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와 나는 25kg 넘는 배낭을 메고 지리산 도보여행을 시작했다.조태용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선택한 길이 바퀴로 가는 여행이 아닌 걷는 여행인 것을 말이다. 인류의 최대 발명품 중에 하나인 바퀴를 포기한 여행자가 선택 할 수 있는 방법은 걷는 것뿐이다.
지리산을 빙 둘러서 걸어보겠다는 계획을 어찌 알았는지 누이는 한 달 전부터 전화를 해서 조카의 여름 방학 때를 맞춰 함께 가라며 성화였다. 누이의 전화는 그 후 일주일 간격으로 벨을 울렸고 드디어 마지막 전화가 울렸다.
"야! 여그 광쭌데.. 얼마나 걸리냐 한 한 시간이면 도착하지."
"어, 한 시간 20분쯤 걸리니까 내가 알아서 픽업하러 갈께."
구례 터미널에 도착한 누이는 놀라보게 커버린 조카와 함께 있었다. 1년 전에 보고 처음 본 조카는 중학생 때와는 전혀 다르게 다부져 보였다. 타지로 보내는 고등학교 아들이 염려스러운지 누이는 조카와 함께 구례까지 동행을 했다.
"삼촌, 이따 나하고 팔씨름 한 번 해? 내가 우리 반 팔씨름 대장이라니까."
조카는 나를 보자마자 팔씨름부터 하자고 졸랐다. 나도 저만 할 때는 만나는 사람마다 나보다 힘이 센지 약한지 알아보려고 했었다. 내가 힘이 더 세다면 내가 저 사람보다 위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팔에서 나오는 힘이 아닌 권력과 돈이라는 사실을 알기엔 아직은 조금 어린 나이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고등학교 1학년의 세계에서는 팔 힘이 권력과 돈을 앞설 수 있기 때문이다.
"야가 그래도 매형 닮아서 산을 잘 타고 잘 걸어 다니니까 걱정 안 해도 될 것이다."
"삼촌 걱정 하지 마, 삼촌 잘 따라 갈 테니까."
"그래."
"걱정하지 말라니까. 삼촌."
조카는 걷는 것쯤은 문제없다면 자신만만해있었다. 하지만 지리산을 8월 한 낮에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조카는 가늠이나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다시 조카의 얼굴과 기대에 부풀어 있는 조카의 종아리 근육을 살펴보았다. 몇 년 만에 찾아왔다는 살인적인 폭염으로 구워질데로 잘 구워진 8월의 아스팔트를 걷는 도보여행이 조카나 나에게 그렇게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