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 이제는 지역시대

한국여성운동, 지역을 살려라

등록 2006.09.04 15:29수정 2006.09.0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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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나로부터 동네는 바뀐다.’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풀뿌리 운동이 동네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나라를 바꾸는 힘일 터. 한국 여성운동이 ‘대중 속으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거듭나고 있다. 사진은 서울여성의전화가 개최한 ‘나로부터 비상하는 지역운동센터’ 워크숍에 참가한 여성들. 사진제공=서울여성의전화

‘나로부터 동네는 바뀐다.’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풀뿌리 운동이 동네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나라를 바꾸는 힘일 터. 한국 여성운동이 ‘대중 속으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거듭나고 있다. 사진은 서울여성의전화가 개최한 ‘나로부터 비상하는 지역운동센터’ 워크숍에 참가한 여성들. 사진제공=서울여성의전화 ⓒ 우먼타임스

“지역은 정책이나 운동의 방향에 대해 중앙에 일임하였고, 중앙이 이를 결정하고 있다. 어느 영역에서나 중앙은 위이고 지역은 아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중앙 지배-지역 종속’에 대한 문제의식은 지역활동가가 훨씬 민감한 것 같다.”
(김소은: 가명·여성단체 활동가)

“지역에서 한국여성의전화 지부로 등록하려면 서류 하나 작성해 승인받는 것까지 일일이 서울의 본부를 거쳐야 했다. 운동단체의 건물등기, 지방정부의 지원 협력을 얻는 것도 지역에서 알아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지부는 독자적 결정 권한이 부족했다.” (이성정: 가명·시의원)


지역이 없으면 여성운동의 미래는 없다

지역 여성운동 활성화가 여성운동의 최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한국 여성운동을 토론하는 한 자리에서 여성운동 진영 내부에 존재하는 중앙과 지역의 격차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돼 격렬한 논의가 펼쳐졌다.

부산의 한 여성단체 회원인 최경미씨는 “지난 10년간 지역의 의제화 사례를 검토한 결과 보육조례 제정을 제외하고는 지역 여성문제를 제대로 의제화하지 못했다”면서, “이는 중앙의 여성단체가 운동 방향을 정하고 아젠다를 생산, 공급하는 과정에서 지역 여성단체는 중앙에서 결정된 방향에 따라 아젠다를 유통, 소비하는 역할을 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이 같은 지역 간의 격차를 한국 여성운동의 위기로 거론하기도 한다. 때문에 중앙 여성단체들은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고 지역 여성단체들의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지난해 1987년 출범 이후 처음으로 ‘지역여성운동센터’를 설치했다.

이구경숙 여성연합 지역여성운동센터 국장은 “2003년 호주제 폐지에 이르기까지 여성운동은 많은 제도적 성과를 이루어왔다”면서 “그러나 여성들이 이러한 성과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 여성운동의 대중화가 더욱 요구되고 있고, 이를 위해서는 지역 여성단체 활동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여성운동 진영에서 이처럼 지역이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지역은 여성들 스스로가 주체로 나서 사회를 바꾸는 ‘풀뿌리 운동’의 근거지로, 여성운동이 여성 대중 속에서 실현되는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이다.


서울여성의전화가 주민들의 참여 속에 자치구가 진행하는 여성주간 행사를 지역 주민 대동의 장으로 바꾸었고, 고양여성민우회는 지역 여성들과 함께 러브호텔 반대, 예산감시운동을 벌여 고양을 살기 좋은 지역으로 바꾸는 데 한몫하고 있다.

한부모 스스로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 동 단위로 자조 모임을 만들고 정부의 정책 마련을 촉구해 가는 부산여성회 한부모가족자립센터도 풀뿌리 운동의 좋은 사례다.

현재 여성운동은 새로운 방향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김인숙 한국여성민우회 자치위원장은 “중앙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여성정책이 제정돼 왔지만 지역 현장에서 온전히 다 소비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제는 중앙과 지역이 생활에 뿌리를 둔 다양한 여성문제를 주민들과 함께 나누며 여성운동의 열매를 맺어야 할 시기”라고 말한다.

본지는 이번 호 우타여성에서 ‘한국 여성운동의 미래와 지역’이라는 주제로 지역 여성운동 활성화 방안과 새로운 대안 등을 집중 모색한다.

