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푸른 하늘을 날아가고 싶지 않나요?

[고전 다시 읽기] ① 리차드 바크, <갈매기의 꿈>

등록 2006.09.01 10:54수정 2006.09.0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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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란 인류가 오랜 세월을 거쳐 오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좋다고 평가한 작품을 가리킨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떠오르는 고전에 대한 이미지는 극히 ‘고리타분할 것’이라는 인상. 정작 그 작품을 진지하게 읽어보지도 않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막연한 인상만으로 고전에 대한 평가를 슬그머니 낮춰버리기 일쑤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도 그런 부류 중 한 사람이었다. 일부러 고전이 아닌 신작을 중심으로 편식하듯 독서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권 두 권 고전과 만나게 되면서 ‘고전은 고리타분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말끔히 지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책들에게 어째서 ‘고전’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었는지 충분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이번에 소개할 책 <갈매기의 꿈> 역시 세계적으로 너무 잘 알려진 고전 중 하나이다.


a 날고 싶은 사람들의 꿈은 이루어진 것일까?

날고 싶은 사람들의 꿈은 이루어진 것일까? ⓒ 국은정


이 글의 저자 리차드 바크는 <어린왕자>를 썼던 생떽쥐베리처럼 비행기 조종사와 작가로서의 삶을 동시에 살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두 작가의 글은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다. 무엇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간절한 열망과 ‘순수’에 대한 갈구라는 면에서 그 내면적 지향점이 무척 유사하다.

단지 두 작가의 이력이 같았기 때문이라고 속단할 순 없지만 매번 두 작품을 읽을 때마다 나는 이 점에 있어 흥미를 느꼈다. 언제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까마득한 창공에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꿈꾸며 미소 지었을 두 작가들의 삶이 은근히 부럽기도 했다.

이 소설 <갈매기의 꿈>의 저자는 과연 행복했을까? 그의 분신으로 보이는 갈매기 조나단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들 속에는 작가의 삶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가득 배어있다.

주인공 조나단 리빙스턴은 별난 갈매기다. ‘먹는 일’보다 ‘나는 일’을 더 사랑해서 밥을 굶어도, 친구들의 따돌림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오로지 나는 일에만 도취되어 있는 갈매기다. 새에게 있어 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에게 있어 꿈을 꾸는 일이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처럼- 다른 갈매기들은 그의 순수한 열정과 도전을 이해하지 못하고 차갑게 등을 돌린다.

a 석양이 지는 하늘에 그려진 길 하나.

석양이 지는 하늘에 그려진 길 하나. ⓒ 국은정


가족들의 한숨 섞인 훈계를 받은 조나단은 자신도 다른 갈매기들처럼 평범해지려고 부단히 애를 쓴다. 하지만 이야기는 오히려 역설적인 방향으로 흐른다. 평범해지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던 그는 문득, 자신이 아무도 날지 않은 깜깜한 한밤중에 날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범해지려고 고민한 것이 도리어 ‘역시나 다른 갈매기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우리 주변에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비평가들은 조나단을 ‘당대에 인정받지 못한 예술가나 현실을 초월하는 천재성을 가진 사람’에 비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를 단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택한 사람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남들의 비난과 조롱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조나단의 열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성스럽다. 금방이라도 접힌 날개를 펴고 저 푸른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는 조나단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박수를 보내도 모자란 그의 열정에 대해 이해하려 들기는커녕 비난만 하던 다른 갈매기들은 결국 그를 무리로부터 추방시킨다. 이 부분에서는 나는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옹졸하고 편파적인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팠다.


이것은 다시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규격화된 틀 안에서 기계적으로 성적을 뽑아 올려야 하는 우리 아이들의 슬픈 현실을 생각해 보자. 그들만의 개성과 창의력은 언제나 대입 이후로 미루어져야 한다. 어른들은 그게 ‘평범하고 행복하게 사는 법’이라고 가르친다. 학교와 학원, 과외 교습으로 어른들보다 더 바쁘고 빠듯하게 하루를 이어가는 우리 아이들은 한 여름 뙤약볕에 시든 풀처럼 생기 없는 미래들을 그리고 있다.

