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깃덩이의 인간 조건

이동욱 개인전 'Breeding Pond'

등록 2006.09.19 16:09수정 2006.09.1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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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에서 삼청동으로, 정독도서관 방향의 골목길을 따라 가면 갤러리 아라리오가 나온다. 현재 이곳에서는 이탈리아, 독일 등에서 호평을 받은 '이동욱 개인전'이 9월 8일부터 10월 8일까지 열리고 있다.

'Breeding Pond'는 'Inbreeding', 'Mouthbreeding'에 뒤이은 전시이다. 이번에도 역시 이동욱은 새끼 손가락 크기의 사람 피규어와 쇠고리 등의 오브제를 이용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a 포스터. Mermaid

포스터. Mermaid ⓒ 갤러리 아라리오

전시장에 들어서면 하얀 벽면을 여백으로 두고 살색의 작은 사람들이 잘 가공된 햄조각처럼 군데군데 떨어져있다. 가까이 다가가 주시하면 일단 들어오는 것은 조금도 미화되지 않은, 남자의 누드이다.

뱃살이 부풀어 겹쳐지고 붉은 성기가 달려 있으며 근육은 가꾸어지지 않았다. 머리카락과 털도 면도되어 보이지 않으며 핑크색 살만이 남아있다.

작은 살덩이의 사람들은 외따로 서서 쇠사슬을 걸치고 있거나, 팔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거나, 각자 앉아있다. 전시장의 중간 쯤에 들어서면 이들은 노예선에 처박힌 노예처럼 겹겹이 쌓여있고, 통조림 안에 구겨져서 밀어넣어져 있다.

틈이 보이지 않을 만큼 엉겨있는 육체들은 손으로 눌러 뭉갠듯이 한덩이를 이룬다. 심지어는 아예 눈코입과 팔다리 등의 형체가 무화된, 가공이 끝난 햄으로 통 안에 담겨져있다.

작가가 탐구하는 주제인 breeding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번식, 부화;사육;사양(飼養);품종 개량, 육종(育種)


대상을 동물로 바꾸면 양육은 사육이 된다. 인간의 문명을 한꺼풀 벗겨 날것으로 드러낸 '이동욱 개인전'이 증언하는 것은 되려 '인간을 사육'하는 문명의 잔인성이다.

식량을 기르기 위한 양어장이나 가공을 거친 통조림, 상품을 감싸는 버터의 포장지 등은 식생활의 과정을 분화시켜 기계화하고 상품화한 문명의 유통과정이다. 거기에 거꾸로 인간이 대상이 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누군가의 기름진 식탁과 냉동고에서 잉여를 낳은 자본이, 지구의 한 편에서 인간의 소외를 가져왔듯이.


a Appetizer

Appetizer ⓒ 갤러리 아라리오

'에피타이저'라는 작품에서는 식탁의 네 다리를 묶은 위에 한 남자가 팔을 들어 한 방향을 가리킨다. 양어장에서 나가는 길을 가리키는지, 목격한 참상을 가리키며 고발하는지? 그러나 그의 의지는 독창적인 장식일 뿐, 결국 가장 먼저 삼켜질 전채요리에 불과하다.

'Slaves'와 'Real'이란 작품에서 인간의 육체는 밧줄에 묶여 불편한 자세로 매달려 있다. 'Real'에서는 고문을 받는 자세로 남자 둘이 입맞춤을 하고 있다. breeding에서 품종개량이라는 의미를 읽어내면, 이들은 성조차 무화된 채 생식 실험의 대상이 된다. 꽁꽁 묶여 매달린 자세는 이들 접촉의 불편하고 억지스러움을 연출한다.

전시장 안에 개성을 간직한 '인간'은 사라지고 없다. 생기가 사라진 이들의 표정은 공포와 절망에 사로잡혀 있다. 눈알이 지워지고 벌려진 입은 입꼬리가 처져 있다. 사육장에 가두어진 채 자라다가 살해되어 포장육으로 팔리는 돼지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a Real

Real ⓒ 갤러리 아라리오

사람의 나체를 드러내는 작품은 많다. 그러나 남자를 살덩이로 드러내는 작품은 예외적이다. 여자의 나체를 그와 같은 방식으로 드러내는 작품들이 많이 있었던 것과는 일면 대조적이다.

여자의 육체는 검은 양복을 갖춰입은 교양있는 신사들 속에서도 종종 먹음직스러운 하얀 살덩이로 드러났다. 또한 여자와의 성관계는 종종 '먹는다'라는 어휘로 표현되는데 이는 사람을 한 가지 대상으로 물화하는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현대 작가 이동욱은 이상화된 나신상이 아닌 살덩이로 전락한 남자의 나체를 표현한다. 포르노에서 여자의 육체를 절단하고 묶고 실험하듯이, 남자의 육체를 사정없이 유린한다. 그들 역시 누군가의 식탁에서 '먹히고' 있다.

자극적인 전시는 일상 속에 숨겨진 비극성을 폭로한다. 이동욱은 그의 관심사가 "인간에 대한 연민"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연민을 위해서 작가의 머릿속에서 돌아간 시스템이 잔인하다. 그러나 한 작가의 인간에 대한 연민을 위해 동작된 상상의 섬뜩함은, 사회에 쌓인 불만의 위험수위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전시회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준다. 너도 나도 수차례 길러지고 가공되어 먹히는 살덩이다. 그것이 현실 아래 대다수가 피해갈 수 없는 '인간 조건'이다. 그로부터 소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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