풀뿌리 여성운동의 현실과 미래

2003년 호주제 폐지에 이르기까지 여성 의제 대부분이 제도화되고 사회적으로도 양성평등 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여성운동 진영 내에서는 “여성운동 활성화를 위해 지역 여성운동을 살려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한 지역 여성운동 단체들은 현재 지역 여성운동이 중앙과의 격차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역 여성단체 대표들과 함께 지역 여성운동의 현실을 진단하고 향후 지역 여성운동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식이 곧 권력, 지역인재를 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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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우먼타임스(이하 우타): 현재 여성운동 내 중앙과 지역의 격차는 어디에서 발생했다고 보는가.

김주영: 중앙과 지역은 같은 주제를 논의하더라도 운동 방식이 다르다. 지역에서는 어떻게 지역 여성들과 함께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만, 중앙에서는 어떻게 정책화시키고 이슈화할 것인가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허성우: 중앙의 여성운동은 소수 활동가들이 전문가를 포섭해 중앙 정부를 대상으로 빠른 시간 내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하기 때문에 지역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기는 힘들었다. 결국 시간적 여유가 없다 보니 지역이 중앙의 의제에 따라가는 식의 현실적인 위계 구조가 발생했다. 운동의 속도를 늦추더라도 지역과 함께 가면 좋겠다.

박영미: 오랫동안 비민주적인 정부를 상대로 하다 보니, 여성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비민주성과 중앙 집권성이 존재했다고 본다. 그동안 정책 결정과 수행 역시 중앙정부의 특정한 공무원, 학계 전문가들이 장악했다. 여성운동 세력은 이러한 중앙 중심 시스템을 토대로 정부와 국회에 압력을 넣고 전문가 등을 코디네이트(연결)해 왔다. 지역 여성단체들이 의제를 모아 중앙에 전달하면, 중앙의 여성단체들이 정책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이러한 중앙과 지역의 역할 분담이 오히려 중앙과 지역의 격차를 만들었다. 또한 지역 단체들은 중앙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지면서 제한된 역할만 맡게 됐다.

허성우: 인적 자원의 차이가 중앙과 지역의 격차를 발생시키는 요인이다. 학교가 밀집된 수도권에는 1980년대 이후 진보적인 학생운동 출신 활동가들이 포진해 있지만, 지역의 인력 풀은 제한적이다. 이로 인해 운동의 재생산 구조가 마련되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중앙이라 불리는 수도권 지역은 정치, 문화, 사회 등 권력이 집중되는 네트워크가 존재하고 있고, 다른 지역은 여기에서 배제돼 있다.

박신연숙: 지금까지는 인적, 물적 자원 모두가 중앙에 집중됐고, 중앙에서 의제 중심의 운동을 실행해 왔다. 운동 방식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일상생활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 현장에서 주체들이 직접 참여하는 ‘풀뿌리 운동’이 요구된다.

김인숙: 지역 공무원들은 지역의 여성 이슈를 자신들의 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이들을 설득하기가 힘들고, 지역의 여성운동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우타: 그렇다면 중앙과 지역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김인숙: 중앙과 지역이 생활에 밀착된 여성운동의 과제를 함께 실천해야 한다. 중앙에서 결정된 사항을 내려 보내는 방식은 중앙과 지역 간 격차를 더 넓힐 뿐이다. 또한 중앙이 지역과 상시적으로 소통하면서 지역의 모범 사례를 퍼뜨리는 역할을 담당하면 좋겠다.

김주영: 지역 간 네트워크가 매우 중요하다. 각각의 지역에 차이가 있고, 지역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서울에 집중된 자원, 인적 풀, 정보 등을 지역에 분산시키고 아울러 지역 간에 소통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허성우: 여성주의 시각이 확실한 운동 주체를 키워내야 한다. 이를 위해 여성학 교육 등을 지역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푸코가 얘기하듯 지식이 곧 권력이다. 여성들이 자신들의 삶에 대해 어떻게 알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사회단체 등에서 주관하는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지역 여성운동 단체에 할당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박영미: 중앙 정부가 있는 서울이 반드시 여성운동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생각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예전과 달리 인터넷이 발달하고 교통편도 좋아졌다. 행사도 돌아가면서 하고, 행사 주제를 정하는 일이나 주관을 지역에서 할 수도 있는 문제다. 현재 전국한부모지원네트워크 사무국도 부산에서 맡아 원활하게 이끌어 가고 있다.

김인숙: 부산에서 오랫동안 지역 활동을 한 박영미 회장이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로 선출돼 기뻤다. 여성단체 중앙조직의 공동대표의 경우, 3명 중 2명은 지역 대표가 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경상권, 전라권 등 대표의 지역권도 번갈아 배출해야 된다.

