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손이 가지(뒷면)한성수
그런데 우떤 보리숭년(흉년)든 해, 할 수 없이 이웃마을 부잣집에서 장기쌀(주로 보릿고개 때 빌렸다가 다음해 배로 갚는 고리의 쌀이나 보리)을 내어 먹었제.
다음해 가실이 되었는데도 땅뙈기 한 뼘 없으니 추수할 곡식도 없고 품삯으로 받은 것도 워낙 가난한 살림살이다보니 목숨잇기가 바쁘고 빌린 보리쌀을 갚을 도리가 있어야제. 그런데 그 부자영감이 은근히 그 새댁을 첩상이(첩실)로 마음을 두고 있었능기라."
엄니는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해 벼를 소 마구간 밑에 구덩이를 파서 넣어두었는데, 흉악한 일본놈은 창으로 쑤셔서 찾아내고는 공출이란 이름을 붙여 앗아갔다"며 가볍게 몸서리를 치십니다.
"그해 겨울에 부자영감이 와서는 '한 칠(일주일) 후가 내 생일이니, 그날 오곡밥에 세 가지 쌈에 백가지 나물을 해주지 않으면 나한테 시집을 와야 한다'고 억지를 부린단 말이지.
시어른들은 '너는 애도 없고 하니 우리 생각하지 말고 팔자나 고쳐라'면서 눈물을 흘리는데, 새댁은 아무도 돌볼 이 없는 시어른들을 두고 차마 갈 수는 없능기라. 이레가 하루같이 지나고 드디어 생일이 되었는데, 새댁은 새벽에 오곡밥을 지어서는 함지박에 이고 부잣집에 가서는 상을 차렸능기라."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아내는 가볍게 추임새를 넣습니다.
"새댁은 먼저 부자 앞에 앉아서는 조건을 내걸었제. '만약 내가 어르신의 요구대로 해왔으면 시집 이야기는 물론이고 장기 쌀도 탕감해 주겠느냐'고 물으니 부자는 '오곡밥은 어떻게 짓는다 해도 한겨울에 그 살림살이에 어디서 세 가지 쌈과 백가지 나물을 할 수 있으랴' 생각하고 그러마 약속을 했제. 그런데 새댁이 내놓은 것은 오곡밥에 콩잎사귀 쌈에 가지나물이 전부였능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