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바다에 가을빛 물들다

상해봉, 기상관측소 그리고 광덕산

등록 2006.09.27 16:14수정 2006.09.2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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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천고마비의 계절엔 강아지들도 토실토실 살찐다.광덕산 들머리에서 만난 강아지 가족.

천고마비의 계절엔 강아지들도 토실토실 살찐다.광덕산 들머리에서 만난 강아지 가족. ⓒ 김선호

경기도 포천에서 강원도 화천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광덕고개'가 있습니다. 고갯마루에 가슴에 반달이 선명하게 새겨진 곰 한 마리가 포효하듯 서 있습니다. 그곳부터 강원도입니다.

고갯마루에서 제법 흥청대는 장날 풍경이 펼쳐집니다. 상인들과 광덕고개에서 등산로가 시작되는 백운산에 오르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풍경이 이채롭습니다. 고개 하나 차이로 백운산과 광덕산도 경기도와 강원도로 갈라집니다.

광덕고개를 넘어 광덕산 입구에 도착합니다. 등산객 행렬이 줄을 잇는 백운산에 비하면 한가롭기 그지없는 광덕산 들머리입니다.


a 기상관측소가 있는 광덕산에선 임도가 등산로를 대신한다.

기상관측소가 있는 광덕산에선 임도가 등산로를 대신한다. ⓒ 김선호

상가 뒤쪽으로 난 등산로 입구에 들어섰습니다. 인기척에 강아지 네 마리가 출동했습니다. 태어난 지 한 달이나 되었을까 싶은 작은 강아지들입니다. 두 마리는 갈색, 두 마리는 흰색 강아지입니다. 강아지가 나타나자 아이들이 좋아 어쩔 줄 모릅니다.

a 쑥부쟁이, 구절초, 망초. 화사한 가을 들꽃 덕분에 산행이 즐겁다.

쑥부쟁이, 구절초, 망초. 화사한 가을 들꽃 덕분에 산행이 즐겁다. ⓒ 김선호

외부를 경계하는 기색이 전혀 없는 이 강아지들은 외지인에게 안겨들며 애교를 부립니다. 그런 새끼들이 불안했을까요. 어미가 어기적거리며 다가옵니다. 어미의 어기적거리는 걸음은 새끼들에게 먹일 젖이 불었기 때문이란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아이들과 한창 재롱을 떨던 강아지들이 어미개가 나타나자 어미에게 달려들어 젖을 빠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젖을 먹이는 어미개를 보면서, 들에 곡식이 익어가고 산에 단풍이 들며 열매가 익어 가는 것만 가을의 풍요를 알리는 징후를 알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 키우는 어미개에게서 풍요로운 가을의 모습을 보게 되는 계절입니다.

광덕산은 해발 1040m의 비교적 높은 산입니다. 그렇지만 등산로는 해발 620m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실상 등산로가 상대적으로 짧은 산입니다. 등산로가 시작되는 광덕리에서 회목현을 거쳐 상해봉을 지나 광덕산 정상까지 가도 기껏해야 서너 시간 소요될 뿐이지요.

더구나 상해봉과 광덕산 정상 사이에 기상관측소가 있습니다. 그 때문에 임도가 뚫려 있어 광덕산에 오르는 동안 뒷산을 산책하는 기분이 듭니다.


a 산모퉁이를 돌면 연보랏빛, 황금빛의 들국화가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산모퉁이를 돌면 연보랏빛, 황금빛의 들국화가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 김선호

임도를 따라 산으로 들어가는 길 양옆엔 온갖 가을꽃들이 지천입니다. 가을에 피는 모든 들국화가 이곳에서 다 피어난 것 같습니다. 그것도 뭉텅뭉텅 피어나 꽃밭을 이뤄 눈이 다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꽃잎마다 비친 가을빛은 맑고 투명합니다. 봄과 여름을 거쳐 많은 꽃들이 피고 졌습니다. 그 사이에 피고 지지 못한 것들이 가을볕 아래 화사하게 피어나 산길을 이리도 풍성하게 수놓습니다.