"머지않아 겨울이 닥쳐온다. 그렇게 되면 어선도 적어질 것이고, 얕은 데 있는 고기도 점점 깊이 헤엄쳐 들어갈 것이다. 만약 네가 연구해야 한다면 먹이를 연구하고, 그것을 어떻게 얻는지를 연구해라. 물론 너의 그 비행술인가 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나 너도 알다시피 공중활주를 먹고 살 수는 없지 않니? 안 그래? 우리가 나는 이유는 먹기 위해서라는 걸 잊지 말아라. 알겠지?" - 본문 중에서

a 하늘에 그리고 싶은 나의 꿈은?

하늘에 그리고 싶은 나의 꿈은? ⓒ 국은정


조나단이 처한 현실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공부를 잘해야만 하고, 대학을 잘 가야하고, 취직을 잘해야 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집을 사야 하고, 노년을 걱정해야 한다. 아이들이 자라면 자신과 똑같은 전철을 밟아 키워야 한다. 그 안에서 ‘나의 꿈과 행복’이란 늘 현실에게 밀려 뒷전이 되고 만다. 이러한 자본의 굴레에서 조금만 벗어나려고 하면 사람들은 저마다 삐딱한 시선을 보내기 시작한다. 자신들의 꿈과 행복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뼈와 깃털 뿐이라도 괜찮아요, 엄마. 나는 내가 공중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를 알고 싶을 뿐이에요. 단지 그 것뿐이에요." - 본문 중에서

목숨을 바칠 만큼 자신의 꿈을 사랑할 줄 아는 조나단, 그는 별나지만 사실은 다른 갈매기들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바로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꿈을 펼쳐 나가는 ‘용기’이다.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는 말은 그에게 가서 비로소 빛을 발한다. 꿈을 얼마나 크고 멋지게 꾸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자신의 꿈을 사랑하고, 매진할 수 있느냐가 이 문장의 진의라고 나는 믿는다. 꿈은 꾸는 것보다 지켜나가는 것이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a 무심코 그린 우리의 꿈은?

무심코 그린 우리의 꿈은? ⓒ 국은정


자신이 그렇게도 바라던 꿈을 이룬 후에도 조나단은 자신을 신격화 하려는 제자들 앞에서 최대한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우러르는 제자들을 꾸짖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언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제자들을 향한 눈빛 속에는 무한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것이 자신을 추방했던 갈매기들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자 하는 이유다. 더 많은 갈매기들이 자신처럼 본래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행복해지길 바라는 것, 단지 그것이다. 자신을 버린 사람들조차 사랑하고 품에 안을 줄 아는 조나단 리빙스턴. 그는 진정 행복한 갈매기였다.

“플레처, 너는 그런 게 싫겠지! 그건 당연해, 증오나 악의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은. 너는 스스로를 단련하고, 그리고 갈매기의 본래의 모습, 즉 그들 모두 속에 있는 좋은 것을 발견하도록 힘쓰지 않으면 안 돼. 그들이 자기 자신을 발견하도록 도와야해. 내가 말하는 사랑이란 그런 거야. 그 점을 터득하기만 하면, 그건 그것대로 즐거운 일이야.” - 본문 중에서

조나단 리빙스턴의 삶은 꿈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는 많은 현대인들에게 있어 현실과 너무 먼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와 다르다고 해서 너무 내치려고만 하지 말자. 조나단과 같은 삶이 우리의 팍팍한 삶을 얼마나 풍성하고 아름답게 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만이라도 발견한다면 이미 그것으로 작가의 몫은 충분할 것이다.

갈매기의 꿈 - 완결판

리처드 바크 지음, 공경희 옮김, 러셀 먼슨 사진,
나무옆의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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