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웰빙식단 한 번 보실래요?

씀바귀, 고추장과 된장으로 이뤄진 우리집 식탁

등록 2006.10.07 15:43수정 2007.06.15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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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씀바귀-된장을 찍어 쌈으로 먹으면 입맛이 돈다.

씀바귀-된장을 찍어 쌈으로 먹으면 입맛이 돈다. ⓒ 김민수

어린 시절 명절이면 그동안 먹지 못했던 음식을 탐하다가 배탈이 나곤 해서 본전도 찾지 못하기도 했다. 요즘이야 명절에 음식을 과하게 먹고 탈이 나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만큼 풍족해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올해 추석 우리 집 음식은 아주 간단했다. 송편 약간, 북한산 황태구이, 각종 묵나물, 새로 담근 김치와 과일 몇 가지가 전부였다. 그래도 다른 날보다 많이 먹게 되니 속이 편안하지는 않다.

추석 다음 날, 그동안 짐을 싸놓아 서재구실을 못하던 옥탑방을 치웠다. 열심히 방을 치우다 옥상에 올라가니 어머님이 씀바귀를 한 바구니 캐서 다듬으신다. 나는 나대로 일을 하는데 어머니이 한 말씀하신다.

"정 없는 놈, 지 좋아해서 하는데 어디서 해 왔냐고 한 마디도 읍냐?"
"옥상 텃밭에 많던 거네요. 나도 하루 이틀 사이 뜯어 먹으려고 했는데 잘 됐네요."

a 달랑무와 배추김치-직접 심고 가꾼 것으로 만든 것이다.

달랑무와 배추김치-직접 심고 가꾼 것으로 만든 것이다. ⓒ 김민수

점심, 찬밥 덥힌 것과 방금 옥상에서 뜯어온 씀바귀, 며칠 전 담근 고추장, 된장 등이 놓여있는데 가만히 보니 초식동물들의 식단같다. 내가 좋아하는 식단이다. 그러나 우리 귀여운 강아지들(아이들)은 영 맘에 들지 않는 표정이다.

큰 딸이 씀바귀쌈이 맛나보였는지 "아빠, 나도 하나 싸줘"한다. 얼씨구나 커다랗게 싸주니 입에 들어간 것 어쩌랴. 인상을 쓰면서 다 먹고는 한 마디 한다.


"우와, 쓰다 써. 이게 뭐가 맛있다고 그래?"
"임마야, 쓴 게 몸에 좋은 거야. 그리고 입맛도 돋궈주고 얼마나 좋은데. 고진감래, 자꾸만 먹으면 단 맛이 난다. 더 먹을래?"
"아유, 난 달랑무랑 먹을래."

a 고추-생긴것처럼 맵지는 않다.

고추-생긴것처럼 맵지는 않다. ⓒ 김민수

상을 둘러보니 북한산 황태 말고는 전부 채소종류다. 차리다 보니 이런 식단이 되었지만 우리 집의 식탁은 자주 이런 모습이다. 아이들에게 미안할 때도 있지만 검소한 식탁을 대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죄를 덜 짓는 것이기도 하니 차라리 조금 미안한 것도 필요하다 생각해 본다.


기름기가 없으니 설거지도 세제를 쓰지 않고 해도 된다. 물로만 하는 설거지는 아이들이 해도 된다. 점심을 먹고 아내의 감독 하에 아이들이 설거지를 하고, 큰 놈은 설거지통이 좁다며 음악을 선물하겠다고 피아노 곁에 앉는다.

작은 평화, 그리고 나의 작은 꿈이 이뤄진 순간이다. 어릴 적 어른이 되어 장가가면 딸은 피아노를 치고 나는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꿈이었다. 이미 그 꿈은 이뤄졌지만 아주 가끔씩 그런 시간을 가질 뿐이다.

a 깻잎저린 것-특별히 노란빛이 도는 깻잎으로 만든 것인데 더 맛나다.

깻잎저린 것-특별히 노란빛이 도는 깻잎으로 만든 것인데 더 맛나다. ⓒ 김민수

언젠가 상당히 무뚝뚝해진 나를 발견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삐딱하고, 불평불만이 많아졌다.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도 아닌데 부정적인 것들만 보고 말하는데 익숙해졌다. 생각만 그렇게 바뀐 것이 아니라 어느 사이 내 삶의 스타일도 그렇게 변했나보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표현하는데 인색한 나 자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머님이 씀바귀를 다듬으실 때 잠깐이라도 곁에 앉아 "와, 내가 좋아하는 것 하셨네요!" 한 마디라도 했으면 어머님이 더 좋아하셨을 것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점심, 씀바귀쌈을 맛나게 먹으면서 어머님의 서운함을 풀어드렸다. 아이들까지 좋아하한다고 하면서 한 쌈씩 싸서 먹으니 어머님께서 "저게 뿌리만 남겨두면 또 올라오거든"하신다. 떨어지지 않으니 맘껏 먹으라는 말씀이시다.

a 토란대와 우거지무침-토란대와 우거지 역시 직접 키워 거둔 것들이다.

토란대와 우거지무침-토란대와 우거지 역시 직접 키워 거둔 것들이다. ⓒ 김민수

참 많이 먹었다. 그러나 더부룩하지 않다. 아마도 기름진 것으로 포만감을 느낄 정도로 먹었다면 나른한 오후가 힘겹게 다가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웰빙식단과는 잘 어울리지는 않지만 피아노연주 소리에 취해 아내와 커피를 나눈다. 여느 식당에서 이렇게 맛난 식사를 하려면 상당히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 같다.

이제 휴일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시간, 아이들이 산행을 하자고 한다. 가까운 산에서 가을향취를 느끼고 돌아와야겠다.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분명히 어제보다는 몸이 가볍게 느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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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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