넓게 뚫린 임도가 구불구불 이어지면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풍경이 드러납니다. 임도를 만들면서 심하게 산을 깎은 구간엔 볼썽사납게 나무뿌리가 그대로 드러난 곳도 있고, 토사 방지를 위해 심어둔 싸리나무가 잘 자라 노랗게 단풍이 든 곳도 있습니다.

a 가을빛에 물든 상해봉 정상.

가을빛에 물든 상해봉 정상. ⓒ 김선호

어쩌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등산객들을 만납니다. 손엔 다들 묵직한 보자기를 들고 있습니다. 도토리입니다. 결실의 계절을 맞아 참나무도 여름 내내 익힌 도토리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들국화에 눈길을 주고 노랗게 물든 싸리나무나 일찍 단풍이 든 붉나무를 쳐다보느라 몰랐는데, 산길에 도토리가 심심찮게 보입니다.

도토리를 주워봅니다. 주워도 또 눈에 띄는 도토리를 산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향해 던집니다. 도토리는 산에 사는 동물들의 좋은 먹이가 될 것이고 내년에 새싹을 틔우는 소중한 나무 한 그루도 될 것입니다. 도토리묵이 먹고 싶으면 가끔 사먹으면 되겠지요.

a 완만한 능선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상해봉은 어디서도 눈에 띈다.

완만한 능선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상해봉은 어디서도 눈에 띈다. ⓒ 김선호

굽이굽이 산모퉁이를 몇 개나 돌았을까요. 상해봉이 보입니다. '구름바다에 뜬 봉우리'라는 뜻의 상해봉은 광덕산 산행 구간 중 가장 인상적인 곳입니다. 둥그스름한 듯 무난하게 둘러선 능선 가운데에, 우뚝 떡시루를 엎어놓은 듯 커다란 바위가 떡하니 올라앉은 상해봉은 어디서든 눈에 띕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아찔한 높이가 장난이 아니네요. 밧줄을 타고 가면서도 천길 아래 벼랑에 떨어질 것 같아 오금이 저리고 떨리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습니다. 청명한 가을날, 상해봉은 '구름바다에 뜬 봉우리'가 아니라 시야를 한껏 넓혀주는 봉우리였습니다.

상해봉 주변엔 벌써 노랗고 붉은 단풍이 들었습니다. 바위틈에서 위태롭게 자란 나무들이 빚어내는 단풍이 유난히 곱습니다. 상해봉이 '붉은 구름바다'로 변신하는 때입니다.

a 여름의 흔적을 지우는 가을볕이 광덕산 임도에 쏟아져 내린다.

여름의 흔적을 지우는 가을볕이 광덕산 임도에 쏟아져 내린다. ⓒ 김선호

내려갈 땐, 조금 돌아가더라도 반대쪽을 택합니다. 바위를 타고 올랐던 길이 너무 위험한 까닭입니다. 상해봉에서 다시 임도로 내려서 광덕산 정상으로 향합니다.

반듯하게 이어진 임도를 따라 가다 지붕이 커다란 배구공 모양인 '광덕산 기상 레이더 관측소'를 만났습니다. 일요일이라 쉬는 건지 출입구가 닫혀 있습니다. 산 정상에 있는 기상관측소가 궁금한 아이들이 자꾸만 안을 기웃거립니다.

a 참나무숲을 지나다 보니 산길에 도토리가 지천입니다.

참나무숲을 지나다 보니 산길에 도토리가 지천입니다. ⓒ 김선호

기상관측소를 지나면 비로소 호젓한 산길입니다. 줄곧 임도를 따라가다 산길로 들어서니 비로소 산행하는 기분이 듭니다. 바짓가랑이를 스치고 지나는 풀잎들의 감촉도 새롭고 숲이 품어내는 향기도 진하게 느껴집니다. 기상관측소에서 광덕산 정상은 매우 가깝습니다. 시야를 가리지 않아야 하고 높은 데 있어야 하기 때문에 관측소가 정상에서 가까운 모양입니다.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은 거의 미끄럼틀입니다. 비탈진 길이 미끄럽기 그지없습니다. 가을을 재촉하는 마른 바람이 불어와 촉촉하고 싱그러웠던 여름 숲의 흔적을 하나둘 지우고 있습니다. 광덕산의 가을이 깊어갑니다.

a 광덕산 정상 능선에 있는 기상관측소.

광덕산 정상 능선에 있는 기상관측소. ⓒ 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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