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렉스 시계하면 아픈 추억이 하나 있다.
40여 년전, 시골에서 목회를 하던 아버지께서 총회일 때문에 자주 서울을 오가셨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서울 출장을 다녀오신 후 시계를 하나 차고 오셨다. 말씀인즉슨, 서울에서 집에 내려오기 위해 열차를 기다리던 중, 어떤 남자가 다가오더니 속삭이는 말로, ‘이 시계가 롤렉스인데 급히 처분하려고 한다, 조금만 내고 사라‘ 라고 말하더란다.
당시 얼마를 주고 사셨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40여년전에 시골에서 목회를 하던 때라, 생활이 넉넉할 리 없고 그래서 아버지께서도 큰 돈을 지니고 있을 턱이 없으셨다. 그런데도, 아버지께서는 그 유혹에 넘어가 당시 가지고 계시던 돈을 몽땅 털어서 그 롤렉스 시계를 사셨는데, 그만 며칠 지나지 않아 가짜로 드러나면서 시계가 멈춰버렸다.
고칠만한 고장이 아니라 시계 자체가 엉터리 시계였던 것이다.
그 시계를 사시면서 아버지께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셨을까? 또 살까말까 고민하시다가 결국에는 그 꾐에 넘어가셨을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그 일로 아버지께서는 마음에 큰 상처를 받으신 것 같았다.
최근에도 버스를 타면 간혹 건장한 남자 두어 명이 버스에 올라 회사 부도로 인해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판다면서 반 강제적으로 시계를 돌리는 일을 목격한다. 어릴 적 롤렉스 사건을 회상하면서 가능한 들으려하지 않지만 안타깝게도 꼭 한두 명은 산다.
요즘에는 길거리에 나가면 단돈 5천원에서 만원짜리의 시계도 명품처럼 보이는 시계들이 즐비하다. 차라리 그런 시계를 사서 차고 다니는 게 속편하다. 그 시계에 ‘이 시계는 얼마짜리요’라고 가격표가 붙어있을리 만무하다. 만원짜리 시계를 차고 다니나, 백만원짜리 시계를 차고 다니나 시간은 다 똑같이 맞고 똑같이 흘러간다.
연예인과 부유층이 단돈 몇 만원짜리 시계를 수백에서 수천만원이나 주고 샀는데, 알고 보니 가짜였다는 보도가 나온다. 사기를 당한 그들은 얼마나 속이 쓰릴까? 우선 그들의 마음부터 헤아려 본다. 속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무척 상하고 사기꾼에게 당했다는 것을 외부에 특히, 팬들에게 절대 알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그들의 명예를 위해 실명은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명단이 공개되지 않는다고 해서 유명 연예인들의 명품시계 사기 사건이 없던 일로 가려지지는 않는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은 다 알고 있고, 아마 입소문을 타고 '누구누구가 속아서 명품시계 수천만원짜리 구입했다네'하고 곧 소문이 날 것이다.
명품 시계라는 말 한마디에, 그것도 영국 왕실에서 애용한다는 말 한마디에 그렇게도 쉽게 넘어갔다는 그들을 보면, 우리나라는 사기꾼들의 왕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브랜드라는 것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이다.
"영국 엘리자베스여왕, 모나코의 그레이스 켈리 왕비 등 세계 왕실에 한정 판매해 온 100년 전통의 스위스 명품시계인데 대중화를 위해 한국 등 각국에서 판매를 개시했다" "세계 인구의 단 1%만이 이 시계를 애용한다“는 거짓 홍보에 정신이 나간 것이다.
그것도, 명품 이미지를 더 끌어올리기 위해 대형 특급호텔에서 유명 연예인과 부유층 고객을 초청해 '런칭쇼'까지 열어서 넋을 빼놓았다니 가히 그 사기극이 하늘을 찌른다, 누가 넘어가지 않을쏘냐?
허영심만 교묘하게 자극하면 이렇게 대박을 터트릴 수 있다는 전형을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빙산의 일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 시계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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