 가입했다.
같은 달 19일 이들은 임종숙씨를 광주지역일반노조 ㄱ한약방 지회장으로 선출하고 본격적인 노조활동에 들어갔다.
대부분 40대부터 70대까지 적게는 5년에서 많게는 13년여 동안 한약방에서 장기 근속한 이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한 이유는 "외면당해 온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한 것"이다.
지난 13년간 이 한약방에서 일해온 정아무개(70) 할아버지는 "알고 보니까 법에서 보장해 주는 것들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었다"면서 "근로기준법 등 법을 지켜달라는 것이고 당연한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씨는 "당연히 해달라는 것을 해달라고 했는데 업장을 폐업해버려서 막막하다"며 "생계유지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임종숙 지회장 등에 따르면, 이들은 노조를 결성하기 전 4대 보험 미가입, 상여금 100% 삭감, 5년간 임금동결 등 불합리한 처우를 문제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노조를 결성했다.
이후 노조와 한약방 측은 3차례 교섭을 벌였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한약방 측은 형식상 분리 운영되고 있던 약재 도매업체를 사전 공지 없이 폐업 신고하고, 한약방 역시 최근 '6개월 휴업' 신고를 했다.
앞서 지난 6월 29일 한약방 측은 '합의안'을 미리 작성해 노조 탈퇴를 사실상 종용했다는 것이 노조측 주장이다. 이 합의안에는 ▲6월분부터 급여 10% 인상 ▲보너스 현재 수준 유지 ▲계약제로 근로계약서 작성 ▲전 직원 4대 보험 가입 등 모두 10개항이 기술돼 있다. 그러나 한약방 측은 11항에 '상기 사항을 노사간에 합의, 성실히 준수키로 하고 현 가입되어 있는 노조는 탈퇴키로 함을 조건으로 한다'고 못 박았다.
노조원들은 합의안의 다른 내용에는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노조 탈퇴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장아무개(57)씨는 "13년차가 월급 120만원이고 5년동안 한 번도 인상된 적이 없다"면서 "근무조건 개선 등을 위해 노조에 가입했는데 탈퇴하면 해주겠다 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2차 교섭하고나서 3차 교섭 하루 전 우리도 모르게 약재 판매업체인 약업사를 폐업신고해 버렸다"며 "너무 황당하다, 사장은 적자 때문에 그랬다는데 적자가 날 이유가 없다"고 진단했다.
박아무개씨 등에 따르면 한약방 측은 전체 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합의안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자 "노조 탈퇴를 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협상 못한다, 문 닫으면 닫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한약방 측의 행태는 노조를 인정하지 못 하겠다는 것으로 부당노동행위 논란을 낳고 있다.
한약방의 앞뒤 안 맞는 해고처리
노조와 광주광역시 동구보건소 등에 따르면, ㄱ한약방 대표 조아무개(60)씨는 지난 12일 자신의 아들 명의로 된 ㄱ약업사를 폐업 신고했다. 이를 이유로 조씨는 장씨 등 남자 5명을 약업사 소속이라면서 구두로 해고했다.
한약방 측은 폐업 사실을 모르고 13일 출근한 노조원들에게 퇴직금이 든 봉투를 건네면서 "사직서를 쓰라"고 했다. 이후 노조원들은 "위장폐업과 부당해고를 철회하라"며 지난 13일 이후 한약방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 14일 노조원 5명은 조아무개 사장을 상대로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및 부당해고'에 대한 구제 신청을 내고, 광주지방노동청에는 '특별근로감독' 실시를 요청해둔 상태다. 나머지 3명의 노조원도 조만간 구제신청을 할 예정이다. 한약방 측은 잇따른 폐업과 휴업에 대해 "수십억원의 적자가 생겨 약업사를 폐업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아무개(45)씨는 "월급을 지급하는 월말만 되면 '적자가 많아서 문 닫아야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며 "한약방 하면서 약업사 간판 하나만 더 달았을 뿐인데 무슨 적자타령이냐"고 반박했다. 노조 결성과 노조 탈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대한 위장폐업이라는 것이다.
위장폐업 논란과 함께 조아무개(60)씨 명의의 'ㄱ한약방'과 조씨의 아들 명의로 된 'ㄱ약업사'의 실질적 운영주체 문제도 논란이다.
서류상 두 업체로 구분돼 있지만 노조원들은 한약방과 약업사를 동일 사업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는 "한약방에 그냥 약업사 입간판을 달았을 뿐이고 큰 구분없이 일해왔다"며 "약업사는 따로 전화도 없었다, 실질적으로 약업사는 이름만 있을 뿐이었다"고 주장했다. 박아무개씨는 "모든 고용(구두)을 한약방 사장과 한 것이고 업무지시, 월급 수령 등을 모두 한약방 사장과 한 것"이라며 "아들은 명의만 그렇게 했을 뿐"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조아무개 한방약 사장은 지난 12일 약업사 폐업 조치에 따라 13일 오전 남자 직원 5명에게 해고 통보(구두)를 했다. 임종숙 지회장 등 남자 노조원들이 'ㄱ약업사' 소속 직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박아무개(52)씨 등 3명은 직장 건강보험 가입을 하면서 소속을 'ㄱ한약방'으로 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조치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