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를 다시 읽다

잃어버린 '느림'의 문화를 찾아서 ②

등록 2006.09.14 09:57수정 2006.09.14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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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구문명이 빠르게 흡수되면서 조금씩 잃어버린 우리의 아름다운 ‘과거’에 대한 보고서이자 다시 되짚어보아야 할 우리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티벳에 있는 작은 산간 마을 ‘라다크’에서 직접 16년에 걸쳐 순진하고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라다크 사람들과 함께 섞여 생활을 했다. 서구문명에 익숙해진 저자의 눈에는 라다크 사람들의 공동체적 삶의 방식이 모두 새롭게만 다가온다. 마치 어린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듯.


언어학자인 저자 특유의 문체(문장력) 때문인지 아니면 ‘라다크’라는 공동체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매력 때문인지 책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마치 내가 그 마을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곤 하였다.

전통 ① -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해요"

라다크 사람들은 ‘물질의 풍요’와는 상관없이 자신들에게 내려진 자연적 조건에 맞추어 검소하게 생활을 했다. 큰 집이나 큰 정원의 유무가 그들의 행복에는 전혀 무관한 듯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부자’와 ‘가난한 자’라는 말의 차이를 잘 알지 못했다. 그들의 사고방식 깊이 뿌리박고 있는 공동체 의식 속에는 삶의 주체가 ‘나’가 아니라 ‘우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온몸에 버릇처럼 배어 있었다.

저자가 라다크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개울에서 옷을 빨고 있는 것을 보고 그곳에 사는 어린 소녀는 그 물에서 옷을 빨지 말라고 수줍게 말을 건넨다. 이유를 묻자 “저 아래쪽 사람들이 그 물을 마셔야 돼요.”라고 말하며 일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아래쪽 마을을 가리켰다. 그들은 서슴없이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해요”라고 말하며 저자의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을 흔들었다. 그렇듯 라다크 사람들에겐 ‘공존’의 문제가 최우선이었던 것. 돈을 좀 더 버는 것보다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니!

전통 ② -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고 인간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


또한 라다크 사람들에게는 시간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말들이 있다. “어두워진 다음 잘 때까지”라는 뜻의 ‘공그르트’, “해가 산꼭대기에”라는 뜻의 ‘니체’, “해뜨기 전 새들이 노래하는 아침시간”을 나타내는 ‘치페-치리트’ 등이 그것이다.

이런 말들을 통해 라다크 사람들의 생활패턴이 얼마나 여유롭고 자연스러운지 엿볼 수 있다. 정제된 시간에서 1분 1초를 다투는 현대인들에게는 도저히 쓸모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이러한 언어들은 그들의 삶이 그만큼 행복하고 평화롭다는 것을 반증해준다. 라다크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심한 욕이 바로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는 것은 그들의 가치관으로 봤을 땐 지극히 당연한 일인 지도 모른다.


이런 느긋한 삶의 리듬으로 인해 그들은 풍족하게 먹지 않아도 건강하고 활기차게 생활을 한다. 많은 현대인들을 괴롭히는 성인병이 그들에겐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이유는 그들에겐 ‘스트레스’가 거의 없고,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서 나는 음식들을 섭취하기 때문이란다. 얼마나 먹느냐가 아니라 어떤 생활을 하느냐에 따라서도 건강은 얼마든지 좋을 수도 반대로 나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립고 정겨운...우리의 잃어버린 돌담. (문의영화마을)
그립고 정겨운...우리의 잃어버린 돌담. (문의영화마을)국은정
저자가 기록한 라다크의 전통적 삶은 우리가 잃어버린 ‘고향’의 풍경을 떠올리게 만든다. 우리에게도 라다크 부럽지 않을 만큼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던 문화가 있었다. ‘향약, 두레, 계, 품앗이’와 같은 단어는 지금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우리가 잃어버린 과거가 그리 멀지 않은 탓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어른을 공경했고, 노인들의 생각을 존중했다. 그들의 지혜를 소중히 여길 줄 알았다. 라다크 사람들 역시 늙은 사람들이 생활의 모든 분야에 참여한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터나 가족으로부터 소외되는 일은 당연히 발생하지 않는다. 라다크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말이 하나 있다.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고 인간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

전통 ③ - 전염성이 강한 그들의 웃음, 죽음조차 삶의 일부

일찍이 원시적이고 자연적인 삶을 유지해온 인디언들처럼 그들 역시 ‘죽음’을 비교적 쉽게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그들의 삶에 깊이 뿌리박힌 ‘불교’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자연의 이치를 알고 이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가 뜨고 지고, 꽃이 피고 지듯이 사람의 목숨도 그러하다는 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항상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아는 탓이리라.

