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어릴 적 마당에는 어머님이 가꾸시는 화단이 있었다. 화단에는 철따라 깨꽃, 채송화, 봉숭화, 백일홍, 다알리아, 백합이 자기만의 색을 가지고 피어났다. 꽃들이 피어나면 어디에 이런 고운 색깔을 간직하고 있다 내어놓은 것일까, 저 땅 속에 이렇게도 고운 물감이 들어 있는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화단 한 켠에는 수세미가 자리를 잡고 나무를 부여잡고 올라가 노란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수세미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잘 익은 수세미를 물에 담가 잘 썩힌 후에 씨를 빼내고 방망이로 두드리면 섬유질만 남았고, 그것이 설겆이를 할 때 사용하는 수세미가 되었다.
요즘 사용하는 수세미가 귀할 때에는 볏짚을 수세미로 사용하기도 했으니, 수세미야말로 제대로 된 수세미였던 셈이다. 사용하다 보면 닳아 없어지고,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때가 되면 또 다른 수세미를 물에 불려서 방망이로 두드려 새 수세미를 만들었다. 그렇게 다음해 가을 수세미가 익을 때까지 천연 수세미는 요긴하게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