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도 '코리아' 아닌가요?

우리와 뗄 수 없는 숙명적인 관계

등록 2006.10.14 12:02수정 2006.10.1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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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거쳐 현직 검사로 있는 조카가 있다. 조카에게는 약사와 대기업에서 일하는 누이, 그리고 뚜렷한 직업이 없는 남동생이 있다. 그 남동생은 장애인이다.


현직 검사의 장애인 남동생은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장애인을 위한 직업 학교를 다녔던 게 교육의 전부다. 그런데 혼기를 앞둔 검사 조카가 사법연수원에 있을 때 본인뿐 아니라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그럴 듯한 혼처가 많이 나섰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이른바 ‘뚜쟁이’들로부터의 혼담 거래(?)였다. 조카가 마음만 먹으면 결혼할 수 있다는 여자들은 국내 굴지의 임원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로 소위 금력과 권력을 과시하는 혼처들이었다.

사실 검사인 조카네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 아니, 어려웠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오랫동안 변변한 직장 생활을 하지 못했고 어머니 역시 경제 활동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자식들이 공부를 잘해서 내로라 하는 전문직에 종사하게 되었지만 그런 직장을 갖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검사네는 여전히 어려웠다. 그러니 드러내놓고 말은 안 했지만 검사 어머니는 내심 부잣집 며느리를 맞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말이 좋아서 검사지, 검사 역시 뻔한 월급쟁이 공무원이 아니던가. 그러니 기왕이면 집이라도, 자동차라도 해결해 줄 수 있는 혼처가 나선다면 부모로서는 한 시름 덜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런 혼담이 오갈 때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물론 돈 많은 아가씨가 들어와서 처음부터 여유 있게 잘 산다면 나쁠 거야 없겠지만 OO(장애인인 검사 동생)이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부모가 끝까지 돌볼 수 없다면 결국 OO이는 장남 몫이 될 텐데 장애인 시동생을 사랑으로 돌볼 수 있는 마음씨 고운 아가씨가 들어와야 부모 입장에서도 안심하지 않겠는가.”

장애인 문제를 정부가 해결해 주지 못하고 전적으로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해서 그렇게 말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조카는 돈 많은 아가씨 대신 그 동안 함께 고시공부를 했던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결혼을 했다.



시시껄렁한 집안 이야기를 왜 이렇게 장황하게 하느냐고? 바로 잘난 형과 그렇지 못한 동생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같은 부모 뱃속에서 나온 자식이라도 이렇게 처지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잘났어도 못난 동생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말이다.

비약이 좀 지나칠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남북한 현실을 나는 잘난 형과 못난 동생으로 비유해 보려고 한다. 사실 이런 비유 역시 어찌 보면 적절치 못하고 가당치 않은 비유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국제 사회에서 눈총과 비난을 받고 있고, 제재라는 강력한 회초리까지 맞게 될 북한에 대한 안타까운 생각에 나는 못난 동생쯤으로 북한을 표현해 보려고 한다. 웬 동생이냐고? 우리는 원래 같은 민족 아니었던가.

"남한이냐, 북한이냐?"

미국에 살면서 종종 받는 질문이 있다. “어디에서 왔냐”는 의례적인 질문에 이어지는 질문이다.

“남한이냐, 북한이냐?”

처음 미국에 왔을 때에도 그런 질문을 받았었다. 그런데 십 여 년이 지나 다시 방문한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내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아니, 무식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한국은 올림픽에 월드컵까지 개최했고, 우리 자동차가 이곳에서 씽씽 달리고 있고, 우리 TV도 매장 앞 좋은 자리에 진열되어 비싼 값에 팔려나가고 있는데 어찌 구분을 못한단 말인가. 코리아라고 하면 그게 바로 한국인 것을 알아야지 어떻게 헷갈려 한단 말인가. 북한은 우리처럼 자유롭지도 않고 경제 역시 우리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데 말이야.’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미국에 와 보니 아직도 분단된 한국을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다. 별 관심도 없는 듯하다. 그러니까 교생선생이 내 아이에게 "반기문 신임 UN 사무총장 내정자가 너와는 다른 북한 출신 아니냐"고 물었다는 게 아닌가.

