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푸른 물을 시로 건너다

제5회 낙강시제 시선집 <2006 낙동강> 나와

등록 2006.08.31 19:55수정 2006.08.3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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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제5회 낙강시제 시선집 <2006 낙동강>

제5회 낙강시제 시선집 <2006 낙동강> ⓒ 팔만대장경

지난 8월 26일 경북 상주시 도남동 도남서원에서 제5회 낙강시제(洛江詩祭)가 성대하게 열렸다. 한국문인협회 상주지회가 주최하고 상주시와 상주예총이 후원한 이번 낙강시제는 지금까지 백일장 중심으로 치러졌던 행사를 지양(止揚)하고 낙강시제의 원래 취지에 맞게 시인들의 시제(詩祭) 형식으로 치러졌다.

낙강시회의 원류는 고려의 대표적 시인인 백운(白雲) 이규보가 활약하던 고려 명종 때부터이다. 이 낙강시회는 경북 상주의 낙동강(퇴강-경천대-관수루 구간 40리)을 중심으로 1196년(고려 명종 26년) 백운 이규보로부터 1862년(조선 철종 13년) 계당 류주목에 이르기까지 장장 666년간 도남서원·경천대·각종 누정·선상 등지에서 51회에 걸쳐 이루어졌고, 시회작품을 기록한 <임술범월록(壬戌泛月錄)>이 현재 상주 도남서원에 보관되어 있다.


이 시회에 참여한 유명 문인들로는 이규보를 비롯한 안축, 김종직, 유호인, 김일손, 이황, 류주목, 조익, 이준, 전식 등이다.

이번에 가진 제5회 낙강시제를 시작으로 하여 선배 문인들이 만들고 이어온 그 시회의 성격을 되살려내고 발전시켜 나가고자 상주문협에서 의욕적으로 행사를 준비해 왔다. 시집 <2006 낙동강>(팔만대장경 2006)은 제5회 낙강시제 시선집이다.

이 행사에 참여한 경북 여러 지역의 시인 73명의 작품을 싣고 있다. 도도하게 흘러가는 낙동강이 훤히 건너다보이는 도남서원 2층 누각에서 시향(詩香)을 맨 처음 퍼트려놓은 것은 조재학 시인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타고 나온 박찬선 시인의 시 '낙동강 10'이다.

긴 비 내린 뒤
강이 용광로처럼 부글부글 끓고 꿈틀거린다
엿 공장의 단 냄새가 물씬 난다
황금물결의 도도한 흐름
지금 작업 중이다 쉴 틈도 없이
하늘과 흙의 진액을 받아 운반하는 중이다
섭리의 거센 숨소리
그래야 모래무지와 밍크고래도 살고
노랑어리연꽃도 살며 섬기린초도 살고
모두가 산다
길 닦기, 자연스런 물길 닦기
더러는 외딴 섬을 만들고 깊은 소를 만들어
흐른다 굽이치고 휘돌고 성난 듯이
은밀히 하는 큰 일
서두르는 법이 없다
강은 다 보여주지 않는다
강은 다 드러내지 않는다
물 위를 휘덮는 물안개
귀신이불 같은 안개 속에
강은 잠이 든다

- 박찬선 '낙동강 10' 전문



위 시에서 박찬선 시인은 "하늘과 흙의 진액을 받아 운반하는" 강의 흐름으로 모든 생명이 산다고 말한다. 낙동강을 통해 생명의 길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낙동강을 제재로 한 권의 시집을 묶으려 하고 있는 박찬선 시인은 평생을 상주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쓰고 지역 문화 창달에 온 힘을 기울여 온 분이다.

시인들의 시 낭송과 담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초청 시인 문학 강연이 있었다. 상주 출신인 영남대학교 철학과 최재목 교수의 '늪의 글쓰기'는 여러 지역에서 참여한 시인들에게 커다란 공부가 되었다.


불교의 건달바, 의상의 <화엄일승 법계도>, <장자>, <시경>, <하이데거 철학> 등 동서양과 여러 종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그의 강의는 막힘없이 흘러가는 낙동강의 그 힘찬 흐름의 모습과도 같았다. 막걸리를 마셔가면서 최재목 교수의 강의를 듣던 여러 시인들도 최재목 교수가 노를 저어가는 배를 타고 흘러가기는 매한가지였다.

저 강에 허리 한 번 휘둘렸으면,

어느 질긴 끈이 저 강만 하랴
우리에겐 두름처럼 허리 엮인 짐승의 역사가 있어

풀어놓고
풀어놓고

강의 허리춤에
헤진 정신 짚신처럼 동여매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어
오랜 여행 끝에
보자기 펼쳐놓는 들판이 있어

타는 혓바닥 붉은 눈동자에 몇 포기 모를 내고
하늘 몇 삽 퍼다 가슴속 던져 넣던
지난한 세월이 있어

오래 걸어온 길이 튼튼한 다리가 되듯
우리는 또 그렇게 걸어야 한다
강의 깊이로 걸어왔듯
저 강이 굽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듯

처음 몇 걸음의 결심으로
제 가슴에 비수 꽂는 폭포의 정신으로
푸른 강의 허리를 휘두르며
자갈과 모래가 흐른다

- 엄재국 '낙동강'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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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암

문경에서 온 엄재국 시인의 위 시는 강과 함께 해온 우리들의 지난한 세월과 곧은 정신을 담아내고 있다. 제5회 낙강시제 시선집 <2006 낙동강>에 참여한 시인으로는 멀리 충남·대전의 유용주, 윤임수, 함순례 시인이, 대구에서는 신구자, 정경자, 정숙, 구옥남, 김은령, 박선주, 최영자, 김미지 시인이 참여했다.

그리고 상주를 중심으로 영주, 예천, 안동, 김천, 경주, 포항, 문경 등 경북의 여러 지역에서 많은 시인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어쩌면 우리의 선배 문인들이 가졌던 그 낙강시제보다 규모가 더 큰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포항지역의 시인으로 참여를 했는데 1박 2일로 이어진 시인들의 시회(詩會)에서 일어난 재미나고 멋진 일들을 어찌 언어로 다 그려내랴. 다만 참여해서 그 흥취를 몸에 담아 내 글쓰기의 밑거름으로 쓸 수밖에. 끝으로 낙강시제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 온 상주문협 소속 한 젊은 시인의 시를 읽으며 필(筆)을 놓아야하겠다.

저 몸속 어디
하늘로 가는 길 은밀히 뚫어 놓았나
여의주 문 물고기 한 마리
지금 막 헤엄쳐 나간 게 분명하다
하얀 비늘들 저리 환하게
쏟아지는 걸 보면

- 황구하 '벚꽃 진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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