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할머니께 산 배입니다. 그래도 맛있게 먹었습니다.배만호
국내에서 생산되었지만 사람에게까지 해로운 농약을 듬뿍 뿌려서 재배한 농산물이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소중하듯 벌레의 생명도 소중합니다. 단지 사람만큼 인정을 받지 못하고, 사람만큼 존중되지 못한다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하찮은 목숨을 파리 목숨에 비유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십시오. 파리가 생태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8월의 마지막 날에 시장에 나갔습니다. 농산물을 다루는 곳에서 일을 하다 보니 슈퍼나 마트 등에 갈 일이 별로 없습니다. 간혹 소주나 맥주를 사려고 갈 때가 있지만 그런 날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니지요. 일터 사람들끼리 함께 저녁을 먹으려고 하는데, 마땅한 찬거리가 없어 열무를 조금 사려고 간 것이지요.
시골의 오일장 풍경을 감상하기보다 할머니들의 주름진 얼굴과 거친 손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오래 있으면 괜시리 제 마음만 아플 것 같아 빨리 열무만 사고 돌아올 생각이었습니다. 시장에 도착하자 빨리 열무를 한 단 샀습니다. 그런데 시장에 나온 김에 밭에 심을 배추 씨앗을 사려고 잠시 돌아다녔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바로 우리들 이웃의 모습이었고, 내 어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커다란 대야에 온갖 채소들을 머리에 이고 와서는 종일 아스팔트 위에 앉아 팔고 있는 할머니들. 저 할머니들에게도 아들이 있고, 손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손자에게 맛있는 것을, 좋은 장난감을 사 주고픈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열무 한 단을 들고 시장을 걷고 있는데, 저만치서 배를 팔고 계시는 할머니가 보였습니다. 그냥 무심하게 지나치려고 하는데 자꾸만 눈에 들어옵니다. 나무로 만든 작은 판 위에 배를 진열해 두고 있었습니다. 한눈에 봐도 배의 상태는 좋지 않았습니다. 까치가 쫀 듯한 자국도 있고, 바닥에 떨어져 상처도 났습니다. 웬만한 슈퍼나 마트에 가면 저 정도의 과일은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지요.
제가 자꾸 배를 바라보자 할머니는 눈치를 채고 제게 한마디합니다.
"총각, 배 좀 사가. 나가 일이 있어 빨리 좀 가야 허는디, 이거 떨이로 오천원에 줄게."
"할머니, 그런데 배가 왜 이래요?"
"여기 두 개 더 줄게. 나가 일이 있어 그러그덩."
할머니의 대단한 상술(?)에 제가 넘어 갔습니다. 결국은 그 배를 샀으니까요. 배 한 봉지와 열무 한 단, 고들빼기 두 단. 그리고 배추 씨앗. 제가 오늘 시장에서 산 것들입니다. 그런데 고들빼기와 배는 한마디씩 핀잔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런 썩은 걸 샀나?"
"완전 속았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