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양중 교사 '밥 퍼'사랑

3학년 전원 저녁밥, 교사가 손수 지어줘

등록 2006.09.12 13:51수정 2006.09.12 13:51
0
원고료로 응원
a "얘들아, 밥먹자!" 집에서 그러하듯, 선생님의 한마디에 밥그릇과 숟가락, 젓가락을 든 학생들이 모여든다. "맛있게 먹어라" 밥을 퍼주는 선생님의 손길이 분주하다.

"얘들아, 밥먹자!" 집에서 그러하듯, 선생님의 한마디에 밥그릇과 숟가락, 젓가락을 든 학생들이 모여든다. "맛있게 먹어라" 밥을 퍼주는 선생님의 손길이 분주하다. ⓒ 장선애

충남 예산군 신양면에 자리한 신양중학교 3학년 담임인 김종애, 송용배 교사는 퇴근시간인 오후 5시가 되면 오히려 분주해 진다. 3학년 학생들의 저녁식사 준비 때문이다.

간이 주방시설을 갖춰놓은 열람실에서는 이 무렵 언제나 고소한 기름냄새,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풍겨나온다. 두 교사는 익숙한 솜씨로 요리를 하며 낮동안에 있었던 학교생활 이야기를 나눈다. 같은 시각, 학생들은 그룹별로 공부를 한다.

어머니가 저녁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공부를 하는 보통 중3 자녀를 둔 가정집의 풍경과 다르지 않다. 풍경만 그런 것이 아니라 두 교사의 마음도 그렇다.

“우리 애들 얼마나 이쁜 지 몰라요. 식사준비 하는 동안 알아서 공부하고, 밥 먹고 나면 스스로 설겆이도 해요. 밥은 또 얼마나 잘 먹는데…” 두 교사의 자랑이 끝없다.

a 도서실 옆 열람실에서 요리삼매경에 빠진 김종애, 송용배 선생님

도서실 옆 열람실에서 요리삼매경에 빠진 김종애, 송용배 선생님 ⓒ 장선애

지난 4월부터 시작한 이들 교사의 '밥 퍼' 사랑은 여름방학동안 잠시 쉬었다가 개학하면서 바로 재개됐다.

대부분 중 3학생들이 그렇듯 이 학교도 지난해까지 수업이 끝난 뒤 예닐곱시까지 자습을 하고 하교했다. 당시 하교 뒤에는 학원으로 직행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학교 근처에서 인스턴트나 분식으로 ‘저녁을 때우기’일쑤였고, 배고픈 상태에서 학습능률은 오르지 않았다.

“한창 크는 아이들, 때됐는데 밥도 안먹이고 공부하라 하면 글이 눈에 들어오겠습니까? 우선 배부터 채워줍시다.”


교사들은 의기투합했고, 아이들의 변화는 놀라웠다.

저녁 먹기 전 1시간 30분동안 그룹별로 모여 토의하며 공부를 한다. 저녁식사 뒤에는 과학실에 모두 모여 집중 자습을 한다. 교사들의 감독은 필요치 않다. 1년 내내 사생활을 포기하고 자신들의 저녁식사를 챙겨주는 스승들의 바람을 철이 들기 시작한 제자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습실인 과학실은 이 학교에서 냉·난방 시설이 가장 잘 갖춰져 있는 곳이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냉방시설을 맘껏 사용했고, 학교측은 전기료 부담을 한 번도 얘기하지 않았다.

학교가 나서서 배고픔과 더위를 잊게 해주니 학습능률은 쑥쑥 올랐다. 1학기 기말고사 결과 82%가 평균 70점이 넘었다. 수행평가도 모든 학생들이 성실하게 해냈다. “같이 한솥밥을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새삼 느꼈습니다.” 김종애 교사의 얘기다.

a 저녁식사 뒤 고요한 자습실. 감독교사가 없어도 각자 알아서 자신의 공부를 한다.

저녁식사 뒤 고요한 자습실. 감독교사가 없어도 각자 알아서 자신의 공부를 한다. ⓒ 장선애

3학년 모두래봐야 35명, 전교생이 117명인 작은 학교. 담임반이 아니더라도 이름은 물론, 누가 누구와 친척인지, 집안 사정은 어떤지 뻔히 알고 있지만 밥을 지어 함께 먹으면서 교사와 학생사이의 결속력과 친근감은 더 두터워졌다.

한창 사춘기인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따로 할 필요도 없다. 선생님의 ‘밥 퍼 사랑’을 느끼는 아이들, 엇나가면 얼마나 엇나가겠는가. 밥을 먹인다는 것은 배만 불리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채워지는 일이니.

두 교사 뿐만 아니라 다른 교사들도 나서 부식과 간식거리를 사들인다. 때로는 교장, 교감, 다른학년 교사들까지 학생들과 저녁밥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학부모들의 지지와 성원이 이어진 것은 당연한 일.

시키지도 않았는데 김치나 밑반찬이 떨어졌다 싶으면 냉장고에 새로운 반찬통들이 채워진다. “아마 아이들이 집에 가서 이야기를 하는가 봐요. 부모님들이 수시로 물어보신다고도 하고.”

쌀과 부식은 모두 학부모들이 직접 농사를 지은 것이다. 게다가 신양면에 친환경농업단지가 있어 학생들의 저녁 식단은 말 그대로 ‘웰빙’이다.

a "된장도 먹어야지. 건더기도 먹고" 어머니 아버지 같은 잔소리를 들으며 학생들은 밥을 뚝딱 먹어치운다.

"된장도 먹어야지. 건더기도 먹고" 어머니 아버지 같은 잔소리를 들으며 학생들은 밥을 뚝딱 먹어치운다. ⓒ 장선애

덕분에 지난 1학기 동안 저녁 자습자습을 하면서 학생들이 부담한 돈은 1인당 식비 2만원이 전부다. 학부모가 보내준 부식거리는 늘 넉넉해서 때로는 오전에도 계란이나 감자, 옥수수 같은 것을 삶아 아침을 먹지 않고 등교한 아이들에게 먹이곤 한다.

‘사립학교’하면 떠오르는 단어인 ‘이사장 전횡’ ‘재단비리’가 신양중과 거리가 먼 것도 이런 분위기가 가능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저희 학교는 재단의 입김이 전혀 없습니다. 학교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교사와 학부모가 뜻을 맞춰 교육환경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송용배 교사의 말이다.

그런데 요즘 이 학교 교사들이 큰 고민에 빠졌다. 인성과 학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는 잘 잡고 있는듯 한데 농촌인구 감소로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학년별로 2개 반을 유지하던 신양중학교의 내년 입학예정자수는 29명. 한 학년 최소인원이 36명은 돼야 2개 반으로 나눌 수 있으니 7명을 더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교과담당 교사 전원을 유지하려면 1개 학년 2개 반은 절실하다.

“우리 학교의 필요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교육의 그늘에서 벗어나 중학교 시절을 보내고픈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에게 우리 학교를 자신있게 권합니다.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아이들을 위한 교육환경을 만들어 가실 분 없습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고 있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고 있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에도 실렸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2. 2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3. 3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4. 4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5. 5 지금도 소름... 설악산에 밤새 머문 그가 목격한 것 지금도 소름... 설악산에 밤새 머문 그가 목격한 것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