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생기면 무조건 책부터 사고 보자?

나의 무대책 책 구입 습관 때문에... 아내도 사고 쳤습니다

등록 2006.10.10 15:07수정 2006.10.1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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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는데, 요즘은 이런 말조차도 듣기 어렵다. 여러분은 한 달에 책 몇 권이나 읽으세요? 저는 요즘 통 책을 못 사고 있답니다.
예전에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는데, 요즘은 이런 말조차도 듣기 어렵다. 여러분은 한 달에 책 몇 권이나 읽으세요? 저는 요즘 통 책을 못 사고 있답니다.장희용
어느 날 책 10만원 어치를 사버렸다. 카드로 확 긁었다. 카드서 고지서가 날아온 날 아내한테 무지하게 욕먹었다. 무슨 책을 한꺼번에 10만원 어치나 사냐고. 그리고 책 산 지 얼마나 됐는데 또 샀냐고.


나는 아내의 구박에 맞서 당당히 말했다.

"산 책 다 읽었어. 그리고 책 사는 게 남는 거야. 먹을 거 사 먹어봐. 먹을 때만 좋지 소화되면 아무 것도 아니야."

사실 나의 대책이 없는 책 구입 습관은 아주 오래된 고질병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책을 좀 많이 읽는 편이었는데, 그때 제일 흥미롭거나 혹은 신선하게 읽는 책이 현 보건복지부 유시민 장관이 쓴 <거꾸로 읽는 세계사>다.

그때는 그냥, 뭐라고 할까 평소에 학교에서 배우던 가치관과는 조금 다르다는, 그래서 흥미롭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무튼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원 없이 책을 읽었다. 아르바이트해서 거의 다 책 사는 데 썼다.

음, 그때 책 한 다발 들고 서점을 나서면 왜 그리도 뿌듯하던지. 한두 권만 사면 왠지 책 산 것 같지도 않고 마음이 허전했다. 그 때부터 나의 이 무대책 책 구입 습관은 쭈욱 이어지고 있다.


책 읽는 습관은 어릴적 부터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부모님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도 많이 읽어주고, 거실에서 TV도 없애고, 서점이나 동네 도서관에도 많이 데려가고.
책 읽는 습관은 어릴적 부터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부모님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도 많이 읽어주고, 거실에서 TV도 없애고, 서점이나 동네 도서관에도 많이 데려가고.장희용
하지만 나의 이런 습관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술 먹는 데 쓰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그리고 책 읽어서 남 주나? 다 내 삶에 필요한 지식을 주는 건데. 그래서 돈 생기면 무조건 책부터 사고 보자는 이런 정신을 내 딸과 아들에게도 물려주고 싶다. 물론 한 권, 두 권 적게 사더라도 책을 귀히 여기는 마음도 심어주고.

독서의 계절 가을에 책을 한 권도 못 사다니. 왜?


어휴~ 근데 요즘은 책을 통 못 사고 있다. 매달 구독하는 '월간 말'지를 읽는 것이 전부다.

이유인 즉, 내가 몸이 불편해서 일을 줄이다 보니 벌이가 줄었다. 그러니 책을 살 돈이 없다. 아내는 예전처럼 한꺼번에 많이 사지 말고 두세 권씩이라도 사서 읽으라고 하지만 솔직히 벌이는 줄고, 씀씀이는 커지니 선뜻 예전의 용감무쌍한 정신이 생기질 않는다. 그래서 예전에 사 놨던 책들 중에 안 읽었거나 읽다 중간에 그만둔 책을 짬짬이 읽고 있다.

여기까지는 구구절절 인생이야기고, 정작 내가 책을 못 사는 가장 큰 이유는 아내가 저지른 일 때문이다.

바야흐로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오늘, '부르르르~' 책상 위에 올려놓은 전화기가 요란한 진동소리를 냈다. 아내가 보내 온 메시지다. '틱틱~' 메시지 확인을 위해 버튼을 조작하는 순간, 헉! 놀라 뒤로 자빠지는 줄 알았다.

"나 일냈어. 애들 책 샀는데, 그게 좀 비싸. 0이 6개야."

장희용
머리 나쁜 나는 얼른 손가락을 집었다. 다섯 손가락 접고도 다시 새끼손가락 하나를 펴야 했다. '이게 얼마냐? 제 정신이야 지금?' 으~ 속에서 열불이 났다. 10만원도 아니고, 내 한 달 월급과 맞먹는 거금을 한꺼번에 책 사는 데 쓰다니. 도대체 뭔 책을 산 거야!

막 아내한테 전화를 하려는 데 또 다시 '부르르르~' 열 받을 줄 알 것을 예상한 아내가 미리 선수를 친다.

"자기 철학이 '책을 많이 읽자!'잖아. 내 책 산 것도 아니고 애들 책 산 건데. 나도 고민 많이 했어. 한 권씩 사 주는 것도 좋지만 무슨 책이 좋은지 고르기도 힘들고, 또 일부러 책 사러 서점에 가는 것도 마음만큼 쉽지 않고. 그러다 보면 애들 책 사주는 거 소홀해지고. 며칠 동안 찾아왔는데 좋은 책들만 있는 것 같아. 대신 내가 아껴서 살림할게."

'책을 많이 읽자!' 어휴~ 내가 한 말이니 부정할 수도 없고. 그렇지, 책은 많이 읽어야지. 더구나 애들이 읽는다는데, 거기서 돈타령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 딴에는 아내 말에 일리도 있고. 사실 필요할 때마다 책 사준다고 하면서도 서점에 한 달에 한 번이나 갈까 했었으니까.

사서 버리는 것도 아니고, 기왕 산 거 어쩌랴 싶었다. 다 내 자식들한테 귀한 마음의 양식이 되는 것이니 아내 말대로 다른 씀씀이를 줄이고 애들 책 사주는 것이 나을 듯싶었다. 그래서 아내한테 이렇게 메시지 보냈다. 나도 한 수 더 보태서.

"자기가 안 사면 내가 사 주려고 했는데. 잘했어. 돈은 가치 있게 쓰면 그게 돈 잘 쓰는 거지 뭐. 그리고 다른 데 쓴 것도 아니고 책 산 건데 뭐. 책 사는 돈은 아까워해서는 안돼."

장희용
이번 달로 책 할부금 다 갚았다. 어휴~ 돈도 돈이지만, 그동안 애들 책 읽어주느라 무지하게 힘들었다. 아마 내가 태어나 지금까지 읽은 책보다 더 많은 책을 최근 1년 동안 읽은 느낌이다.

처음에는 돈 아까운 생각에 다 읽어야 된다는 일념으로 읽어주고, 다음에는 '책 많이 읽자'는 소신을 지키기 위해 읽어주고, 다음은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책을 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읽어줬다. 그 다음은 시도 때도 없이 책 읽어달라고 조르는 아이들 때문에 읽고 또 읽었다.

하도 수도 없이 읽어줬더니 나는 물론이요 애들도 책 줄거리 줄줄 왼다. 요즘은 똑같은 책에 똑같은 괴물 목소리, 할아버지 목소리, 귀여운 목소리로 수시로 바꿔가며 읽어주려니 솔직히 재미없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내가 일 한번 확 저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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