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귀국 보따리'엔 뭐가 들었을까

다음날 1일 귀국... '위기 극복'과 '세 단결' 사이서 고민하는 듯

등록 2006.09.29 10:48수정 2006.09.2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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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5.31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오마이뉴스 이종호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오는 1일 독일에서 귀국한다. 5·31 지방선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두 달여만의 일이다.

관심은 그의 귀국 일성에 있다. 정 전 의장은 인천공항에 도착해 기자간담회를 갖는다. '귀국 메시지'에 대해 그의 측근은 "민주개혁세력의 위기와 단결을 호소하는 등의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동영 전 의장은 당초 유럽에서 동선을 확장해 미국에서 좀 더 체류하는 방안을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접었다. 체류 연장과 조기 귀국 사이에는 한 가지 고민이 존재한다. 어떤 콘텐츠로 재기할 것인가.

그는 결국 정치권 밖에 좀더 머물면서 '재활 프로그램'을 위해 시간을 버는 쪽보다 휙휙 돌아가는 국내 정치의 흐름에서 소외되지 않는 쪽을 택했다. '방어'를 위한 선택인 셈이다.

그의 이같은 처지는 귀국에 앞서 의원들과 지인들에게 보낸 2천여 통의 친필 엽서에 뭍어난다. "세상이 어지러워도 길은 항상 있다고 믿는다"며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세력 규합의 의미도 깔려 있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당 안팎 경쟁자들은 자신의 상품을 하나씩 내놓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상황. 김근태 의장은 '뉴딜'을 통해 "추가성장을 통한 분배 재원 확보"라는 메시지를 줄기차게 던지고 있고,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는 강도 높은 '100일 민생투어'로 이미지 전환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경쟁은 가시화되고 있다. 정동영 전 의장은 '김근태·손학규'와 함께 '이명박·박근혜·고건' 선두권과 격차 큰 중위권을 형성해 왔지만 그 중에서 선두는 유지했다. 하지만 그가 없는 사이, 김근태 의장에게 몇 차례 추월당하기도 하고, 손 전 지사는 5%대 벽을 두드리며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변별성 없는 수치지만 문제는 '흐름'이다.

'방어형' 귀국


28일 열린우리당 초선의원들의 탈계파 모임인 '처음처럼' 토론 모습.
28일 열린우리당 초선의원들의 탈계파 모임인 '처음처럼' 토론 모습.오마이뉴스 이종호

28일 열린우리당 초선의원들의 탈계파 모임인 '처음처럼' 토론장. '2007년 대선지형과 세력연대'라는 주제로 발제를 맡은 민병두 의원은 "정동영 전 의장은 귀국 이후 '통일국가론'에 관한 담론 정치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 전 의장이 '통일' 독일을 귀향지로 선택한 것 그리고 체류 중에도 통일 정책 담당자들과 학자들과 만나 의견을 교환하고, 차기 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작센 주의 밀 브라이트 총리를 만나 21세기 새로운 리더십을 논했다는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당초 정 전 의장 측에선 하바머스, 기든스 등 유럽의 석학들과 만남을 성사시켜 '정동영의 대화록'을 완성한다는 기획을 구상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의 통일, 경제, 복지 분야의 학자, 전문가들을 접촉한 결과물은 어떤 형태로든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관심은 일단, 그가 어떤 국가론을 내놓을지 보다 '담론 정치'를 펼 것이라는 데 있다. "범여권 통합론에는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내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의 강조만 있지, 미래 청사진이 없다"는 한 시사평론가의 지적을 감안한다면, 정 전 의장의 '담론 정치' 구상은 일단 평가할 만하다.

진보 진영의 학자들도 같은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날 '처음처럼' 토론회에 참석한 학자들은 여당 내 일고 있는 정계개편론에 대해 "정략적 발상"이라며 "정책의 실패"와 "담론의 위기"가 원인이라는 인식을 보였다. 그 빈자리를 박정희 시대의 개발성장론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

열린우리당 창업자의 선택은

정동영 전 의장은 이날 '처음처럼' 토론회에 축하메시지를 보내 "지금 우리당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며 '두 갈래 길'을 설파했다.

그는 "하나는 우리당이 직면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남아 마침내 승리하는 길"이라며 "창당 초심을 잃지 않고 각자가 정치적 기득권과 이해관계를 떠나서 단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우리가 흘린 피와 땀을 무위로 돌리고 포말처럼 사라져가는 길"이라며 "당의 장래를 비관하고 우리의 노선과 역향을 우리 스스로 불신한다면 우리당의 내일은 숱하게 명멸해간 여느 정당과 다름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방점을 찍은 곳은 전자. "우리당이 지켜온 가치는 영원할 것"이라고 '창당초심'을 강조했다. 천·신·정의 일원으로 열린우리당 창당의 산파역을 했던 그로서는 당을 깨고 민주당, 고건 전 총리를 망라한 통합신당론에 쉽게 동승할 수 없는 처지다.

그가 제시할 담론이 당을 깨는 명분으로 작용할지, 열린우리당 중심론의 동력으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정동영의 담론 정치'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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