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무지개 뜬 헤이리 저녁하늘

따뜻한 사람사는 모습에 사람들 가슴 속 무지개가 하늘로

등록 2006.08.21 09:02수정 2006.08.2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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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 하늘에 쌍무지개가 떴습니다. 아직은 그래도 사람 느껴지는 일들을 겪는 날의 가슴에도 그렇듯이.
헤이리 하늘에 쌍무지개가 떴습니다. 아직은 그래도 사람 느껴지는 일들을 겪는 날의 가슴에도 그렇듯이.김기
개인적으로 미담을 밝히지 않는 편입니다. 어쩐지 미담을 대하게 되면 뭔지 속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이 영 개운치 않은 탓이죠. 어쩌면 근본적으로 부정적인 인간성을 가졌을 지도 모릅니다. 뭐 어쨌거나 미담을 쫓아다니는 일도 없거니와 주변에서 우연히 미담이 발견돼도 애써 외면하는 편입니다.


다행히 제가 주로 다니는 문화계에는 미담이 그다지 없는 편입니다. 그들 자체가 아름다움을 목적으로 하기에 어지간하면 모두 그들의 표현과정에 흡수되어, 어쩌면 숨겨져서 보이지 않을 지도 모를 일이긴 합니다.

아직도 내 눈은 예술가들에게 고통이나 혹은 일반을 뛰어넘는 마음씀씀이를 의무로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말이 좀 에돌고 있습니다. 새로 결성된 크로스오버 그룹의 장기 공연 마지막 날을 취재하러 간만에 헤이리를 찾았던 지난 주말의 일입니다. 헤이리는 지금도 아는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외진 곳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 아는 몇몇에게는 낯설면서도 고향처럼 포근함을 주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 까다로움으로 조금은 거리감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학로, 홍대에서나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만은 보장할 수 있는 곳이 헤이리라는 점에는 대체로 공감할 것 같습니다. 아직도 여기저기서 건물이 올라가고 있고 그것들이 공사포장을 걷어내고 나면 헤이리는 또 하나의 개성을 갖춘 얼굴 하나를 갖게 될 것입니다.

쌍무지개의 다른 한쪽. 중간의 가려진 부분은 사람들 가슴 속에 있을 거라 믿어봅니다.
쌍무지개의 다른 한쪽. 중간의 가려진 부분은 사람들 가슴 속에 있을 거라 믿어봅니다.김기
그렇지만 고급스러운 첫인상 때문에 제 타입은 결코 아닙니다. 그 탓에 헤이리는 1년에 기껏해야 한 번 정도 갈까 하는 곳이 돼 버렸습니다. 그런데 올해 처음 찾은 헤이리는 저를 많이 혼내주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세상사를 겉으로만 판단하고 있음을 따끔하게 가르쳐 준 것이죠.


고급스럽고 일부 부유한 사람들의 튀는 공간으로만 생각했던 헤이리에 소위 '사람'이 살고 있음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죠.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밴드의 조용한 연주에 흔쾌히 저렴한 대관을 허락한 극장주인은 마지막 공연인 이 날 저녁을 손수 마련했습니다.

극장 위가 가정집인 경우도 흔치 않은 일이기도 하지만 대관한 후에 이것저것 추가비용 고지서나 내밀면 고작인 극장주가 밴드 뒤풀이를 대접한다는 것을 상상한다는 것 자체가 약간은 미친 짓에 속할 일입니다.


긴가민가하면서 이층으로 따라 올라갔습니다. 하나 둘 계단을 줄이면서도 '기껏해야 중국집에서 배달 좀 시켰거나 대충 찌개나 하나 끓였겠지'하는 냉소는 여전한 채 말입니다. 그러나 식탁이 마련된 제법 긴 발코니에 나가서는 입을 떡 벌리고 말았습니다.

한쪽에서는 생활한복을 입은 남자분이 삼겹살을 굽느라 연기를 피해 연신 손사래를 치고 있고, 안주인은 넉넉한 음성으로 "이 식구들 나가서 대충 먹어도 몇 십 만원 들 텐데 이게 훨씬 낫지요"하면서 보름달 같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삼겹살을 기본으로 해서 밤, 은행 등이 듬뿍 들어간 영양밥하며 딤섬류와 샐러드. 어지간한 호텔 케터링 서비스라고 해도 곧이들을 정도로 걸걸한 만찬이었습니다.

도심의 가꾸어진 정원이 아닌 방치해두어 제 멋대로인 잡초가 근사하게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이 헤이리에는 있더군요.
도심의 가꾸어진 정원이 아닌 방치해두어 제 멋대로인 잡초가 근사하게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이 헤이리에는 있더군요.김기
속내를 잘 표현하지 않는 성격이라 주변에서는 거만하다(솔직히 말해서 싸가지 없다)는 말을 제법 듣는 편이라도 이때만은 입 다물고 있을 수 없어 몇 마디 거들었고, 정신없이 차린 밥상을 축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하늘 올려다봤습니다. 이런 대목에서 하늘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히 적절한 설정임에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하늘은 설정에 한 술 더 떠서 무지개를 커다랗게 띄워주었습니다. 그것도 쌍무지개를.

나도 모르게 말도 못하고 "저기 저기..."하자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시선이 손가락 쪽으로 향하고 다들 이구동성으로 탄성을 토했습니다. 그리고 다들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고 정말 오랜만에 구경하는 쌍무지개 얘기에 잠시 소란스러워지기도 했습니다.

개중 어린 친구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거라며 감격해 마지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 마음이 무지개에 그토록 환한 얼굴이 된 것은 아무래도 극장주인 내외가 그들에게 보여준 따뜻한 마음 때문이었고, 하늘에 뜬 무지개는 그렇게 사람들 가슴 속에 먼저 떠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무지개를 만들어준 헤이리의 소극장은 <이구동성>이었습니다. 저녁 맛있었습니다. 밥보다야 사람 맛이 더했지만요. 음식이 입에 달수록 그 극장주인 내외눈치를 보아야 했고, 그만큼 세상에 대해 오만한 시선은 호된 매를 맞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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