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저금통' 돼지를 잡았습니다

1년 6개월 동안 모은 저금액... 모두 124만원

등록 2006.08.07 18:55수정 2006.08.07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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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중학생이 된 딸을 데리고 오랜 친구가 내 집을 방문하였다. 친구는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데다 3남매의 엄마인지라 이래저래 바쁜 일이 많아 좀처럼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그랬는데 이번에 막상 KTX를 타고 보니 시부모며 3남매의 엄마라서 늘 바쁘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었다. 서울역에서 고속철을 타니 두 시간도 채 안되어 대구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친구에게 있어 이번 여행은 거슬러 올라가 보니 친정이나 언니 집 방문이 아닌 순수 친구 집 방문으로는 결혼하고 15년만에 이뤄진 '특박'이었다. 때문에 1박 2일이라는 짧은 여정이었지만 함께 대구시내를 거닐며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수다를 떨면서 하루를 보내자니 그 '순간'이 무척 즐거웠다.

원래는 친구가 2박 3일 머물기로 하였기에 하루는 시내의 호텔에서 우리끼리 속닥속닥 수다로 날밤을 새우고 나머지 하루는 내 집에서 보내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친구는 대식구의 안방마님이다 보니 떠나올 때와는 달리 이틀을 외박하기가 쉽지 않은가 보았다.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또한 반갑지 아니한가(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삼일 전부터 생전 안 닦던 창틀까지 닦곤 했는데…. 친구는 내 집에서 한나절 머물고는 귀경 기차에 몸을 실었다.

친구는 떠나기 전 나의 두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 사먹으라며 '배춧잎' 한 장씩을 건네주었다. 과자는 간만에 이미 분에 넘치게 먹었기에 나는 아이들에게 저금통에 넣을 것을 권하였다. 그러자 첫째가 장롱 안에 있던 생수저금통을 거실로 들고 나와 친구가 보는 앞에서 지폐를 두 번 접어 넣는 것이었다.

1년 6개월 동안 저금했던 생수저금통.
1년 6개월 동안 저금했던 생수저금통.정명희
"아니, 이게 다 뭐야?"
"들어나 봤나. 생수저금통이라고."

친구는 생수통이 저금통인 것에 1차로 놀라고 그 속에 든 만만찮은 지폐에 2차로 놀랐다.


"재미있제?"
"야, 재미는. 당장 은행 갔다 넣어라. 누가 들고 가기 딱 좋겠다. 지폐 위주로 모았으니 무겁지도 않고 말야."

"우리 집에 무슨 도둑이 들겠다고?"
"아무리 없어도 도둑이 가져갈 것은 있어. 그리고 이걸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없는 도심이 저절로 생기겠다. 빨리 꺼내서 은행에 맡기고 새로 시작해."


설마, 그럴 리야 없음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충고를 들은 이상 이전처럼 태연하게 생수저금통을 바라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원래의 계획인 가득 채울 때까지 넣는 것을 포기하고 친구를 보낸 그 저녁 당장 꺼냈다.

도대체 얼마일까 궁금해 하며 네 식구가 시끌벅적하게 지폐와 동전을 분류하였는데 허걱! 124만 몇 천원이었다. 지폐가 110만원이고 동전이 14만원 조금 넘었다. 생수저금통에 관한 기사를 쓴 것이 지난해 3월 15일이었으니 얼추 1년 반 조금 못되는 기간의 저금액이 되는 셈이었다.

생수저금통의 돈을 정리하니 모두 124만원이 나왔습니다.
생수저금통의 돈을 정리하니 모두 124만원이 나왔습니다.정명희
지폐의 부피로 가늠해 보건대 만약 만원 권 지폐 위주로 넣어서 생수통을 가득 채운다면 천만원은 너끈히 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적으로는 우리 집 정도로 넣으면 한 십년은 걸릴 것도 같았다.

다음날, 잘 도착하였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서 '니 말에 최면이 걸려 만장일치로 생수저금통 털 것에 동의'했고, 그 돈이 모두 백만원이 넘었다고 하니 친구는 그렇게나 하면서 깜짝 놀랐다.

"그렇게 많았어?"
"응, 덕분에 '돈 잔치' 했다. 후후."

아무튼, 친구의 우연한 일침에 생수저금통의 돈은 생각보다 빨리 도중에 꺼내지게 되었다. 그동안은 전혀 답답하지 않았는데 막상 저금통 속을 비워내고 나니 내 속이 다 시원하였다. 다른 가족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론 빈 털털이가 된 생수저금통은 다시금 조금씩 배를 채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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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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