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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주 여성을 상담하다 보면, 곰곰이 되씹으며 물어보는 말이 있게 된다. "내가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판단할까?"하는 것이다. 남자의 시각에서 보면, 어느 한 쪽이 일방적인 피해자가 아닌 것이 분명한데, 여성의 입장에서 보아도 과연 그럴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본다는 말이다. 최근 나는 그러한 질문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지난 달 타 지역 단체로부터 언어 상의 문제로 국제결혼가정 문제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담당자인 상담실장이 처음 한 말은 "국제결혼 문제는 끼지 않았으면 좋겠는데…"하는 것이었다. 이제껏 국제결혼 문제를 상담하면서 좋지 않은 경험을 많이 해 봤던 상담실장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연대단체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도 그렇고, 우리의 도움이 절실한 사람일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모른척하는 것도 도리는 아니라 싶어 다독거리며 한 번 맡아보자고 했다.
상담실장이 국제결혼 가정 문제에 끼기를 원치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동안 국제결혼을 하여 입국했다가, 이혼 문제로 우리에게 상담을 의뢰해 왔던 여성들 모두가 상담을 진행하며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중일 때 행방불명되거나, 우리에게 온 지 얼마 안 돼서 여러 가지 문제로 상담 진행을 복잡하게 만들었던 것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쉼터에 타 단체로부터 온 H와 만난 첫자리에서 우리는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당신의 어려움을 이해한다.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당신의 사생활에 깊이 개입하지 않겠지만, 우리 쉼터에서 상담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한눈 팔지 말고 우리를 믿고 잘 따라줬으면 좋겠다"고 전했었다.
문제는 상담을 진행하며, 이해 당사자인 남편을 만나는 중간에 발생했다. 서로의 주장이 너무 달랐다. 서로 결혼 파탄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겼다.
H는 "같이 살려고 왔다. 남편만 믿고 왔다. 그런데 남편이 성관계를 과다하게 요구했고 거절하자 구타했다. 그래서 집을 나왔다"고 주장했다.
반면 남자는 "한국에 온 날부터 이 사람은 나를 멀리했다. 공항에 내려 결혼 알선업체 사람이 손을 잡으라고 했지만, 우린 그 사람을 사이에 두고 걸어 나와야 했다. 같이 결혼했던 사람들의 80%는 입국한 날 도망갔다. 이 여자도 그 다음날 나갔다가 밤늦게 다시 돌아왔다. 그래서 여러 번 통역을 통해 어려움이 없는지 물었다. 폭력은 없었다. 그 와중에 열흘만에 집을 나갔는데, 무슨 말이냐. 사기결혼 피해로 소비자보호원에 신고까지 했다"라고 주장했다.
위와 같은 국제결혼의 경우, 결혼 알선업체가 나이차가 상당한 신부에게 본인이 결혼을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미끼로 출국을 강요했다면, 이주여성은 분명 일방적인 피해자다. 피해 여성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구조적으로 국제인신매매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상담을 하며, 여성이 일방적인 피해자라고 말한다는 게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양측의 주장이 상이했지만, 얘기를 듣고 확인해 갈수록 열흘 동안 일어났었다는 일에 있어서 남자의 말에 신빙성이 더해졌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사람이 물건도 아닌데, 결혼 문제를 갖고 소비자 보호원에 신고했다는 말이 어이가 없긴 했지만, 사실을 확인해 가면서 남편이라는 사람의 억울함도 이해할만 했다. 왜냐하면 결혼 알선업체에 출국하기 전 950만원을 지불하고, 베트남 현지에서 또 다시 200만원과 소소하게 든 비용 등을 합하면, 족히 1300만원은 들었다고 한다. 남편 말대로라면 손목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이혼하겠다고 집나간 신부의 마음을 돌이킬 방도가 없는 이상 결혼 알선업체를 고소라도 해 보고 싶다고 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런 그에게 '국제 인신매매 조직이나 다름없는 결혼 알선업체를 고소해서라도 해서 당신이나 H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하고,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가자'고 제안해 봤다. 하지만 'H가 도망갔다면 새로운 신부를 소개시켜 주겠다. 2백만 원만 내라'는 제안을 결혼 알선업체로부터 받은 남자는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답을 미뤘다.
그 와중에 상담 중이던 H가 자국출신 이주노동자에게 핸드폰, 속옷 등의 선물을 요구하여 받더니, 며칠 전 새벽에 둘이 함께 사라져 버렸다. H는 우리가 자신의 말보다 남자의 말을 더 믿는다는 생각을 했는지, 아니면 애당초 결혼할 의사가 없었던 만큼 의지할 남자가 생기자 쉼터를 뜬 것인지 모른다.
이 일을 겪으며 결혼 파탄의 책임은 애당초 단초를 제공한 결혼 알선업체라고 봤지만, "내가 여성이라면 어떤 판단을 하고, H를 위해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 현재 결혼 파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을까"하는 고민을 하며, 똑같이 국제결혼을 하여 살고 있는 여성에게 물어보았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처음 결혼한 사람 힘들어요. 그래도 그러면 안돼요. 나빠요."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쉼터를 나간 것을 두고 한 말인지, 결혼생활을 할 의사가 없으면서 한국에 온 것을 두고 한 말인지 모르지만, 그녀의 답변을 이미 한국사회에 적응한 이의 말로 그저 치부해 버리기엔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내가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걸까?
덧붙이는 글 | 지난해 우리나라 국제결혼 건수는 4만3천여 건으로 전체 결혼의 14%를 차지했다. 그중 외국인과의 이혼은 4280건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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