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부부가 웃을 수밖에 없었던 문제의 시험지김지영
나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다. 이름은 김선웅. 초등학교 2학년이고 나처럼 안경을 썼다. 몸은 비쩍 마른 편이고 수학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하고 슬기로운 생활을 제일 못한다. 여름방학 전 시험을 본 모양이다.
빨간 색연필로 점수가 매겨진 시험지들을 통째로 들고 왔는데 일단 점수 이야기는 빼자. 그 중 우리부부를 포복절도케 한 아이의 답변이 있었다. '이웃을 조사하기 위해 이웃을 방문하는 시간으로 알맞은 때는 언제입니까?'라는 오지선다형 질문에 아이가 한 대답이었다. 확률은 1/5이었지만 아이의 대답은 '내가 한가한 시간'이었다. 이 문제의 정답은 '미리 약속한 시간'이었다.
'슬기로운 생활'이란 과목이었는데 이 과목에 대한 아이의 점수는 60점이었다. 그렇다고 난 우리 아이가 60점만큼만 슬기롭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음을 물론이다.
어찌됐든 이 아이는 나에게 귀농을 생각하게 했던 원인제공자이고 부재 시 유일하게 나를 초조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다.
나에겐 너무 특별한 존재인 '아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다 그렇겠지만 아이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다. 특히 아들이어서가 아니라는 걸 강조해주고 싶다. 아내보다 먼저 병원 분만실을 나서는 간호사의 품에 안긴 딸을 보고 싶어 했던 게 나의 진심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다섯 형제들 중 넷째로 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만약 당신이 남자라면 줄줄이 아들만 있는 집에서 한 달만 살아보길 권한다. 그럼 아마도 여자가 얼마나 귀한 존재란 것을 절감하며 여자 보기를 전대미문의 보물 다루듯이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여자가 아닌 아들을 싫어하진 않는다. 그것은 모든 부모들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자식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두 가지 중 하나다. 남은 하나가 무엇인지는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말하진 않겠지만 공교롭게도 그 하나에 해당되는 사람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것은 결혼한 지 한 3년쯤 지난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하여튼 굳이 나이로 따지자면 나보다 서른 두해 먼저 귀농한 셈이 되어버린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이젠 시골아이가 된 내 자식에 대한 이야기가 오늘의 주제다.
아이는 귀농의 첫 번째 원인제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