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구호단체인 한국JTS가 북한의 수해 주민 긴급 구호를 위해 마련한 밀가루와 라면이 3일 인천항에서 컨테이너에 실리고 있다.연합뉴스 이광빈
북한이 어제(1일) 8·15축전 취소를 통보해왔다. 물난리 때문이라고 했다. 8·15축전만이 아니다. 지난달 30일에는 아리랑공연 취소도 통보했다.
물난리가 8·15축전 취소의 가장 큰 이유인 건 맞다. <경향신문> 지적대로 아리랑 공연과 8·15축전은 외화수입원이자 체제선전의 수단이다. 물난리 규모가 미미하다면 굳이 접을 이유가 없는 행사다.
북한의 물난리 규모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고 있다. 북한 관영언론의 보도와 대북지원단체의 추정을 종합하면 사망·실종자만 3000여 명, 수재민이 13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북한 최대의 곡창지대인 황해도를 비롯해 농경지 상당부분이 쑥대밭이 됐다고 한다. 장비가 없어 복구작업을 인력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시급히 정리해야 할 문제가 있다. 대북지원 문제다. 민간단체는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국제구호단체인 한국JTS는 내일(3일) 콘테이너 8개 분량의 구호 식량 등을 북한에 보낼 예정이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도 오늘 지원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다행스럽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북한의 식량 부족분은 연간 100만톤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부족분의 대개를 남한 정부가 지원해 왔다. 하지만 미사일 발사 때문에 지원을 끊어버렸다. 그 탓에 북한은 '일상 부족분'을 메울 방법을 잃어버렸다. 그러던 차에 물난리가 나서 '추가 부족분'까지 짊어지게 됐다. 도합 수십만 톤이다.
남한 민간단체의 지원만으로 식량난을 해결할 수 없는 건 자명하다.
이제 물을 때가 됐다. 정부의 입장은 뭔가? 명시적인 대답이 없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가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 적은 있다. 하지만 정부가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에 지원한 식량은 대략 10만톤이다.
정부의 운신 폭은 극히 좁다. 식량 지원과 6자회담을 연계해 버린 터다. 입장을 180도 돌리려면 '널뛰기 정권'이라고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정부가 제 머리를 풀 수 없다면 여론과 국회가 길을 열어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해당 상임위인 국회 통일외교통상위가 대북 지원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회의 일정을 잡았다는 소식은 없다. 설령 회의가 열린다고 하더라도 한나라당이 흔쾌히 동의할지는 의문이다.
대북 지원 언론마저 '심드렁'
언론도 심드렁하다. 오늘자 신문 중에서 대북 지원문제를 비교적 비중있게 다룬 신문은 <경향신문>과 <한겨레> 정도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남한 내부에서 대북 지원에 합의를 본다고 그게 끝일까? 아니다.
대한적십자사가 지난달 26일에 대북지원을 제의했지만 북한은 이를 거부했다. 표현은 완곡했다. "성의는 고맙지만 일단 자체적인 힘으로 복구를 해 보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혼란에 빠진다. 북한의 물난리 규모가 막대해 시급히 대북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건만 북한은 "일단 자체적인 힘으로 복구를 해 보겠다"고 했다. 그럼 물난리 규모가 크지 않은 건가?
그건 아니다. 북한은 한국JTS의 구호품은 받기로 했다. 이 구호품을 평안남도 양덕군 수재민을 지원하는 데 쓰겠다고 약속까지 했다고 한다.
어떻게 된 걸까? 단서가 하나 있다. 한국JTS는 순수 민간단체다. 반면 대한적십자사는 북한 입장에선 '준 당국'에 해당한다. 대한적십자사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남북적십자회담도 열어야 한다. '준 당국회담'이다.
한반도 위기관리를 위해서는 남북 당국간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게 경화증에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어제 그랬다. 자신의 방북 문제와 관련해 "일방적으로 가겠다고 해서 가게 되면 사람만 이상하게 되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 이런 말도 덧붙였다. "저쪽(북한)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해야 갈 수 있는 것 아니냐."
무슨 말인가? 북한이 대문은 물론 쪽문까지 막아버렸다는 얘기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정부의 기본 입장은 북한의 물난리 지원을 지렛대 삼아 당국간 교류의 계기를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8·15축전이 열리면 당국 대표단 참가도 가능하니까 또 하나의 대화통로가 열릴 것이라고 기대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일장춘몽이 돼 버렸다.
다른 계기는 없는 걸까? 북한 전문가들은 분수령을 9월로 보고 있다. 9월에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에서 남한 당국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 따라 남북 당국간 경색국면이 '일시'로 끝날지, 아니면 '장기'로 흐를지가 결정 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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