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81회

그 곳

등록 2006.09.26 16:45수정 2006.09.2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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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

“모두 끝난 겁니까?”


남현수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방금 전까지 생생하게 겪은 일을 곰씹어보았다. 7만 년 전 남현수는 솟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기도 했고 외계인에게 처참하게 공격을 당해본 오시도 되어 보았다. 때로는 키의 마음이 되어 원시인류를 돌보기도 했고 외계인 아누와 짐리림이 되어 마치 모든 것이 처음인양 경이로운 지구의 풍경을 바라보며 낯선 중력을 버거워하며 걸어 다니기도 했다. 남현수는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땀이 식어가면서 차츰 자신이 겪은 일이 반드시 7만 년 전에 일어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르둑씨?”

남현수의 말에 마르둑은 일어나서 남현수의 몸에 거치된 장비를 조심스럽게 걷어내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남현수가 시계를 보니 호텔에 온지 세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마르둑씨, 대체 제게 무슨 얘기를 해 주고 싶었던 겁니까? 전 그 사이코메트리 증폭기가 보여준 일들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기계가 보여준 일이 아닙니다. 잊었던 기억을 되살려 준 것이지요.”


“하지만 하나의 관점에서 보여 지는 상황도 아니었고 불을 사용하거나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도무지 7만 년 전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이 기계로 제 판단을 흐리게 하기 위해 조작을 하고서는 이미 입력된 영상을 보여 주었다고 해도 제가 알 길이 어디 있습니까?”

마르둑은 번역기를 조심스럽게 만진 후 남현수의 불만에 가득 찬 질문에 대답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게다가 기억은 아직 다 되살리지도 못했습니다. 무엇인가가 나머지 기억을 되살리는 것을 강하게 막고 있습니다. 그것을 본 후에야 제가 모든 것에 대해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약속된 세 시간이 흐르자 김건욱이 남현수를 데려가기 위해 돌아온 것이었다. 마르둑의 빡빡한 일정에서 허용된 시간을 넘기는 것은 많은 이들을 당황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마르둑의 일정은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남현수는 이 참에 잘됐다는 심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전 이제 마르둑씨를 뵐 일이 없을 것 같군요. 마지막 기억은 서로 볼 틈이 없을 것 같습니다.”

마르둑은 기기를 든 채 무엇인가 생각에 잠겨 있었지만 남현수는 이를 상관하지 않았다.

“어쨌든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럼 이만.”
“잠깐만요 남박사님.”

“?”
“남박사님은 이걸 알아야 합니다.”

두서없는 말에 남현수는 조금 당황했지만 외계인의 번역기가 오류를 일으킨 탓이라고 여기며 마르둑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제가 지구에 온 이유는 이 이야기의 끝을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우리 하쉬행성인들에게 있어 매우 소중한 것이기도 하고 남박사, 아니 지구의 생명들에게도 소중한 것이 될 것입니다.”

남현수는 어이가 없었다.

‘만약 이런 환상 따위를 제대로 된 학술적 증거도 없이 7만 년 전의 역사라고 공표한다면 누가 믿어줄 것인가? 이 외계인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어쩌면 외계인의 말이라면 무조건 신봉하는 대중들은 이를 믿거나 흥미로워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 따름이었다.

“제가 지구에 온지 1년이 넘었을 때 케냐로 오십시오. 아니, 제가 그때 연락을 드리지요. 그곳에서 이 기억의 끝을 볼 수가 있습니다. 꼭 와주십시오 남박사님. 꼭 오셔야 합니다.”

마르둑은 인간들처럼 간절한 눈초리를 보내며 남현수에게 거듭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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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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