박신연숙: 중앙과 지역을 얼마나 유기적으로 통합해 내느냐가 관건이다. 집중된 자원이나 권력을 지역으로 분산시키고, 지역이 잘하는 사업은 적극 지원해야 한다. 특히 새롭게 만들어지거나 어려운 지역의 단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중앙의 인큐베이팅과 지원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김주영: 지역의 주인은 여성 주민들이다. 이들이 소외되지 않고 함께 여성운동으로 나갈 수 있도록 과제를 발굴하고 주체의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 울산여성회는 여성의식이 높지 않은 동 단위 지역을 중심으로 여성운동에 대한 가치관, 인식을 심어주고 간부로 키우기 위한 교육, 체험활동, 강사양성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사실 지역 단위의 여성 지도자들은 소모임을 주재하는 것도 힘들어 한다. 리더십 과정 등을 통해 지역에서 활동할 여성들을 키워나가야 한다.

박영미: 일반 회원 가운데 활동가로 나서는 경우, 이들은 자신의 앞날에 대한 확신 속에서 성장한다는 기쁨을 느낀다. 자신의 삶과 관련된 절실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운동에 나서는 것이다. 이는 다양한 이유로 여성단체를 찾는 여성 회원들을 어떻게 상근 활동가로 키울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우타: 지역 내 여성단체의 역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고민도 많을 것이다.

박신연숙: 여성운동은 대중 속에서 나오고, 그들 속에서 단체의 힘으로 발휘되는 것이 맞다. 대중의 역할을 모으고 키우고 조정하는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김인숙: 최근 지역의 여성단체는 성폭력 상담소 등을 통해 여성정책의 서비스 수행까지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서비스 수행에서 여성단체가 지방정부와 대등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 공동 실행자 입장에서 서비스를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박영미: 지역 여성단체들은 정책 의제에 대한 제안, 결정, 수행, 평가, 비판 등의 역할을 한다. 이것을 지역 여성들과 함께 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역 여성 주민들은 단순한 수혜자일 뿐 운동의 주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허성우: 정책 수행 및 비판 등의 역할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고 본다. 대전의 경우 여민회가 중앙 여성단체와 공유한 지식을 푸는 수준이다. 여성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활동가들이 지역사회 공무원을 비판하고 견제할 만큼 담론을 가지고 있지 않다. 독립된 지역의 여성단체 하나가 지자체를 견제하고 비판하기는 어렵다.

우타: 지역을 바꾸기 위해서는 생활정치가 실현되고, 여성의 정치 세력화가 필수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역 여성단체에서는 여성의 정치 세력화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가.

김인숙: 지역의 모든 문제는 정치와 연결돼 있지만, 계기가 없으면 이를 인식하기 어렵다. 그래서 시도하고 있는 운동이 예산 감시다. 지역 주민 모두가 예산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활동은 정치에 참여하는 새로운 운동이다. 또한 지역 정치인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늘 요구하고 감시하는 활동도 병행해야 한다. 의회 방청 활동은 주민들의 비판력을 키우고, 정치 참여의 계기와 성취감을 준다.

김주영: 선거 시기에 후보를 발굴하는 과정 자체가 회원들의 여성주의 마인드를 키우는 데 상당히 중요하다. 특히 이 시기 회원들이 고무돼 집중하기 때문에 생활정치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고 정치의식을 높이는 과정이 될 수 있다.

박영미: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사회적 틀이 바뀌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 세력화를 이루어야 한다. 특히 사소한 문제일지라도 함께 해결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정치 세력화임을 강조하고 싶다. 중년 여성들이 단순히 즐겁게 생활하기 위해 모임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이들의 실천 활동들이 결국 삶의 조건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풀뿌리 활동 속에서 생활정치가 실현되고, 정치 세력화가 이루어진다.

■일시: 8월 25일 오전 10시 30분
■장소: 우먼타임스 회의실
■진행: 이미경 우먼타임스 편집국장

"여성운동에 나이는 숫자일 뿐…"
'은빛노인학교' 가보니

▲ 부산여성회가 운영하는 ‘은빛노인학교’는 한글·체조등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60~70대 여성 노인들의 호응도가 높다. 사진은 두뇌회전에 좋은 손가락 운동을 하고 있는 수강생들.
"어머니~ 우리 오늘은 두뇌 회전에 좋은 손가락운동을 해보겠습니다. 엄지, 검지를 서로 번갈아 찍으면서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유치원만 통과하면 다 할 수 있는데, 저기 어머니! 유치원 안 나오셨나 보다."

