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왼쪽에서 두번째)이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서민경제 활성화를 위한 친기업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김주성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의 행보가 '과감'해 졌다. 진보 진영에서 욕먹을 각오도 한 모양이다. 자신에게 덧씌워진 개혁 이미지에도 미련이 없어 보인다.
그는 며칠 전 "지금까지 우리당이 가보지 않았던 전인미답의 길일지라도 두려움 없이 나설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번엔 다시 위기의 부여를 구하기 위해 소금산을 찾아 떠난 주몽에 자신을 빗대며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대장정'이라 이름 붙였다.
재벌총수 사면 어디까지
김 의장은 30일 영등포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경제회복을 위한 집권여당과 경제계의 뉴딜"이라며 대규모 경제인 사면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경영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수도권 규제완화 등을 약속했다.
단, 이 같은 집권여당의 '선물 보따리'에는 전제가 있다. "경제계가 투자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가시적인 조치를 결의해 달라"는 요청이다. 국내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신입사원 중심으로 신규채용을 늘리고 또한 중소기업과 연관된 하청관행, 취약계층 노동자에 대한 배려 등이다.
관심은 사면 '폭'에 쏠린다. 김 의장은 "폭넓은 대사면을 건의"하겠다며 "(노 대통령의) 적극적인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주 우상호 대변인이 밝힌 사면의 3가지 기준, 즉 ▲피해에 대한 변제 및 벌금, 추징금 완납한 경우 ▲동일 범죄로 재범하지 않는 경우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 김 의장은 "지난번에는 엄격한 조건을 제시했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건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주 전경련이 8·15 특별사면 대상으로 요구한 박용호·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을 포함한 55명에 부응한 조치다. 이목희 전략기획위원장은 "검찰 구형이 확정돼야 사면 요건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아직 기소되지 않거나 형이 확정되지 않은 이건희 삼성그룹회장, 정몽구 현대차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은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조건이 허락하면 많이 하자는 취지"라고 말해 형이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기업인이 항소를 취하하면 사면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경제심리 풀기 위해"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다음은 규제완화. 김 의장은 "전국적인 균형발전이 참여정부의 운영 방식"이라고 말해 수도권 '공장총량규제'는 현재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파주에 LCD공장 건설과정에서 배운 점은 하이테크니 고부가치 산업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말해 환경이나 보건 등에 관한 규제는 부분적으로 풀어줄 수 있음을 시사했다.
작년 연말 어렵게 통과한 출자총액제한제를 폐지하겠다는 것에 대해서는 "경제계가 끊임없이 주장해왔고 경제 심리에 끼치는 영향이 있다"며 배석한 이목희 의원이 설명했다.
또한 경영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에 대해서 김 의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적대적 M&A에 대해 방어 수단이 취약하다"며 "다른 나라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방식을 취합해서 폭넓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 "국회 폭파하고 싶다는 말 들으며 절망"
이 같은 결단을 내리기까지 김 의장의 고민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 의장은 "지금은 서민경제에 관해서는 비상상황이기 때문에 이런 경제계의 요구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고려하고 적극적으로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기업인 대사면을 요구한 데 대해서도 김 의장은 "개발독재시대 정경유착의 범죄를 반복할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지만 서민경제에 관해 민심이 극도로 긴장하고 있다"며 "가끔씩 택시를 타면 국회를 폭파하고 싶다는 택시 운전사들이 말씀을 들으면 자괴감이 들고 절망적"이라고 토로했다.
한 측근은 "균형을 중시해온 (김근태 의장) 입장에서 쉽지 않았던 결정"이라며 "하지만 열린우리당 강령이 허용하는 선에서 모든 걸 깨자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측근은 "현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갑작스런 조치가 아니"라며 "지난 2, 3년 동안 꾸준히 준비해 왔던 것"이라고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입장이다.
김 의장은 내일(31일) 당장 대한상공회의소를 방문하고 뒤이어 전경련,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을 방문한다. 필요하면 재벌 총수도 개별적으로 만나 협조를 요청하겠다는 계획이다. 그간 이미 CEO 출신인 이계안 비서실장이 재계인사들을 접촉해 왔고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뤄왔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청와대, 정부와의 사전 조율은 없었다. 김 의장은 7·26 재보선 완패 이후 더 이상 청와대와 정부에 끌려 다니지 않고 당이 나서서 국정 주도권을 쥐겠다는 뜻을 밝힌 터. 이번 간담회에서도 "정부에게만 맡겨 놓지 않겠다"고 말했다. 특히 경제인 사면의 경우 법무부·청와대와 인식차가 존재하고 있어 여권 내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재계 다음은 노동계...
한편 재계와 1차 대타협을 이룬 뒤, 바로 노동계로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김 의장은 "노동계에 요청할 사항은 요청하고 노동계를 지원할 수 있는 사항은 적극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문제 등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우상호 대변인은 "유럽의 경우 노·사·정이 동시에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냈지만 우리의 경우 노사정위원회가 시간만 보내고 있다"며 "우리당이 나서서 재계, 노동계, 정부를 설득하고 개별 대타협을 이뤄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간도 길게 끌지 않겠다고 한다. "가능하면 9월 정기국회 전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고 한 측근은 설명했다. 정계개편론 파고에 맞선 김 의장의 자강책이 어떤 결과로 귀결될지 주목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