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에게 권하고 싶은 소리산 소금강

뜻밖에 찾은 산에는 숨겨진 비경과 아기자기한 산새가...

등록 2006.07.29 11:51수정 2006.07.2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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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국적인 이름의 '인이피 계곡'에서부터 소리산 산행이 시작된다

이국적인 이름의 '인이피 계곡'에서부터 소리산 산행이 시작된다 ⓒ 김선호

뜻밖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횡재수를 했다고나 할까? 팔봉산(강원도 홍천군)을 오르지 못해서 찾아간 소리산(경기도 양평군)은 생각지 못한 비경을 간직한 곳이었다. ‘소리산, 소금강’이라는 팻말을 발견했던 당시엔, ‘소금강’이라는 말이 지나치게 남발되는 건 아닌가 싶었다.

팔봉산 입구까지 갔다가 팔봉을 오르지 못한 이유는 비 때문이었다. 그날(7월 23일) 비가 왔던 건 아니다. 우기의 중간에 모처럼 햇살이 환한 날이었다. 폭우가 군데군데 상처를 남기기도 했지만 비에 씻긴 세상은 말끔하게 세수를 끝낸 말간 아기 얼굴 같이 깨끗하고 순수하기까지 했다.


a 숲과 계곡의 조화가 한폭의 그림같은 인이피계곡

숲과 계곡의 조화가 한폭의 그림같은 인이피계곡 ⓒ 김선호

강물은 태초의 물빛을 되찾은 것만 같았다. 팔봉산 앞자락을 넓게 적시며 흐르는 홍천강 물빛은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 푸르고 맑았다.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모처럼 만의 화창한 여름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팔봉산, 저마다 다른 모양과 다른 이름의 여덟 개의 봉우리가 화합하여 하나의 큰 산을 이룬 그곳의 상처는 예상보다 깊었다.

깊게 상처를 입은 산은 인간의 입장을 단호히 거부했다. 찾아간 하루전날 팔봉산에서 실족사가 있었고, 바위틈으로 물이 새어나와 미끄러우니 대단히 위험하다는 경고가 매표소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때 아닌 ‘입산금지’였다.

a 바위를 치며 흐르는 물소리로 귀를 헹구고

바위를 치며 흐르는 물소리로 귀를 헹구고 ⓒ 김선호


홍천강으로 합류하는 물줄기가 사방에서 흘러들면서 주변은 물놀이하기 적당한 계곡이 즐비했다. 아무데고 자리를 잡고 앉으면 그곳이 적당한 물놀이 터가 되어 줄만한 곳들이 널려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냥 돌아서기엔 뭔가 허전하여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다 혹시나 하고 물었다. 근처에 산행하기 좋은 곳이 없냐고. 그때 처음 들었다. ‘소리산’이라고. 강원도 홍천군과 경기도 양평의 경계에 있는 479m의 아담한 산이 ‘소금강’이라 불리는 까닭을 직접 가서 보고 싶었다.

a 나뭇잎에 쏟아지는 햇살로 마음을 헹구어 냅니다.

나뭇잎에 쏟아지는 햇살로 마음을 헹구어 냅니다. ⓒ 김선호


우연히 찾아 들었지만 ‘소금강’이라는 명칭이 결코 허울뿐인 이름이 아니었다. 입구 쪽 ‘인이피계곡’부터 심상치 않았다. 양평군에서도 한참을 산속으로 들어간 단월면에 있는 산이고 보면 숨겨진 비경에 속할 것 같은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아 들었다.

넓은 계곡을 흐르는 차고 맑은 물에는 벌써 일단의 등산객들이 물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일찌감치 등산을 끝낸 이들의 여유로운 물장난에, '인이피'라는 이국적인 이름을 가진 계곡의 보석 같은 물줄기에 한동안 넋을 잃고 주변을 살폈다.


