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나의 집이 있었네

꾸벅새가 선물한 인도여행13

등록 2006.09.26 12:05수정 2006.09.26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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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소희
나는 인도에 집이 있다.

그 집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다. 그 진흙 집은 원래 순리 바이삽(brother)네 창고였다. 처음 그 집의 양철 문을 열었을 때 난 늘 꿈꾸던 곳을 보았다. 잘 마른 짚단이 천장까지 쌓여 있고 진흙 벽 사이로 햇볕이 새어 들어왔다. 바닥엔 소똥이 얌전히 발라져 있었다.


마구간으로 사용했던 한 구석엔 작은 담이 쳐져 있었다. 계란판과 낡은 자전거는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지붕은 나뭇가지들로 얼기설기 엮고 기와를 얹은 것이었다. 좁은 틈으로 하늘이 보였다. 이제 머리만 땋으면 빨간 머리 앤이 될 것 같았다.

그 집은 오르차에서 1km 떨어진 '골랄끼또리아'라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있었다. 오르차로 다시 돌아갔을 때 난 한 달 계약을 하고 호텔에 머물려고 했었다. 그런데 다음날 나는 시골 마을에 전셋집을 얻게 됐다.

"내 집을 빌려 쓰도록 해. 마을 일을 돕기 위해 왔으니 당연하지."

수상한 음악 쇼의 연주자인 순리 바이삽(brother)은 나를 배려해주었다. 전셋값은 한달에 1500루피(한화 약 45000원). 하루 두 끼 밥을 주고 물을 쓰기로 했다.

왕소희
집안엔 인도식 그물 침대와 손님들을 위해 바닥에 까는 담요, 화덕, 물 항아리가 있었다. 밤에는 노란 전구 불을 켜거나 대부분 촛불을 켰다. 원래는 창문이 없었는데 한 쪽 벽에 새로 창문을 냈다.


창 밖으로 들판이 펼쳐지고 멀리 람라자 템플이 솟아있었다. 아침이면 아침 햇살 속에 밤이면 밤하늘 아래 하얗게 빛나는 템플을 볼 수 있었다. 가끔은 힘든 일도 있었다. 그럴 땐 템플을 향한 그 창문에 이마를 대고 모든 것 안에 있는 신을 생각했다. 그러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공작꼬리, 작은 돌, 진흙 그림으로 집 안을 꾸몄다. 집에 자주 놀러오는 동네 아이들과 어린 선생님들이 가져온 선물이었다. '도대체 저 공작꼬리를 어디서 뽑아 왔을까?', '이 돌은 또 무슨 뜻일까?' 아이들이 가져다 놓은 선물을 보면 웃음이 났다.


화장실에서 느끼는 감정의 변화

왕소희
화장실은 집 뒤쪽에 광활하게 펼쳐진 들판을 써야했다. 남녀 구역이 따로 있어서 서로 만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침마다 물 깡통을 든 여자들과 인사를 나눠야했다. 인도인들은 휴지를 잘 쓰지 않기 때문에 손 비데용으로 깡통에 물을 담아왔다.

"람람(안녕)."
일을 보면서도 여자들은 눈을 마주치며 친절히 인사를 건넸다.

'그런 인사는 하지 않아도 돼.'

나는 민망함에 그녀들을 그대로 주저앉히고 싶을 때도 있었다. 처음엔 이 화장실이 불편했지만 점점 너무 편하게 느껴졌다. 공기도 좋고 깨끗하고 구경할 것도 많았다. 특히 아침마다 하늘을 뒤덮으며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붉은 해는 아주 멋졌다.

나는 그 집에서의 첫날밤을 잊을 수 없다.

"이건 너를 위한 음악 쇼야!"

언덕 위에서 보았던 수상한 음악 쇼가 작은 내 집 안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댄서, 연주자, 가수 들이었다. 하모니엄(건반악기)을 연주하며 올드 무비에 나오는 애절한 사랑 노래를 불러주었다. 크리슈나와 라다 역을 맡고 있는 댄서들이 나와 손가락 모양이 예쁜 춤도 추었다. 모두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웃었다. 밖에는 신발이 한 가득이었다.

인도의 11월. 인도라지만 밤엔 추운 겨울이었다. 사람들은 끝없이 화로에 불을 지폈다.

"한국 노래를 들려줘."

모두들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노래와 춤이 종교이자 생활인 이들은 정말로 이국의 노래를 궁금해 했다. 나는 묘한 데가 있는 '뱃노래'를 불렀다.

"부딪히는 파도소리 단잠을 깨우고 들려오는 노 소리 처량도 하구나. 어기야 디어차 어야데야 어기여차. 뱃놀이 가잔다."

사람들은 정말로 뱃노래를 좋아했다. 노래를 부른 나도 놀랐다. 뱃노래는 정말로 멋진 노래였다. 음악 쇼의 가수인 람모르띠는 이 노래에 반했다. 그래서 매일 밤 화덕 앞에 앉아 나에게 이 노래를 배우기도 했다.

밤이 깊어지고 화롯불도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밤이 늦도록 내 집에 앉아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집주인인 나는 구석의 인도식 그물 침대에 누워 잠이 들어 버렸다. 노랫소리가 가물가물 해지고서야 아이들은 담요 위에 누워 잠이 들고 어른들은 불을 끄고 집으로 돌아갔다.

"짜이 삐요! 짜이 삐요!(밀크 티 마셔)"

아침마다 주인 집 딸 마야는 양철 문을 쿵쿵 두드렸다. 나는 가물가물한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그리고 깨진 머드카(진흙 항아리)에 담아둔 물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집 앞의 조그만 사원으로 갔다. 그곳에 앉아 짜이를 마시며 집을 바라봤다.

지나가던 소가 태연하게 집 안으로 들어와 우물우물 풀을 씹는 나의 집. 매달 마른 소똥을 개어 깨끗하게 단장하는 나의 집. 그물 침대에 누워 언덕너머로 해지는 모습을 내내 볼 수 있는 나의 집. 언제까지나 하얀 빨래를 휘날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나의 집. 나는 오랫동안 그 마을을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집을 무척 사랑하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미디어다음, 행복닷컴에 함께 연재중입니다.

덧붙이는 글 미디어다음, 행복닷컴에 함께 연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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