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팔담의 아름다운 운무고성혁
내려오는 길에 작은 복숭아 4개를 우리 돈 4,000원에 사서 나누어 먹었다. 작고 볼품은 없었지만 맛은 있었다. 북측 식당 목란각에서 비빔밥을 먹었다. 북측 안내원 아가씨들이 입구에 서서 무언가를 얘기하며 까르르 웃고 있었다. 아, 꽃다운 방년에는 풀잎 스치는 소리에도 웃는다더니, 그렇구나. 이곳 또한 조국의 강산이 분명하구나.
식당 유리문 한 편을 막고 '고정문'이라고 붙여 놓았기에 문득 내 성(姓)과 관련한 한 생각이 떠올라 안내원 아가씨에게 싱거운 유머를 건넸다.
"이 곳에 왜 제 동생이 이렇게 서 있습니까?"
영문을 모르는 아가씨들이 의아한 모습으로 재미있다는 듯 주위로 몰려들었다.
"아니, 제 동생 정문이가 왜 이렇게 종일 서있어야만 하냐고요."
그때까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던 안내원들에게 이름표를 보여주며 재차 말했다.
"제가 고성혁입니다. 그러니 고정문이는 제 동생이지요. 제 동생을 이렇게 세워만 놓으니 제 기분이 좋지 않단 말입네다."
아가씨들이 발간 볼이 되며 웃어줬다. 그러면서 아무런 낯가림 없는 얼굴이 되어 남쪽의 내 조카들처럼 내 옆에서 재재거렸다. 나 또한 행복해졌고 이 모습을 본 일행들도 즐거운 낯빛이 되었다. 6.15 공동선언 이후 6년의 세월은 그렇게 우리들에게 가까이 다가서 있었다.
오후에는 바다가 막혀 호수가 되었다는 삼일포를 돌아봤다. 삼일포의 모습도 괜찮았지만 훼손이나 병충해의 피해가 전혀 없는 소나무들이 촉촉이 내리는 비와 함께 가뿐한 모습으로 서있어 더욱 좋았다.
금강산의 소나무들은 거개가 몸체에 엄격히 절제된 모양의 붉은 홍조를 띄고 있을 뿐 아니라 수령 또한 오랜 것들이어서 쉬이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온 몸에 은은히 서려있다. 그래서인지 금강산의 소나무만을 '금강송'이라 하여 따로 부른다고 한다.
붉고 고귀한 모양의 소나무들에게서 넘쳐나는 높은 품격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이를 황송(皇松)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몇 번이고 속삭였다.
"저 모양을 봐, 저건 임금님의 품격이야! 너무나 눈이 부셔!"
삼일포 관광에 이어진 교예공연의 관람은 그들의 기막힌 기예에 대한 감탄과 더불어 그들이 살아왔을 삶의 고통에 대한 유추로 눈시울이 젖어 들게 했다. 얼마나 많은 훈련이 있었을까.
어린 시절 그들이 가졌을 고통과 번민에 대해 동시대 부모로서의 짠한 마음이 떠올라 순간적으로 눈시울을 붉히다가 얼핏 아내를 돌아보니 그녀 또한 같은 생각이었던지 나를 돌아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건대 교예공연은 환상적이었다. 더러는 명쾌하고 씩씩하게, 그리고 더러는 우아하고 아름답게 꾸며져 그들의 주장처럼 세계 최고수준이 틀림없었다. 특히 칼끝을 물고 하늘을 날며 온갖 재주를 보여주던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은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저녁 전에 어제의 멋진 모습을 떠올리며 다시 온천을 향했다. 그리고 고성항(장전항)에서 바다를 보며 저녁식사를 했다. 식후에는 일행들과 함께 온정각에 자리 잡은 노래방에서 제각기의 짝꿍들과 남측노래를 마음껏 불러댔다..
이튿날 오전 만물상을 올랐다. 만 가지 형상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 만물상이다. 북측 안내원이 귀엽고 아름다운 억양으로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설명을 해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