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 완결을 통해 본 일본 만화 이야기

등록 2006.09.25 11:33수정 2006.09.25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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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익준

신분을 뛰어 넘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엠마>는 주인공들이 서로 사랑하는 감정을 확인하는 데만 여섯 권을 잡아먹는다. 그래서 주변의 반대나 이런저런 역경들을 헤쳐 나가자면 수십 권은 필요하겠다 걱정을 했는데 이번에 7권으로 완결되었다. <엠마> 완결의 기쁨을 서점에서 <엠마>를 찾을 때마다 '본인이 보는 거냐?'고 매번 물어보던 직원분과 '어른이 지하철에서 만화나 본다'고 시원하게 꾸짖어 주신 어느 어르신과 나누고(?) 싶다.

<엠마>는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유럽 문화를 동경하는 일본 사람들의 경향은 만화에도 고스란히 배어 나온다. 낭만과 환상을 다루는 여성만화는 흔히 유럽을 배경으로 삼기 마련이고, <마스터 키튼>같은 만화조차 영국계 혼혈이라는 설정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엠마>는 그저 유럽풍으로 그려지던 기존 만화들에 비해 빅토리아 시대 생활 풍습마저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a 한 달음에 달려와 마음을 확인하는, <엠마>의 이구동성 명장면.

한 달음에 달려와 마음을 확인하는, <엠마>의 이구동성 명장면. ⓒ 북박스

<엠마>는 '메이드'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일본에서 '메이드물'이라면 성인용 게임부터 하녀 복장으로 손님을 맞는 '메이드 카페'처럼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엠마>의 작가는 스스로가 밝히듯 '메이드 오타쿠'다. 어쩌면 주인공들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메이드 자체를 세세하게 그리고 싶어 이 만화를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 어떤 분야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것 자체가 창작의 바탕이 될 수 있는 것이 일본 만화의 특징이랄까 경향이다.

<엠마>는 혼자 그린 것이 아니다. 만화 작가 자신은 공장보다는 개인 작업을 하는 스타일이지만 메이드 오타쿠를 어엿한 주류 작가로 만드는 것은 시스템의 힘이다. 일본 만화 작가들의 후기를 보면 '편집부에서 이런 제의를 해 왔다'거나 '편집부 소개로 팀을 짰다'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모든 걸 다 잘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가능성이 보일 때 그걸 발굴하고 키워내는 시스템이야말로 일본 만화의 역량일 것이다.

a 메이드 옷 입는 장면을 그리며 짜릿하다는 작가 모리 카오루는 뜻밖에도 여자다.

메이드 옷 입는 장면을 그리며 짜릿하다는 작가 모리 카오루는 뜻밖에도 여자다. ⓒ 북박스

<엠마>는 급하게 완결되었다. 메이드 오타쿠로 기존 만화들이 다루지 못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삶을 자세하게 다룰 수 있었지만 설정이나 배경 지식만으로는 이야기를 끌고 나가지 못한다. 흔히 일본 만화를 '매뉴얼 만화'라고도 부르면서 어떤 분야를 소개하는 기능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결국 사랑 받고 살아남는 것은 캐릭터와 이야기가 힘있는 만화들이다. 소재로 승부 하는 것처럼 보이는 <맛의 달인>이나 <아빠는 요리사>같은 장기 연재물들도 사실은 캐릭터와 이야기가 받쳐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엠마>는 완결되었지만 끝나지 않았다. 이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개념이 된 외전에 들어갔다. 작가의 장점이자 밑천이라 할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담은 <엠마-빅토리안 가이드 북>도 이미 일본 서점에 풀려 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방송도 타고 DVD도 나왔고 다시 애니메이션에 대한 가이드북도 나왔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부쳐 만화 자체는 멈추더라도 '멀티유스'는 계속되는 곳이 바로 일본이다.

a 애니메이션 <영국 사랑이야기 엠마>에선 한국계 양방언 씨가 음악을 맡았다.

애니메이션 <영국 사랑이야기 엠마>에선 한국계 양방언 씨가 음악을 맡았다. ⓒ TBS

한편, <엠마>를 우리나라에서 펴낸 곳은 '북박스'다. '북박스'가 어딘가 하면 '랜덤하우스 중앙'에 속해있다. 지금까지 만화를 펴내는 곳은 서울문화사 같은 전통적인 강자를 제외한다면 작은 출판사들이 많았지만 '시공사'가 만화에 손을 댄 이후로 큰 출판사들도 성큼성큼 들어오고 있다. 요즘 출판계에서 대형화와 계열화가 화제인데 큰 출판사에서 만화를 펴낸다는 것은 좋은 작품을 만날 기회가 늘어난다는 점과 중소 출판사들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면을 함께 갖고 있다.

엠마 1

모리 카오루 지음,
대원씨아이(만화),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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