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맘 먹고 아이에게 사준 인라인스케이트주경심
며칠 전 큰 아이에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주었습니다. 비싼 건 아니지만 어설픈 수영실력으로 인터넷의 바다를 다 뒤져서 겨우 고른 캐릭터도, 브랜드도 없는 저렴한 가격의 제품입니다. 몇 달을 벼르고 별러서 사준 것인지라, 아이보다 제가 더 들뜬 마음으로 물건이 도착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물건이 도착하던 날! 아이와 저는 서로 먼저 포장을 뜯어보겠다고 몸싸움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옆집 사는 아이의 친구가 부모님이 안 계셔서 잠깐 제 집에 와 있었습니다. 가격에 비해 괜찮아 보이는 스케이트를 꺼내자마자 아이의 발에 끼워줬습니다.
그때 옆집아이가 물끄러미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좋겠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겁니다.
"왜? 너는 없어?"
"나도 엄마한테 사달라고 하면 돼요. 근데 엄마는 돈이 없다고 그랬는데…."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때문에 아이는 1학기에도 제 집에 들르는 일이 많았습니다. 솔직히 그럴 때마다 번거롭고, 귀찮기도 했습니다. 내 아이 둘도 버거운데, 미운 일곱살인 남의 아이가 또 하나 더해지니 작은 집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리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일곱살의 눈에 비친 터질 듯한 부러움이 저를 고개 숙이게 합니다.
먹을 것 찾아 여기저기 뒤졌던 어린 날... 엄마의 속내만은
어릴 적 전 너무나 가난한 내 집이 싫었습니다. 그 가난한 집에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빚쟁이들은 더 싫었습니다. 뭐 집어갈 게 있다고, 그리들 문턱이 닳게 드나드는지. 한때도 마음 편히 밥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부뚜막에서 물에 말아 후루룩 마시는 밥이 끼니의 반이었고, 그나마도 빚쟁이들이 왔다간 뒤 으슥한 밤에 먹는 밥은 소화가 되지 않아 길디긴 밤을 꺼지지 않는 배를 붙들고 뒤척이기 바빴습니다. 쇠도 씹어먹을 나이에 하루종일 먹는 거라곤 소화도 되지 않는 꽁보리밥 이 전부였으니 우리 3형제는 언제나 걸신들린 듯 먹을 것을 찾아헤매기 바빴습니다.
선창을 뒤지고, 들판을 뒤지고, 텃밭을 뒤지고, 창고를 뒤지고… 뒤지는 일이라면 자신 있는 나였지만 군입거리 하나 사주지 않는 엄마의 그 속내만은 뒤져볼 수가 없었습니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빚장부에 고개를 박고는 침을 발라 셈을 하는 엄마의 그 속은 차마 뒤져볼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의 셈은 언제나 오부 이자로부터 시작을 해서 한숨과 한탄으로 끝이 났습니다. 오부 이자를 알게 된 후로 저는 더 이상 나올 것 없는 엄마의 그 호주머니를 뒤집어 볼 수가 없었습니다.
부잣집 아이는 원래부터 타고나는 것이고, 난 원래부터 가난한 집 아이로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비오는 날엔 우산 대신 아버지의 비옷을...
10원에 4개를 주던 캔디도, 50원이면 사먹던 고무과자도, 100원이면 이틀은 골목대장을 해먹고도 남을 라면 한 봉지도… 있는 거라곤 족보보다 더 오래된 낡은 빚장부뿐인 내 집안에서는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호사였습니다.
친구들이 먹을 걸로 온갖 심부름을 시켜도, 어린 마음에도 자존심은 있어서 못본 척 애써 무시를 해 봤지만 입안에 고이는 생침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다 흘린 캔디를 주워서 흙을 씻어 입안에 넣으면 더럽다는 생각보다는 입안에 퍼지는 그 들척지근함에 없던 행복마저 솟아 나는 듯했습니다.
가난에 더 불편했던 적은 비가 오는 날이었습니다. 우산이라고 생긴 물건은 하나인데, 일찍이 밥을 먹은 오빠는 절대 우산을 같이 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지각대장이던 오빠가 유일하게 일찍 교실문을 여는 날이 바로 비오는 날이었죠.
아버지가 배에 가실 때 입던 새카만 비옷을 둘러쓰고 걷는 학교길은 얼마나 묵직하고, 질펀했는지 모릅니다. 흘러내리지 말라고 앞으로 묶어준 물옷의 팔들은 제 멋대로 흔들리고, 둘러 씌워준 모자는 휙휙 벗겨져서는 그렇잖아도 비 맞은 생쥐같은 아이를 더할 나위 없이 불쌍하게 만들었습니다.
교실에 도착해서도 젖은 몸을 어찌할 수가 없어 수업이 끝날 때까지 벌벌 떨고 있곤 했지요. 몸이 거의 마를 때쯤에 올라오는 쉰내가 우산도 살 수 없고, 여분의 옷 한 벌도 가져 올 수 없는 내 모양을 대변하는 것 같아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 꿈은 언제나 부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먹고 싶은 것 먹고, 갖고 싶은 것 갖고, 비오는 날이면 나 혼자 우산을 쓸 수 있는 그런 부자였습니다.
어릴 적 보다 부자인데도 늘 가난하다 생각했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