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무용수들의 강렬한 모습들이 인상적인 세컨드 네이처김기
한 사내가 무대 한쪽에 쓰러져 있다가 일어나 무대 안쪽을 멍한 시선으로 주시한다. 그때 무대에는 사진들이 희로애락 순서로 변화하다가 문득 숲 속을 걷는 듯 동영상이 펼쳐진다. 그 동영상이 끝날 즈음 무대 중앙에는 수직으로 놓여진 대형 LED전광판을 배경으로 벤치에 남녀가 앉아있다.
이 남녀의 갈등, 소외에 대한 기억의 회상 혹은 마음 속 번뇌가 이후로 흐르게 된다. 중요한 점은 이후 그려지는 무대 위 그림들이 대단히 남성적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뒷골목에서 시비를 즐기는 젊은 사내들의 모습 같기도 하고, 시지프스의 고뇌로 보이기도 하는 사내들의 방황이 줄곧 이어진다. 당연히 그 동작과 선은 크고 거칠다.
호불호를 떠나 남성미 넘치는 무용무대는 대단히 드물고, 그 자체만으로도 참신하고 역동적이다. 모두 9명의 무용수들은 쉴 새 없이 무대 안팍을 들락거려야 했고, 특히 남자 무용수들의 숨은 뭔가를 토할 듯 격한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무대를 횡으로 이동하는 전광판을 통해 다양한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전광판 앞에 선 두 여성무용수가 춤을 추며 전광판을 따라가고, 그 모습은 전광판에 곧바로 영사된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춤이건 춤 아닌 춤이건 그런 대로 작품 속의 연결을 찾을 수 있는데, 유독 이 부분만은 동떨어진 느낌을 주었다.
그 전광판은 잠시 후, 쓰러져 있는 여성과 한 사내를 앞에 둔다. 아마도 아내 혹은 연인으로 보이는 여성에 대해 잔혹한 모습을 보이던 사내는 전광판을 치는 듯 한 동작을 보이고, 전광판에는 유리처럼 산산조각 나는 화면들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조명을 통해 신체의 일부분만 보여주는 장면들이 이어지고, 처음의 벤치 장면으로 돌아간다.
결과적으로 세컨드 네이처의 창단 공연 작품인 <훔치는 타인들>은 ‘타인’에게 집중될 듯하다. 타인에게서 느껴지는 낯섦, 경계함, 두려움 그리고 분노. 불혹의 나이에 곧 접어들 김성한의 안무에는 특히 분노가 강하게 느껴진다. 조명과 전광판을 통해서 다양한 색깔을 무대에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노의 한 빛깔만 기억에 남는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위험한 도발일 수 있겠으나 그 분노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에게 김성한의 작품은 가슴 저린 공감을 줄 것이다.
무용계의 경향과 다른 김성한의 춤... "무용사회에서 일정한 역할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