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란 본래 30대의 80년대 학번으로서 60년대 출생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지금은 이 세대가 이미 40대가 되었기 때문에, 386세대라는 표현을 계속 사용하기에는 논리적 문제점이 있다.
그런데 "요즘에는 10대가 386세대"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요즘 10대가 386세대가 될 수 있을까?
10대가 '386세대'?
여기서 말한 386세대라는 것은 '3·1, 8·15, 6·25를 전혀 모르는 세대'라고 한다. 다시 말해, 한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위 사건들에 대한 역사적 지식 혹은 이해가 부족한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역사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은 자신과 공동체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적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요즘에는 10대가 386세대"라는 말은 그만큼 지금의 10대가 자신과 사회공동체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가리키는 것이다.
공동체의 역사에 대해 몰이해적인 세대가 등장한 원인은 무엇일까? 저출산 문제나 개인주의적 사회경향을 들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학교 차원에서의 역사교육 부족을 그 주요원인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역사교육이 갈수록 위축되는 상황에서, 10대들의 역사 인식이 희박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점은 중국의 상황과 잘 대비되는 것이다. 최근 중국은 동북아 역사전쟁에서 다분히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고구려사·발해사뿐만 아니라 백두산마저 자기네 것이라 우겨대는 중국인들의 태도를 보면 어떤 섬뜩함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중국이 이렇게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면모를 보일 수 있는 것은 물론 정부 차원의 지원에 힘입은 바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사회 저변의 역사학적 역량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중국 청화대학의 한 역사학자는 중국의 역사학 실태를 소개하면서 "중국의 역사학은 러시아의 문학, 독일의 법학·철학에 비견될 만한 위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중국의 역사학이 오랜 전통과 강력한 사회적 지지 위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강조한 말이다.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역사전쟁을 벌일 수 있는 것은 이처럼 역사학적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내부에 화력(火力)이 없다면, 저처럼 대담하게 역사전쟁을 전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상황과 잘 대비되는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0대들이 한국 근현대사의 핵심 사건인 3·1 운동이나 8·15 광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훗날 동북아 역사전쟁이 한층 더 첨예화되었을 경우에 우리가 과연 어떻게 중·일 양국에 대항할 것인가 하는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역사를 지키려면, '역사전쟁의 전사'들을 더욱 많이 '징집'해야 하는데, 자격을 갖춘 전사들이 없다면 누가 국민들을 대신해서 우리 역사를 지킬 수 있을까?
그런 대외적 문제를 떠나, 10대들이 우리 역사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10대와 다른 세대 간의 커뮤니케이션조차 힘들어질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통합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10대들이 한국 근·현대사 핵심 모른다면...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최근 한국의 학교에서 역사 교육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실로 우려할 만한 경향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교과서 차원의 역사교육이 위축된다면, 드라마·무협지 등을 통해 전달되는 부정확한 역사 지식이 청소년들의 의식세계를 지배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10대 청소년들에게 386 사건들의 의미와 배경을 이해시키는 것은 우리 역사를 지키는 데 꼭 필요한 것이라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기왕이면, '386 PC'보다는 '586 PC'를 제공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한다. "요즘에는 10대가 386세대"라는 말은 단순히 386이라는 기존의 유행어에 맞추기 위해 나온 것일 뿐이다.
386이 우리 역사의 주요 사건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386이 가장 핵심적인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3·1이나 8·15로 상징되는 민족 자주의 화두나 6·25로 상징되는 민족 분단의 문제도 중요하겠지만, 이 말 속에서는 우리 사회의 당면 현안인 경제 민주화에 대한 메시지를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3·1과 8·15는 민족자주라는 동일한 범주에 속하는 사건이다. 그리고 6·25는 민족 분단의 현실을 알려 주는 것일 뿐, 분단 극복을 위한 적극적 메시지까지는 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기왕이면 10대 청소년들에게 386 PC가 아닌 586 PC라는 새로운 기종을 공급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렇다면, 586이란 어떤 역사적 사건들을 가리키는 것일까? 다음 3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5·18은 한국 사회의 과제인 정치·경제적 민주화와 관련하여 실천적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민주화는 어느 정도 달성되었지만, 경제적 민주화는 아직도 더 많은 과제를 필요로 한다. 5·18 민주화운동은 10대 청소년들이 훗날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 권리를 위해 투쟁할 때에 좋은 역사적 교훈을 제공해 줄 것이다.
둘째, 8·15는 한국 사회의 과제인 민족 자주와 관련하여 여전히 역사적 교훈을 던지고 있다. 8·15는 우리에게 '불완전한 광복', 다시 말해 '불완전한 자주'의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가 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되찾아야 하고, 왜 우리 땅에 우리 군대만 있어야 하며, 왜 우리의 시장을 우리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지와 관련하여 8·15는 10대 청소년들에게 업그레이드된 역사적 교훈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8·15는 꼭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과 관련된 문제로도 재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6·15는 한국 사회의 과제인 통일과 관련하여 새로운 교훈을 주고 있다. 북진이나 흡수의 방법이 아닌, 상호 대등한 상태에서 민족 협력적인 자세로 통일을 추구하는 데서 6·15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질 것이다.
"요즘에는 10대가 386세대"라는 말에서는 6·25를 '10대들이 꼭 알아야 할 역사적 사실'로 전제하고 있지만, 현대적 상황을 놓고 볼 때에는 6·25보다는 6·15(남북공동선언)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6·15는 6·25를 극복하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6·25는 분단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6·15는 통일의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10대들이여, '586 세대'가 돼라
이러한 점들을 볼 때, 586은 5·18(민주), 8·15(자주), 6·15(통일)이라는 우리 사회의 고전적이면서도 또 현대적인 핵심 과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역사적 교훈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10대 청소년들을 우리 사회의 공동체와 적극적으로 연계시키려면, 10대들이 이러한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소양을 기를 수 있도록 기성세대가 적극 도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그것은 훗날 더욱 더 가열될 동북아 역사전쟁에 대비하는 '전쟁 준비'도 될 것이다.
역사 교육 분야에서 386을 뛰어넘어 586으로 가는 길. '386을 모르는 세대'를 '586을 이해하는 세대'로 육성하는 길. 그것이 동북아 역사전쟁에 투입할 젊은 전사들을 길러 내는 '전쟁 준비'의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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