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24일 경기도 광주 특전 교육단에서 열린 이라크 파병 자이툰부대 2진 1700여명에 대한 환송식에서 부대원들이 경례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성연재
9·11 테러가 발생한 직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나온 부시 행정부는 동맹, 우방국들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우리의 편에 서든, 테러리스트의 편에 서든 양자택일하라"고 했던 것.
이는 미국의 동맹 전략에도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맹국이 미국의 안보에 기여할 때, 미국의 안보공약도 확고해질 것이라는 '엄격한 상호주의'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테러와의 전쟁' 초기에 미국에 협력했던 미국의 동맹, 우방국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계기로 다른 선택을 했다. 독일, 프랑스, 캐나다 등은 '반전' 대열을 주도했고, 영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 등은 '참전'을 선택했다.
2003년과 2004년 두 차례에 걸쳐 파병을 강행한 노무현 정부가 기대했던 것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었다.
미국이 어려울 때 도와주면 미국도 한국의 입장을 이해해 대북정책을 변화시키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이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이종석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은 '기회비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확고한 무게중심을 잡고 미국을 견인하겠다는 판단보다는 '미국에게 잘 보이기'를 선택한 노무현 정부는 계속해서 '동맹의 덫'에서 허덕이게 된다. 미국의 필요에 따라 제기된 용산기지와 2사단 이전 비용을 대부분 떠 안았을 뿐 아니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마저 인정해주었다.
이렇듯 미국의 요구는 대부분 들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금이 간 한미관계의 신뢰는 회복되지 않고 있고, 막대한 기회비용을 치르면서 기대했던 미국의 대북정책의 변화는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은 일이 되고 말았다.
'성찰'은 남북한에게도 필요하다
필자는 앞선 글에서 9·11 테러 5주년을 맞이한 미국의 분위기는 '성찰'과는 거리가 멀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는 9·11 테러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을 외면한 채, 이 불행한 사건을 자국의 패권 강화로 활용하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북한은 어떤가? 북한은 대미 관계 정상화를, 남한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및 대등한 한미관계 구축을 목표로 삼았으나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 바라던 바와 지금이 거리가 멀다면, 남북한 모두 치열한 자기반성을 통해 '다른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기실 부시 행정부 때의 남-북-미 삼각관계를 되돌아보면, '국가' 차원의 전략이 갖는 한계를 보여준다. "한미동맹을 강화시켜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남한의 국가 전략은, 그 자체로도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국가 전략과 충돌하는 것이다.
반대로 "핵과 미사일 시위를 통해 미국과 담판을 짓겠다"는 북한의 국가 전략 역시, 민족공동체의 생존권을 미국의 선택에 맡기는 극히 위험한 발상일 뿐만 아니라 남한의 국가 전략과도 충돌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충적인 남북한의 국가 전략은 미국의 패권주의 강화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이는 결국 남북한 모두 '국가'를 넘어선 '민족' 차원의 전략 수립이 절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세계전략 차원에서 남북한을 분리해서 대응하고 있다. 오늘날 한반도의 북쪽은 '대량살상무기 및 테러와의 전쟁'의 대상이 되고, 한반도의 남쪽은 그 전쟁의 동맹국이 되고 있는 현실만큼이나 지독하고도 위험한 역설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북한이 미국만 바라보면서 서로를 배제하고 무시하는 국가 전략을 고집할 경우, 헤어나올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들 수 있는 구조적인 요인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국가를 넘어 민족의 관점에서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어느 한쪽의 전략이 다른 쪽의 전략에 해(害)를 입혀서는 안 된다는 점이 충족되어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는 민족적 관점의 전략 목표를 남북한 모두 공유해야 한다.
그러나 남북대화가 중단되고 상호간의 불신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어느 일방의 국가전략은 상대방에 대한 포용보다는 배제를 낳기 쉽다. 이는 거꾸로 국가를 뛰어넘는 민족 차원의 전략 마련을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이 꾸준한 남북관계의 발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민족이 동맹보다 우선한다"는 민족주의 관점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다. 민족공조이든, 한미동맹이든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가 양보할 수 없는 가치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크게 넘어서지 않는다.
즉, 미국이 말하는 한미동맹 강화 논리가 한반도의 평화를 저해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면 견제를 해야 하듯이, 북한이 강조하는 '반미' 민족공조 역시 맹목적인 선(善)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남북한 모두 '미국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반미적인 국가인 북한은 그 이미지와는 달리 가장 미국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북은 망상에서, 남은 환상에서 벗어나야
이를 두고 한 전문가는 '반미 사대주의'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북한은 이 표현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악의적인 무시'를 밑바탕에 깔고 있는 부시 행정부에 매달릴수록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부터 더 멀어진다는 역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한 역시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야기되는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게중심'을 잡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무게중심을 잡는다는 것은 남한이 북한, 미국 어느 한쪽에 접근함으로써 다른 쪽과 멀어지는 것보다는 남한 스스로가 무게중심이 됨으로써 북한과 미국을 견인하는 구심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남북한이 미국에 대해 가져야 할 덕목은 미국에 대해 초연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대미 '인정투쟁의 카드'로 삼은 핵과 미사일도, 남한이 '북핵 해결의 기회비용'으로 삼은 한미동맹 강화도 한반도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렇다면 길은 어디에 있는가? 미국의 반응과 정책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향해 남북한이 손을 맞잡고 뚜벅뚜벅 걸어가면, 그 길은 열릴 것이다. 북한은 '핵 억제력'이라는 망상을, 남한은 '동맹'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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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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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축'서 헤매는 북한 '동맹의 덫'에 걸린 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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