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어디서 왔니?

더 이상 상처받는 애완동물이 없기를 바랍니다

등록 2006.09.08 14:31수정 2006.09.0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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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으로 물건을 하러간 남편이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밤 12시가 훨씬 넘어서였습니다. 한번 잠이 깨면 쉬이 다시 잠이 들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문을 여는 소리를 듣고도 나가지 않았는데, 남편은 그런 속내도 모른 채 거실을 환하게 밝힌 채 한참을 덜그럭 거렸습니다.


'출출해서 야식이라도 만들어 먹나?' 냉동실에 물만두 있는데 그걸 삶아 먹느라고 저렇게 요란한가본데 지금 먹으면 다 살로 갈텐데 '왠만하면 그냥 참지'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제와 뭐라고 하자니 "자고 있지도 않았으면서 문도 안 열어주고 자는 척했냐?"고 서운해할까봐 야밤의 소동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잠이 들어 버렸지요. 알람소리에 다시 눈을 뜬 건 아침 7시였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밥상을 차려놔야 겨우 일어나던 남편이 시장까지 다녀오는 강행군을 치렀음에도 저보다 더 일찍 일어나 아침을 맞고 있었습니다.

"잘 다녀왔어요? 좋은 물건 많이 나왔어요?" 애써 남편의 귀가를 몰랐던 척 물었습니다. "물건이야 다 좋지 가을 옷들 많이 나왔더라." 말하지 않아도 돈이 부족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눈을 사로잡은 건 남편의 생소한 손놀림이었습니다.

"뭐해요?"
"응! 어젯밤에 시장갔다가 올려는데 누가 차 위에 이걸 갖다놨더라고. 그래서 지금 밥 주는데?"

업둥이 햄스터
업둥이 햄스터주경심
제 눈에 들어온 건 바로 햄스터와 함께 주워왔다는 집과 해바라기씨와 톱밥이였습니다. 내 집보다 좋아보이는 예쁜 집에서 앙증맞은 햄토리는 해바라기씨를 까먹느라 제 시선에는 아랑곳 없습니다.


"갖다 버려!"

귀여움을 느낄 새가 없었습니다. 원체 애완동물과는 친할 새도 없이 퍽퍽하게 살아온 어린시절 때문이기도 했지만, 알레르기와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들이 있는 한 애완동물과의 동거는 어불성설인 것이지요.


"왜?"
"당신은 애들 생각은 안해? 그리고 나는? 몇 달째 비염 약 먹고 있는데도 안 나아서 훌쩍거리고 다니는 나는 안 보이냐고? 당장 갖다 버려요!"

엄마 아빠의 때아닌 소동에 아이들이 부스스 눈을 부비며 작은 방으로 건너왔습니다.

'안 돼!'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잠에 취해 비틀대던 아들의 눈이 화등잔만 해지면서 "와~ 내가 좋아하는 햄토리다"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 아이에게 아토피와 알레르기 때문에 도로 갖다 버려야 한다는 엄마의 장황한 설명은 먹혀들지가 않았습니다. 그저 인정머리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엄마의 고집으로 밖예요.

"내가 청소도 하고, 밥도 줄 거예요!" 기어이 울을꼭지를 틀어버리는 아들을 보더니 잠자코 있던 남편까지 한마디 거듭니다. "그래 그냥 키우게 해줘라."

절대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서야 아들은 유치원으로 갔고, 남편 역시 장사를 나갔지만 저는 지금도 버릴까 말까를 놓고 고민중입니다.

애기 주먹만한 작은 몸도 미덥잖고, 정 들었는데 어느날 죽어버린 뒤 받을 아이들의 상처도 걱정되고, 더군다나 발발 떠는 것처럼 보이는 작은 움직임이 꼭 병에라도 걸린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큰소리 땅땅치던 아침과는 달리 쉬이 갖다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그새 정이라도 들어버렸나 봅니다.

언젠가 지하철역을 갔을 때였습니다. 계단을 오르는 난간에 작은 종이가방이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보아하니 주인도 없는 것 같고 해서 호기심에 열어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햄스터 두 마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날이 아주 추운 겨울이었는데, 아무래도 누군가가 일부러 버리고 간 듯했습니다. 애시당초 키우지를 말지. 버리고 간 사람이 야속했지만 저 역시 그냥 나와야 했습니다. 키울 자신도 없었거니와 키우다가 버리지 않을 자신 또한 없었으니까요.

안 본 걸로, 못 본 걸로 치자고 마음 먹었지만 작은 햄스터의 모습은 내내 뇌리 속에 머물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길거리를 가다 보면 주인 없는 강아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애초부터 주인 없는 강아지도 있었겠지만 잘 다듬어진 털하며, 사람을 보고도 무서워하기는커녕 슬금슬금 다가오는 걸 보면 애완견이라는 이름하에 사람손에 키워진 강아지들이 대부분이지요.

그렇게 사람의 기분 여하에 따라 키위지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하는 애완동물을 보면서 더욱더 절대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겠다는 결심이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내 집으로 들어온 저 햄스터 역시 누군가의 손에 의해 애지중지 키워지다 더 이상 신기하지도 예쁘지도 않은 모습에 버려졌겠지요.

아이들을 위해 줏어 왔다는 남편도, 그 아이들을 위해서 또 다시 버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나도 사실은 햄스터가 더없이 불쌍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불협화음같은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불협화음같은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주경심
남편은 벌써 두번째 전화를 해 왔습니다. "버렸어?" 마누라가 아파 누워도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질까 서운하기까지합니다. "아직!" "그냥 키우자. 내가 다 청소할게!"
"지난번에 시골에서 게 갖고올 때도 자기가 청소한다고 했잖아. 근데 지금 누가 청소해?" "알았어. 그것도 내가 다 할게."

믿고 싶고, 믿는척이라도 해주고 싶지만 햄스터의 뒷처리는 또 제 몫이 될 겁니다.
그러다 보면 시골에서 상경해 밀폐용기 하나에 세들어 살고 있는 게들처럼 "버린다. 진짜 버린다" 하면서도 어느새 정이 들어버려 버리기는커녕 죽을까봐 애지중지 살피며 키우게 되겠지요.

적잖은 돈을 주고 집이며 밥이며 다 사서는 결국에 버리고 마는 애완동물들. 사람들의 소유욕과 호기심에 더 이상 고통받는 애완동물이 없기를 바라며 어쩔 수 없는 한지붕 세 가족의 안주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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