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에서 가을을 느껴 보세요~

동서들과 함께한 '가을여행'

등록 2006.10.11 21:41수정 2006.10.12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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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은 모란의 고장임에 틀림없다. 중심가를 돌다보면 모란화원, 모란빌라, 모란 아구찜, 모란다방 등 모란이 들어간 상가를 쉽게 볼 수 있다.

추석 전날 시댁이 있는 강진 읍내 집에서 음식 준비를 마치고, 우리 네 동서들은 강진을 두루 산책하다가 발길이 저절로 영랑생가로 가게 되었다. 따뜻한 봄날이라면 모란꽃을 기대했겠지만, 가을이라 별다른 기대 없이 갔다. 하지만 입구에 가을색이 드리워진 담장위로 높은 기상을 자랑하듯이 치솟은 은행나무엔 노오란 은행이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은 표정으로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네 동서들은 따스한 바위에 앉아 집안일이며 그 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가을날 오후 햇살을 즐겼다. 특히 둘째 형님 친정아버지께서 위독하셔서 병원에 입원해 계신 이야기와, 막내네 사는 이야기를 마냥 들어주며 서로를 위로해주는 시간이었다.

영랑생가 입구


전라남도 기념물 제 89호로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211-1번지에 있다. 최근에 강진군 영랑생가 입구로 오르는 길을 넓히고 주변을 정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외지인들이 해마다 많이 찾아오는 곳인데, 길이 협소하여 이용에 불편하다는 여론 때문인 듯하다.

사립문이 어린시절 우리집 대문과 비슷해서 없는 시심이 우러나올 지경이다.

영랑생가는 한국 초창기 문단의 거성 모란의 시인 영랑 김윤식의 생가이다. 선생은 1903년 1월 16일 이곳에서 김종호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영랑은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청산학원 중학부에 적을 두었으며 용아 박용철 선생과 친교를 맺었다. 1921년 일시 귀국하고 1922년 다시 일본에 건너가 청산학원 영문과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관동 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여 시문학 창작활동을 하였다.

1931년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정인보 선생 등과 <시문학> 동인으로 시작활동에 참여하여 같은 해 3월 창간호에 모란이 피기까지 등 4행소곡 6편을 발표하였고. 1935년에 <영랑시집>을 발간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복부에 포탄 파편을 맞아 9월 29일 서울 자택에서 47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영랑생가 안채

글방은 영랑선생 부친이 거처하였으며, 중마루가 있는 방은 영랑 선생이 사용하시던 곳이다. 1948년 가족이 서울로 이사하면서 남에게 팔았고 전매되면서 지붕이 시멘트 기와로 바뀌는 등 일부 변형되었으나 1985년 12월 강진군에서 매입하여 전라남도 기념물 제 89호로 지정하고 1992년 지붕을 초가로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내부에는 영랑선생 사진과 가구가 있고 부엌에는 예전에 사용하던 물건들이 놓여져 있다.

영랑생가 사랑채

방안에는 한복을 입은 영랑 선생이 책상에 앉아 책을 보는 모형이 놓여져 있다. 앞마당에는 은행나무가 있고, 집 뒤로는 대나무와 동백나무가 우거져 있어서 주변의 모든 것이 다 시인에게는 글감이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장독대 (강진에서는 장광이라고 한다.)

봄에 화려함을 자랑했던 모란이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영랑 선생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옮겨본다.

모란이 피기 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테요.

5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누워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해는 다가고 말아
삼백 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새암(샘, 우물)

영랑 선생과 가족이 사용하던 우물로 훼손되었던 것을 1993년 옛 모습대로 복원하였으며 1935년에 지은 <앞마당 맑은 새암을>이라는 시비가 눈에 보인다.
생가 주위에는 영랑 선생의 시가 적힌 시비들이 곳곳에 있다. 거기에 적힌 시들은 영랑이 살았던 시대에 사용하던 언어여서 지금과는 맞춤법이 많이 다르다. 하지만 언어는 늘 변하는 법 아닌가? 그 시대 그 언어로 적혀있는 시들은 나름대로 읽는 맛이 있다.

사랑채 앞마당에 당당히 서있는 은행나무

은행나무 아래에는 1938년 9월에 영랑선생의 <은행나무>라는 글이 적혀있다.

9월에 감이나 동백만이 열매이오니까. 오곡백과지요.
뜰 앞에 은행 나무는 우리 부자가 땅을 파고 심은지 17, 8년인데
한아름이나 되어야만 은행을 볼줄 알고
기다리지도 않고 있었더니 천만의외
이 여름에 열매를 맺었소이다.
... ...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 동서들

모처럼 만나서 밀린 이야기도 하고, 건강 문제나 자녀문제 등 을 나누고 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늘 아름다운 마음 잃지 않는 동서지간이 되길 바란다.

문간채

문간채에는 곳간이 두 군데, 옛날 화장실, 옛날 아궁이가 있다. 안에는 옛 농기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생가 입구에 있는 전통찻집

영랑의 시집이나 시가 적혀 있는 부채 등을 팔기도 하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눌 수 있는 곳이다. 남도답사 일번지라 하여 강진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중심에 영랑 생가가 있는 것이다. 소박한 영랑생가에서 아름다운 시심을 얻어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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