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신사.박철현
그러나 야스쿠니신사가 세워진 배경이나 그 본질을 들여다보면 고이즈미 총리의 이 같은 논리가 얼마나 모순과 궤변으로 가득 차있는지를 알 수 있다.
야스쿠니신사는 1869년 메이지 천황의 명으로 창건됐다. 당초 명칭은 '도쿄초혼사'. 그 전 해에 일어난 '무신(戊辰)전쟁'에서 죽은 정부군(사쓰마하번, 조슈번) 병사들을 신으로 모시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전쟁에서 패했던 나가오카번, 요메자와번 등의 병사들은 여기에 들어가지 못했다.
명칭이 야스쿠니신사로 바뀐 것은 '세이난(西南)전쟁'이 일어나고 2년 후인 1879년. 정부군 병사 6971명을 모시기 위해 천황이 직할하는 격이 높은 신사가 됐다. 이 때부터 신궁을 설치하고, 신사의 형태를 정식으로 갖췄다. 그러나 이 전쟁을 일으켰던 메이지 유신의 영웅 사이고 다카모리는 '국적'으로 규정, 합사하지 않았다. 물론 정부군보다 많았던 사이고 군의 전사자들도 합사하지 않았다.
이후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태평양전쟁을 거치면서 전사한 군인들을 '신'으로 모셨다. 그리고 패전 전까지 '신'의 위치에 있었던 천황이 직접 대제(大祭)를 열어 참배했다. 실질적인 관리는 육군성을 중심으로 군부가 맡았으며 누구를 모실 것인지도 사실상 군부가 결정했다.
신도는 본래 선조나 자연을 숭배하는 토착신앙이다. 여기에 군국주의가 교묘하게 결합, 소중한 생명들을 전쟁으로 내몬 '국가신도' 체제를 만들어낸 것이다. 전쟁이란 막다른 상황에 몰린 일본인들에게 죽어서 천황의 숭배를 받는 야스쿠니의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마지막으로 붙잡고 싶은 위안이었을지도 모른다. 군국주의자들도 이 점을 노리고 국가 이데올로기에 종교를 결합시켰을 것이다. 현재 이 신사에는 A급 전범 14명을 비롯해 약 246만6500여명이 합사되어 있다.
국가신도를 지탱해온 특수기관
고이즈미 총리는 "전쟁으로 돌아가신 분들을 추도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 야스쿠니신사는 일반적으로 '전몰자'들을 추도하는 시설이 아니라, 국가신도 이데올로기와 결합돼 일본 군국주의를 지탱해온 특수시설인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또 A급 전범의 합사를 문제 삼는데 대해 "왜 죽은 사람들까지 차별하느냐"고 항변하고 있으나, 당초 죽은 사람을 차별한 것은 야스쿠니신사 측이다. 오직 '천황을 위해 전사한' 사람만이 신사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전쟁 희생자라도 공습 등으로 희생된 민간인이나 도망병 등은 철저히 배제됐다.
이런 모순 때문에 일본 정부는 야스쿠니신사를 대체하는, '누구나 거리낌 없이 참배할 수 있는 국립추도시설'의 건립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관한 논의는 전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사회 분위기도 그렇지만, 우선 총리 자신이 의지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도 야스쿠니 문제에서는 고이즈미 총리 못지않은 강성 입장이어서 당분간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 좀처럼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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