물론 정세에 밝은 이들은 코리아가 당연히 남한인 줄 알고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지도 않는다. 하지만 남한이라는 말도 사실 우리에게는 기분 좋은 말이 아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구상에 코리아가 두 개 있고, 같은 이름이지만 체제가 다른 두 국가가 엄연히 존재하는 만큼 구별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그러고 보면 코리아를 함께 사용하는 북한은 우리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숙명적인 관계인 것 같다.

요즘 미국의 TV와 라디오 헤드라인 뉴스는 온통 북한 이야기다. 핵 발사 실험이 있던 날부터 제재가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지금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바로 ‘북한’이다.

<타임>지 인터넷 판에 실린 기사
<타임>지 인터넷 판에 실린 기사타임
많은 북한 문제 전문가들이 나와서 비교적 정확한 발음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름을 거론한다. 이들은 김 위원장이 ‘미쳤고’ ‘편집증환자’라는 말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물론 부시의 외교정책이 실패한 것을 비난하기도 하고 향후 미국이 북한에 대해 어떤 조처를 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TV를 보면서 서울에 있는 특파원을 연결할 때면 솔직히 마음이 편치 못하다. 왜냐하면 비디오에 잡히는 격렬한 데모 장면과 보수단체 회원으로 보이는 사람의 거침없는(?) 사나운 말, 그리고 화형식 등이 마치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음이 불편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학교에 갔다온 애들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면서 편치 않은 심기를 드러낸다.

“엄마, 오늘 사회선생님이 수업하면서 북한의 김정일이 미쳤다고 말했어. 핵 실험을 했다고. 애들도 대놓고 북한을 심하게 욕하고. 수업이 끝난 뒤 선생님이 나한테 와서 '넌 남한에서 왔지?'라고 말했지만 좀 씁쓸했어.”

"어느 쪽 코리아에서 왔냐?"

북한은 정말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나라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종종 이곳에서 실감한다.

맥아더가 묻힌 버지니아주의 노폭(Norfolk)에 있는 박물관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곳에서 안내를 맡고 있는 한 퇴역 군인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는 우리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은 뒤 이렇게 말했다.

“남한에서 왔다고? 북한과 바로 이웃하고 있는 남한? 그런데 무섭지 않았냐? 다른 사람들도 너처럼 무서워하지 않냐? 나는 무서워서 남한에 못 간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딸기밭에서 만난 어느 할아버지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해서 충격을 받았다.

지난 봄, 딸기밭에서 어떤 할아버지를 만났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내게 할아버지는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니 역시 “어느 쪽 코리아냐”고 다시 묻는 것이었다.

“당연히 남한.”

할아버지는 마침 한국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하와이에 근무하고 있는 사위가 몇 년간 대구에 근무했다고 내게 설명을 했다. ‘대구’라는 어설픈 한국 말에 귀가 솔깃해진 내가 "사위 있을 때 한 번 오지 그랬느냐"고 말하자 할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딸기밭에서 만난 할아버지
딸기밭에서 만난 할아버지한나영
“사실 일본까지는 가 봤다. 하지만 한국은 별로 가보고 싶지 않았다.”

딸과 사위가 사는 한국을 굳이 마다한 이유를 묻자 할아버지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진지하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김정일이 무섭지 않냐? 그 사람은 미쳤고 럭비공처럼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다. 그런데 만약 한국에 갔다가 큰일(전쟁이라도 나서 미국에 못 돌아오는 상황)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냐. 한국은 일본과 비슷하지 않냐. 그러니 일본만 가봐도 되지 않느냐?”

물론 내가 만난 이런 특이한(?) 미국인들이 미국 일반의 정서를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잖은 사람들이 남한을 떠올릴 때면 그 생각 다른 한편으로 핵무기의 북한을 생각하고 있는 게 현실인 것 같다.

같은 '코리아'를 쓰고,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문화를 가진, 그래서 우리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숙명적인 관계인 북한에 대해 어떤 해법을 가지고 더불어 공존하는 법을 찾아야 할지 생각이 많은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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