죽음조차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그들은 소소한 삶의 기쁨 또한 누릴 줄 안다. 저자는 그들과 조금이라도 같이 지내다보면 전염성이 강한 그들의 웃음에 감염되고 만다고 기분 좋게 고백한다. 남을 돕는 것이 곧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믿는 그들은 신기한 듯 질문을 던진다.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행복하지 않단 말입니까?”

변화 ① -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다

있는 그대로 아름답고 평화롭던 그곳에도 차가운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친다. 인도 정부의 산업화 추진으로 인해 라다크에는 많은 분야에서 서구화된 ‘개발붐’이 인다. 그중에서도 관광산업이 가장 활기를 띄게 된 것은 당연한 일. 이때부터 엄청난 수의 관광객들이 이 조용한 마을에 밀어 닥치기 시작했다. 광범위하고 파괴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관광객들은 점점 더 깊숙이 라다크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관광객들은 오로지 자신들이 살아온 삶의 시각으로 라다크 사람들에게 ‘빈부’에 대한 관념을 심어준다. 그들의 입을 통해 라다크 사람들은 ‘가난하다’라는 말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이다. 물질과 경제가 빠른 속도로 라다크를 변화시켜 갈수록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의 간격은 벌어질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다. 그렇게 조금씩 라다크 사람들은 서로간의 깊고 오래 지속되어온 관계에서 맺어온 안정감과 정체감을 점점 상실해갔다.

변화 ② - 서구화된 교육, 분열되는 공동체

변화는 경제뿐만 아니라 교육 분야에서도 이루어졌다. 저자는 ‘서구의 교육체제는 온 세계의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환경에서 나오는 자원을 무시하고 똑같은 자원을 사용하도록 가르침으로써 우리 모두를 더 빈곤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교육은 인공적인 결핍을 만들어내고 경쟁을 유발한다.’고 서구화된 교육 체계의 문제를 냉철하게 꼬집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누군지를 상실하고, 개성마저 상실하게 된다. 그것은 다시 긴밀하게 짜여진 공동체의 역할을 붕괴시킨다. 더 이상 ‘존재’가 아니라 ‘소유’로서 개별화된 삶을 살아가길 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내 것’과 ‘네 것’이 구별되기 시작한다.

다시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라다크는 더 이상 따뜻한 고원지대가 아닐지도 모른다. 모래가 날리며 찬바람 쌩쌩 부는 그저 작은 개발구역일뿐. 그리고 그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한 ‘개발’은 그들이 알지 못했던 ‘빈곤’이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나’에 대한 소중함, 더불어 ‘우리’의 소중함을 모두 잃어버린 채 마른 먼지 폴폴 날리는 황량한 땅으로 변해 버리고, 사람들의 마음 또한 그렇게 삭막하게 변해 갈지도.

그리운 돌담 (문의영화마을)
그리운 돌담 (문의영화마을)국은정
곧 그들은 ‘돈’이 지상에 온 최대의 목표인양 전전긍긍 살아가면서 온갖 스트레스와 피로에 쌓여 다시 그 오래전 기억들을 머릿속으로만 그리워하겠지? 지금의 우리처럼.

그래도 저자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우리가 수천 년 동안 존재해왔던 가치를 오래전 라다크로부터 다시 재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 고향과 ‘아름다운 라다크’가 있는 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언인지 찾아낼 수 있는 힘도 결국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다시 라다크로부터 배워야 할 때이다.

“그들은 일반적인 개발방식처럼 그들 자신의 오래된 토대를 무너뜨릴 것이 아니라 그 토대 위에다 건설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양희승 옮김,
중앙books(중앙북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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