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과 복지제도

[대전시민아카데미-대전충남오마이뉴스 기획칼럼]

등록 2006.09.22 12:36수정 2006.09.2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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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힘들어 질수록 부에 대한 갈망은 커진다. 재테크, 주식투자 등에 대한 책들이 서점가의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부자아빠가 되는 것이 곧 좋은 아빠로 인정받는 척도가 된다. 사회가 온통 돈벌기에 미쳐 돌아가는 듯하지만, 실은 돈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한곳에 몰린 돈이 또 돈을 낳으니 곧 부익부 빈익빈이다. 가난한 이들에게도 무대에 오를 기회가 주어질 것인가. 부자아빠가 되는 길은 진정 책 속에 있는가. 그러나 냉정한 경쟁사회에서 모두가 승리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평범한 이들은 스스로의 무능력에 낙심하고 자식들에게 나쁜 아빠가 되었음을 한탄하게 될 뿐이다.

75세의 워렌 버핏은 빌 게이츠에 이어 지구상에서 두 번째 부자로 평생 모은 재산이 42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가 전 재산의 85%를 게이츠재단을 비롯한 5개 자선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게이츠 재단에 약 30조원, 2년 전 사별한 아내를 기리기 위해 세운 자선재단에 약 3조원, 그리고 자신의 세 자녀가 운영하는 자선재단에 각각 1조원씩이다. 돈의 단위가 ‘억’도 아니고 ‘조’단위로 넘어가니 도저히 개념이 잡히질 않는다. 참고로 4800만 명이 사는 대한민국의 1년 총예산이 100조원 남짓이라고 한다.

워렌 버핏은 투자전문가이다. ‘가치투자’로 대표되는 그의 투자기법에 관한 책들은 펀드 매니저 뿐만 아니라 주식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에게도 필독서로 꼽힌다. 버핏이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이유는 그가 부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평소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주식투자를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가 아닌 건전한(?) 투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현인’으로도 칭송받는다. 게다가 말년에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다른 부자들에게 모범이 되었으니 진정 거인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감탄만 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음도 사실이다. 버핏이 이룩한 부가 그의 노동의 정당한 대가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능력의 차이는 있겠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그러나 사회의 잉여가치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전유됨이 현실이다. 대다수 평범한 이들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는 사실은, 바로 이러한 불평등이 합법적인 시장경제제도의 결과라는 점이다.

미국사회에서 자선과 기부는 문화적 코드이자 선의 상징이다. 화려한 자선파티에서 하루 저녁에 수십만 달러의 기부금이 걷히기도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들도 일상적으로 자선과 기부를 베푼다. 반면 미국인들은 세금을 올려 사회복지를 확대하는 것에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고 한다.

이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사회복지를 정책적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는 것과는 크게 비교된다. 아마도 유럽과 미국의 역사적 차별성에서 비롯되었을 이러한 차이는 결과적으로 복지제도의 커다란 차이를 가져왔다. 명실상부 세계 제일의 부자나라인 미국은 OECD 국가들 중 유일하게 공적의료보험이 없는 나라다. 국민 총 의료비지출이 세계 1위이면서도 의료보험이 없어 의료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15%인 4500만 명에 달한다.

건강은 인간의 삶을 유지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따라서 의료는 의식주와 함께 사회복지의 근간이 되며, 의료제도는 한 사회의 복지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의료의 공공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의학이야말로 수많은 시행착오와 환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형성된 공공자산이며, 의료란 모든 이들에게 차별 없이 제공되어야 하는 필수재이기 때문이다.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회적 부는 효용성을 잃는다. 미국은 최소한 사회복지의 영역에서 만큼은 가장 비효율적인 나라 중 하나다. 2005년 8월 태풍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를 휩쓸었을 당시 루이지니아 주정부의 국제적 지원 호소에 대해 쿠바는 의료진과 장비, 의약품을 지원할 의사를 밝힌다.

실제로 쿠바는 비록 가난한 나라이지만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로 다수의 훈련된 의료진을 구축하고 있으며, 제 3세계 국가들에 많은 의료지원을 펼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쿠바를 적성국가로 규정하고 경제제제를 가하고 있던 부시행정부는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결국 주로 빈민층에 속하던 18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지원과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죽어갔다.

성장론자들은 윗논에 물이 차면 아랫논에도 물이 흐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찍이 화폐의 발명은 부자들의 욕망의 한계를 그들의 위장의 크기로부터 해방시켰으며, 결국 댐은 점점 높아져가고 분배의 수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빛과 어둠, 부와 가난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사회.

그곳에서 부자들은 자선과 기부를 통해 명예를 쌓고, 가난한 이들은 베풀음을 기다리는 영원한 패자가 된다. 최소한의 사회적 복지도 실현되지 않은 사회에서 어떻게 기회의 균등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출발점이 다르고 승패가 미리 정해진 경기는 공정하지 않다. 부자와 빈자가 사회적 산물이라면, 그에 대한 조정과 균형유지도 사회적 책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2007년도 대학입시부터 국내 대다수 의과대학이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소위 미국식 4+4 제도이다. 현재도 의과대학의 연간 학비는 천만 원을 상회하는데, 전문대학원으로 전환되면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이제는 자식이 의대에 진학하면 학비를 대기위해 소가 아니라 집을 팔아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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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라는 직종에 경제력이라는 또 하나의 진입장벽이 생겨난 것이다. 어느 직종이나 전문인을 육성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의료의 공공성을 생각할 때 그러한 비용을 국가가 아닌 개인에게만 전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월드컵에서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의 선전을 기대한다면 유소년축구부터 관심을 가져야 하듯이, 공공의료 시스템 속에서 의사들의 공적 역할을 기대한다면 그 육성과정에서부터 사회적 관심이 모아져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선과 기부는 선행이다. 많은 이들이 선한 행동을 할 때 그 사회는 아름다워 질 것이다. 한편 복지제도는 사회 구성원들의 권리이다. 많은 이들이 정당한 권리를 되찾을 때 그 사회는 건강해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송관욱 기자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전충남지회 회원입니다.

이 칼럼은 대전시민과 전문가,지역활동가들간의 의사소통과 시민 공론의 장을 위해 <대전시민아카데미>와 <대전충남오마이뉴스>가 마련한 참여공간입니다. 

*대전시민아카데미(http://www.tjcivilacademy.or)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송관욱 기자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전충남지회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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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속의 외딴 섬인 보건의료의 공공성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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