"하하하하~"

지난 8월 22일 부산여성회가 진행하고 있는 해운대구 우2동 은빛노인학교 개강 날. 20여 명의 할머니들은 짧은 방학을 끝내고 등교한 터라 선생님의 짓궂은 농담에도 연신 웃음을 터뜨린다. 화요일과 목요일, 할머니들은 일주일에 두 번 이곳에서 또래 어르신들과 함께 한글과 한자, 체조, 레크리에이션, 교양, 국악 등을 배운다. 그 중에서도 인기가 많은 수업은 한글 시간.

남금승(69)씨는 "오른팔을 다쳐 못 쓰는데도 왼팔로 글을 배워 쓸 수 있게 됐다"며 "글 배우는 재미는 이루 말로 할 수가 없다"고 한다. 할머니들 가운데는 글을 배우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글을 모른다는 부끄러움 때문에 일부러 먼 동네를 택하기도 한다.

같은 반인 배순옥(78)씨는 노인교실을 다니면서 아픈 곳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여기 나오면서 친구도 만들고 춤과 노래도 배울 수 있어 즐겁다"면서 "다른 노인학교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다"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부산여성회가 지난해부터 시범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은빛노인학교는 타 복지회관이나 단체들이 운영하는 노인학교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여성 노인을 복지 수혜 대상자가 아니라 노인정책의 소외 대상자로 보고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생활, 건강 정보를 제공, 안내하고 있다. 박영신 강사(부산여성회 회원)는 "체조 하나를 가르치더라도 여성 노인들에게 맞는 체조가 있다"며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업은 특히 여성운동의 대상층을 60~70대 여성 노인으로 확장시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여성운동의 새로운 지역사업 형태로 주목을 끌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인학교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40~50대 여성들 또한 여성운동의 새로운 주축 세력으로 나서고 있어, 여성운동의 활동가 층을 넓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지난해 노인학교 진행자 양성 과정을 거쳐 올해 은빛노인학교 강사로 나선 김경숙(부산여성회 회원)씨는 "언젠간 나도 노인이 될 텐데 노인 정책이나 문제에 대해 알아두고 계획을 세우면서 스스로가 발전하는 것 같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부산여성회는 우2동 은빛노인학교를 통해 여성회 해운대지부도 새로 만들게 됐다. 지역 여성운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동, 구 등 기초지역 회원들이 참여하는 풀뿌리 여성운동 방식 구현이 필요하다고 판단, 은빛노인학교와 같은 사업을 통해 운동 대상층을 확대하고 운동 주체의 역량을 키우고 있는 것.

부산여성회는 올해 은빛노인학교를 영도구, 부산진구 등으로 확대하고, 향후 동마다 학교를 하나씩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박오숙 부산여성회 부회장은 "은빛노인학교를 통해 만난 할머니들이 스스로 자치조직이나 자조 모임을 만들어 삶의 주체성을 높이고, 더 나아가 소외된 여성 노인들을 위한 정책 제안의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는 여성운동을 확장하는 새로운 실험이자 풀뿌리 여성운동을 실현하는 방식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여성이 모였더니 새동네 됐네
생활단위 여성운동 실현..."여성 참여가 세상 변화" 목청

울산여성회가 최근 지역 여성운동의 새로운 모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올해 초 80명에 가까운 회원들을 모인 동여성회(북구 농소3동)를 발족하는가 하면 이를 발판으로 지난 5월 지방선거에서 당당하게 7명의 기초의회 의원을 배출한 것.

특히 많은 주부회원들로 구성된 북구 농소3동 여성회는 실제 생활공간인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운동을 벌여 주목받고 있다.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이 위치한 북구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주거 공간이 형성돼 있지만, 여성들 간 공동체의식과 여성문화가 없는 곳이었다. 2001년부터 울산여성회는 생활 단위에서 여성운동을 실현한다는 목표로 동여성회 조직을 시작했다.

교육에 관심이 많은 여성들이 하나 둘 모여 만들어진 독서지도모임을 모태로, 체험활동교사교육, 동화구연, 역사기행, 풍물강습 등을 진행했고, 이어 아파트 부녀회와 어린이 벼룩시장도 열었다.

