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노인 보호소' 명칭 바꿔주세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님께 드립니다

등록 2006.08.15 20:02수정 2007.06.1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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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치매노인과 그의 가족들에게 새로운 명칭을 선물해 주세요.

치매노인과 그의 가족들에게 새로운 명칭을 선물해 주세요. ⓒ 김혜원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님 안녕하세요. 저는 여든다섯이 되신 시어머니와 일흔넷, 예순아홉의 친정 부모님을 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김혜원입니다. 공무로 바쁘실 장관님께 이렇게 편지를 드리게 된 것은 연로하신 저의 부모님 그리고 제 부모님과 비슷한 상황에 계실 수많은 어르신들의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에 노인복지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던 저는 지인의 안내로 지난 8월 8일 치매노인주간보호소(서초치매노인주간보호소)를 탐방한 바 있습니다.(이어지는 기사 참조) 시설을 방문하고 가장 놀라웠던 것은 시설 분위기나 시설을 이용하시는 어르신들 모습이 제가 그동안 막연하게 상상해 왔던 '치매노인보호소'와는 전혀 달랐다는 점입니다.

시설을 이용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스스로 용변이나 식사를 해결하실 수 있는 정도의 경증 치매노인들이라 분위기가 아주 밝고 명랑했습니다. 언뜻 보기에 정상적인 다른 어르신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았습니다. 시설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경증치매의 경우 인지나 운동 능력 등이 약간씩 떨어질 뿐 보통 노인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치매노인을 상상했다면 당연히 놀랄 것이라고 합니다.

경증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의 경우 시설이나 의료진의 적절한 처방과 치료 그리고 약물투여가 이루어지면 증세가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점차로 떨어지는 인지와 운동능력 역시 훈련과 교육 등 적절한 자극을 통해 많은 호전을 보인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 시설을 이용하고 있는 노인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시설을 이용하는 노인 분들의 수가 적은 데는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홍보가 부족한 게 한 이유일 것입니다. 하지만 '치매노인주간보호소'라는 명칭이 주는 거부감 또한 시설을 꺼리는 한 이유가 된다고 하니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 역시 '치매노인주간보호소'라는 명칭이 주는 느낌 때문에 '주간보호소'라는 명패가 달린 방문을 열고 들어서기까지 다소의 두려움을 가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치매'와 '보호소'라는 명칭 속에는 우리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강요돼온 왜곡된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누군가를 보고 '치매환자' 운운 발언을 하면 거의 인격모독입니다. 경중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실변, 환각, 환청, 환시, 가해와 자해 등의 치매증상을 빗대어 '어리석고 우둔한 사람, 정상적인 정신상태를 잃어버린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호소' 역시 '치료소'나 '놀이방', '그룹 홈'과 같이 유사하게 쓰일 수 있는 다른 말과는 달리 '단절'과 '격리' '폐쇄' 등 부정적인 의미를 떠올리게 합니다. '주간치매노인보호소'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단지 노인들을 보호하거나 수용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유독 '노인의 보호'에만 중점을 두어 '보호소'라고 명명한 것은 생각해 볼 일입니다.

보호소는 격리·폐쇄 등 부정적 의미를 떠올립니다


a 밝고 쾌활하신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밝고 쾌활하신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 김혜원

올해 일흔셋이 되신 제 친정아버지도 얼마 전부터 초기 치매증상을 보이고 계십니다. 아직은 약한 경계성 증상을 보이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드릴 의향으로 '치매노인보호소' 이야기를 꺼냈다가 아버지의 노여움을 산 일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벽에 똥칠을 하냐? 사람을 못 알아보냐? 애비가 늙었다고 자식이란 것이 애비를 이렇게 무시하고 자존심을 건드려도 되는 거냐?"하시며 어찌나 화를 내시던지…. 말을 꺼내놓고 수습하느라 여간 진땀을 흘린 것이 아니랍니다. 이버지 역시 '치매'나 '보호소'라는 명칭이 주는 부정적 의미를 잘 알소 계셨던 것입니다.

장관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지난 3월 보건복지부가 '치매'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용어를 찾고 있으며 빠르면 5월부터 변경된 명칭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발표를 한 바 있습니다. 국민들의 요청이 있기 전에 먼저 나서서 명칭 변경 등 노인복지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려는 복지부의 시도에 당시 많은 국민들은 공감과 지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변경된 명칭을 사용하게 될 거라 예상했던 5월이 지나고 이미 8월도 중순에 들어서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명칭변경이라는 반가운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치매라는 질병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겪고 있는 환자나 가족들은 아직도 명칭변경의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치매라는 단어의 명칭 변경과 더불어 격리나 단절 등을 의미하는 '보호소'라는 명칭도 좀 더 순화되고 친근감 있는 단어로 변경해 주시기를 보건복지부 장관님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독자 여러분들께도 도움을 구하고 싶습니다. '치매노인주간보호소'는 반드시 우리의 부모님만 이용하는 시설이 아닙니다. 급속한 노령화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조만간에 우리자신과 우리의 후손들이 사용해야 할 시설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명칭 변경이 중요합니다. 우리 부모가 이용하고 우리가 이용해야할 '치매노인주간보호소'. 과연 이를 대체할만한 좋은 명칭은 없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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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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