a 작은 산들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소리산 주변

작은 산들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소리산 주변 ⓒ 김선호


계곡 틈으로 드러난 하얀 돌들을 보며 아이들은 대리석이 아닌가 하고 물었다. 그렇게 하얗게 씻긴 돌 틈으로 에메랄드보다 더 푸른 물줄기가 흐르는 계곡을 상상해 보라. 소금강의 위력은 그곳에서부터 빛을 발하였고, 한발 한발 산을 오를 때마다 오붓한 산새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입구에 들어서 계곡을 건너는 것으로 등산로가 시작되면 한동안 계곡을 옆에 끼고 산길을 오르게 된다. 적어도 이곳에선 물소리가 아름다워 ‘소리산’이 되었을 것이란 해석을 붙여도 될 것 같은 길이다. 물줄기가 품어내는 서늘한 기운으로 더울 틈도, 땀이 흐를 틈도 없다. 한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은 담근 손이 얼얼할 정도다.


a 까마득한 벼랑위에 위태롭게 자리한 수리바위와 노송들

까마득한 벼랑위에 위태롭게 자리한 수리바위와 노송들 ⓒ 김선호


계곡과 나란한 길이 끝나자 이번엔 오솔길이 조금씩 오르막으로 안내하더니 곧이어 암릉 구간이다. 길 오른편으로 깎아지른 듯한 벼랑이고 암릉은 벼랑 끝에 아슬아슬 하게 놓여있다. 독수리를 닮은 수리봉, 이 고개를 넘으면 번잡한 세상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출세봉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기묘한 형상을 빚어놓았다. 암릉 사이사이에 수피가 붉은 노송이 그린 듯이 서있어 구성이 치밀한 산수화 한 폭을 마주하는 듯한 풍경이다.

겨울엔 따뜻한 바람이, 여름엔 손이 시릴 정도의 찬바람이 나온다는 신기한 바람굴도 소리산의 명물이다. 암릉 구간을 넘으며 조금 힘에 든다 생각할 즈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참나무가 길 양옆으로 늘어선 흙길이 나타난다. 산행이 이토록 아기자기 하고 재밌었던 산이 또 있었던가 싶어 발걸음이 절로 가볍다.

a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여름엔 찬 바람이 나온다는 바람굴은 소리산의 명물이다.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여름엔 찬 바람이 나온다는 바람굴은 소리산의 명물이다. ⓒ 김선호


완만한 능선길이 끝나고 200여m 암벽구간을 즐기듯 오르니 어느덧 정상이다. 먼저 정상에 도착하여 간식을 들고 있던 등산객들이 아이들을 반겨준다. 한 주먹 사탕을 쥐어주는 분들도 계시고 비스킷을 봉지 째 건네주는 분들도 있다.

산을 오르느라, 어른들의 환대에 이래저래 아이들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라 정상에서의 조망은 그리 호쾌하지 못하다. 알고 보니 소리산(小理山)은 410m의 작은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있는 산을 뜻한다고 한다.

아기자기한 산새와 청정계곡을 가진 소리산은 산행을 시작하는 초보 산행객 들에게 권하고 싶은, 뜻밖의 비경을 만날 수 있는 산이다.

a 팔봉산 가는길에 만난 홍천강의 평화로운 풍경

팔봉산 가는길에 만난 홍천강의 평화로운 풍경 ⓒ 김선호

덧붙이는 글 | 방심하다 지갑과 자동차 키를 잃어 버렸다. 산 정상에서 주변의 풍광을 담을 생각으로 카메라를 꺼냈는데 가방이 한번 굴렀다. 별 생각없이 가방을 챙기고 내려와 보니 키와 지갑이 없어진 것이다. 당황할 새도 없이 다시 한번 정상까지 올라간 남편을 마음 졸이며 기다리던 시간은 어찌 그리도 길기만 하던지... 다행히 바위 틈새에 꽂혀 있는 지갑과 키를 찾아 무사히 돌아 올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덧붙이는 글 방심하다 지갑과 자동차 키를 잃어 버렸다. 산 정상에서 주변의 풍광을 담을 생각으로 카메라를 꺼냈는데 가방이 한번 굴렀다. 별 생각없이 가방을 챙기고 내려와 보니 키와 지갑이 없어진 것이다. 당황할 새도 없이 다시 한번 정상까지 올라간 남편을 마음 졸이며 기다리던 시간은 어찌 그리도 길기만 하던지... 다행히 바위 틈새에 꽂혀 있는 지갑과 키를 찾아 무사히 돌아 올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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