처음에는 심드렁해 하던 주부들도 자기개발과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회원이 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올해 회원 수가 80명으로 늘어나 지난 2월 울산에서 처음으로 동여성회 발족식을 가진 것이다. 동여성회는 동사무소 문화의 집을 근거지로 삼으면서 회원들 간 교류와 사업이 더욱 활발해졌다.

특히 지난 5월 농소3동 여성회는 그동안 생활공동체 문화운동을 이끌어온 이은영씨가 구의회 의원으로 당선되는 기쁨도 맛보았다. 한 여성회 회원은 "처음에는 체험 활동이나 교육문제 등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여성회에 가입했는데, 이젠 사회공헌 활동 등 고민의 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면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여성회를 통해 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한편, 울산여성회는 지난 8월 TV 퀴즈 프로그램 형식을 빌어 각 구별로 ‘도전 통일벨’ 퀴즈대회를 진행, 1만 명 가량의 시민들이 통일 사업에 참여하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

김지현 울산여성회 사무처장 대행은 "동 단위 여성회 등을 통해 여성단체를 친근하게 느끼면서 회원 수도 늘어나고 생활정치 실현도 가까워지는 것 같다"면서 "여성들의 참여가 동네를 바꾸고, 정치를 바꾸고, 결국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역여성운동은 아직도 농경시대
윤정원 대구여성회 사무국장

"참 힘들어요!"
"서울이 20세기라면 지역은 아직도 농경시대인 것 같아요."

전국에 있는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모이면 이 같은 하소연이 줄을 잇는다.

한국사회는 서울은 중앙으로, 그 외의 지역은 지방으로 구분되어 있어 지역은 중심에 종속되어 있는 주변이라는 강력한 위계질서가 자리 잡고 있다. 때문에 지역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불평등과 소외의 멍에를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지역 여성은 지역민으로 살아가는 불평등 위에 지역 여성으로서의 차별이 이중, 삼중으로 중첩되어 있어 더욱 힘들다. 지역 여성운동단체의 어려움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몇 년 전부터 여성단체의 제도화, 권력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서울에 있는 규모가 큰 여성단체에나 해당되는 문제일 뿐, 지역은 여성 의제가 전혀 제도화, 주류화되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대구여성회에서 19년째 활동해 오고 있다. 1988년 창립 무렵과 2006년 지금을 비교해보면 대구지역 여성들의 삶은 긍정적으로 변해오고 있다. 그러나 내가 활동하고 있는 대구여성회의 현실은 크게 나아진 게 없다.

강고한 지역의 보수성 때문에 대구여성회 활동가들은 ‘나대는 여자’, ‘억센 여자’로 규정되어 있고, 전국 여성단체 중에서도 가장 적은 활동비를 받고 있을 정도로 재정도 열악하다. 이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여성운동을 한다는 자긍심을 갖기는 참 힘들다.

지역 여성단체 활동가들에게 제공되는 교육이나 경험의 기회도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사소한 교육이라도 받으려면 시간과 돈을 엄청나게 투자해야 된다.

그동안 여성 의제가 중앙(서울)에 있는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설정되다 보니 지역에 살고 있는 여성들조차 서울에 있는 몇몇 큰 여성단체는 알아도 자기 지역 단체는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대구여성회를 한국여성단체의 지부로 오인하는 경우도 있다. 이 점은 지역 여성 밀착형 활동이 부진했다는 의미로, 지역 여성단체의 성찰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얼마 전 타 지역 여성단체 대표가 "단체에서 10년 동안 활동한 활동가를 서울의 여성단체로 보냈더니 1년 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더라"며 지역 활동가들에게 이런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지역 활동가를 서울에 보내 세련된(?) 훈련을 받게 하는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

선배 활동가들이 정·관계로 진출해 개인의 명성도 얻고, 그 지위를 이용해 단체에 도움을 주는 경우나, 외국 유학을 통해 많은 정보와 경험을 쌓고 전문가가 되어 가는 서울지역 활동가들을 보면서 ‘그동안 지역에서 이렇게 힘들게 활동해 왔는데, 나는 뭔가?’ 하는 심한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그동안 서울 여성단체 중심으로 연대, 진행되어 온 여성운동은 뚜렷한 성과를 내 왔다. 하지만 지금은 기존의 연대 방식을 성찰하고 새로운 지역 여성운동 방식 구현과 지역 공동체, 지역 여성의 삶의 방식에 집중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의 주류화된 여성단체를 보면서 느끼는 소외감은 여전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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