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관리사무소가 개인정보 수집처?

과도한 개인정보 요구... 상업적 목적 이용 우려

등록 2006.08.11 15:05수정 2006.08.1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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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받고 있는 입주자 명부. 생년월일, 휴대전화, 차량번호, 근무처, 가족 생년월일까지 기재하도록 돼 있다.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받고 있는 입주자 명부. 생년월일, 휴대전화, 차량번호, 근무처, 가족 생년월일까지 기재하도록 돼 있다.허환주
경기도 파주에 살고 있는 나아무개씨. 나씨는 작년 8월 아파트에 입주할 때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주민등록번호부터 휴대전화 번호까지 개인 신상 정보를 적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나씨가 개인 신상이 필요한 이유를 묻자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급한 상황이 생겨, 주차된 차를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거나 화재가 났는데 집에 사람이 없는 경우 등 비상시 긴급연락을 위해 개인정보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민 끝에 나씨는 누군가 자신의 개인정보를 관리한다는 것이 불쾌해 집 전화번호와 이름만 적어 넣었지만 불쾌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주민등록번호까지 수집하는 관리사무소

적지 않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주민등록번호, 가족 사항, 전화번호, 휴대전화 번호, 사진 등 지나치게 상세한 개인정보를 입주민들에게 요구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사례는 나씨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올해 3월 서울 홍제동에 입주한 김아무개씨도 아파트에 입주할 때 나씨와 똑같은 일을 겪었다. 과도한 개인정보 요구가 불쾌했지만, 알려주지 않으면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주민등록번호부터 개인 전화번호까지 모두 적어주었다. 하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이 같은 사연들은 인터넷에도 올라오고 있다. '시민행동'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한 시민은 포털사이트 '다음'에 올린 글에서, 자신도 이와 같은 일을 겪었다고 전했다. 이 시민은 얼마 전 새 아파트에 입주했는데,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세대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필요하다며 가족들의 인적사항과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 시민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주민등록등본까지 필요할 것 같지 않았지만, 안 내겠다고 하면 아파트 관리소와 마찰이 일어날 것 같아 결국 요구 사항들을 모두 적어주었다.

그러나 관리사무소 쪽에서는 아파트 관리를 위해 개인정보 수집은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며, 새로 입주하는 이들에게 개인 신상명세서를 요구하는 것을 관행처럼 여기고 있다.


서울 성산동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아파트 입주민들의 기본적인 정보를 알아야 아파트를 관리할 수 있다"며 "한 가구에 몇 명이 사는지, 이름과 전화번호가 무엇인지 등을 알아야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비상연락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렇게 모인 개인 신상 정보들이 유출돼 상업적인 목적 등으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올해 초 한 아파트 관리소에서 관리하던 입주자 전화번호가 인터넷 서비스업체에 해킹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또한 몇몇 입주자들은 자신들이 알려준 적이 없는데도, 주변 건축사무소에서 집을 리모델링해라, 화장실을 고치라는 등 전화 연락을 받는 일이 많다며, 이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등에서 임의로 수집한 개인정보가 당사자 동의 없이 유출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개인정보 관련 법률로는 제재 불가능

서울의 한 아파트 모습.
서울의 한 아파트 모습.허환주
주미진 '함께하는 시민행동' 정보인권국 연구원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수집하고 있으며, 아파트 입주자들이 개인정보 문제와 관련해 제기하는 민원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김희은 한국정보보호진흥원 연구원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제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아파트 입주자들의 개인정보 유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개인 정보에 관한 법률로 '공공기관의 개인정보에 관한 법률'(1996년 제정)이 있지만, 이 법은 관공서, 금융기관 등 공공기구나 인터넷의 개인 정보 문제에만 적용된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등 민간 기구의 개인정보 수집·유출 문제는 이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4년 12월 열린우리당에서 '개인정보보호 기본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민간 기구에서 업무상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이들까지 적용 대상으로 포괄하고 있다. 그러나 발의된 지 1년여가 지났음에도 이 법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돼 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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