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의 박물관에서 신라인을 만나다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 11] '장회태자묘 예빈도' 앞에서

등록 2006.10.13 18:34수정 2006.10.13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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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시내에 있는 '산시성 역사 박물관' ⓒ 오창학

시안 시내에 위치한 '산시성(陝西省) 역사 박물관'을 돌아보면서 이곳 어딘가에 있을 장회태자묘(章懷太子墓)의 예빈도(禮賓圖) 생각으로 가득하다. 한참을 지나 위층 전시실에 들어서는데 사진으로만 수없이 접했던 낯익은 그림이 보인다.

여행이란 이런 게 아닐까. 백만 번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접했어도 내 홍채에 그 현장을 담고 내 발로 그 땅을 딛었을 때의 느낌만은 상상하지 못하매 기어이 발품을 팔아야 하는 과정. 지금 그 발품으로 이 '느낌'을 누리며 그림 앞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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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대 실크로드 관련 전시실 ⓒ 오창학

장회태자는 당 고종과 무측천의 일곱째 아들 이현(李賢)을 말한다. 나이 22세에 태자에 봉해졌으나 불과 5년 만에 폐서인 되고 31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인물.

새삼 이 사람을 거론함은 그의 생애가 색다른 의의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묘 동벽에 그려진 객사도(客使圖) 즉, 예빈도(禮賓圖)라는 벽화가 한국 사람에 주는 각별한 의미 때문이다. 이 그림은 실제로 장회태자 생전에 외국의 사절을 맞이했던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그림 속 한 사내가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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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태자묘 발굴 예빈도 ⓒ 오창학

그림 왼쪽에 조복을 입고 홀을 든 세 사람은 안내를 맡은 당 홍려시(鴻臚寺)의 관원들이다. 뒤에 선 세 사람이 외국에서 온 사신인데 눈이 깊고 머리가 벗겨진 네 번째 사람은 동로마인으로, 여섯 번째 사람은 동북아시아 소수민족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조우관(鳥羽冠)을 쓰고 있는 다섯 번째 사람은? 바로 이 사람이 문제다. 복식과 용모로 보아 동아시아 사람임에 이견이 없다. 그러면 그 시대 어느 나라의 사신이었을까? 일본? 고구려, 발해, 백제, 신라?

일본은 최근 유난히 이 그림에 관심을 보인다. 일본에서 특별전시회도 열고 다섯 번째 조우관을 쓴 사람이 일본인이라는 논문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중국학자들 내에서도 대다수는 고구려나 신라인 중 하나일 것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으나 일본인으로 보는 사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중국 내 역사 연구에 미치는 일본의 자금과 활동력에 의해 동양고대사가 일본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이 판세는 또 어떻게 되어갈지 예측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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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빈도에 나타난 신라인의 얼굴. 기마민족의 전통인 조우관을 쓰고 있다. ⓒ 오창학

이 사신은 다른 자료에 나타나는 왜신(倭臣)과는 판이한 모습이어서 일본인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따르며 백제, 고구려 역시 장회태자가가 태자로 책봉되기 훨씬 오래 전에 멸망했으니(고구려마저 태자 13세 때인 668년에 패망) 그의 생전에 두 나라와 연관을 가졌으리라 추측키도 어렵다.

반면에 신라는 연대적으로도 측천무후 통치기에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새깃털(鳥羽)을 꽂은 관모(冠帽)에 붉은 고름, 넓은 소매가 있는 흰 포복에 속대를 찬 복식의 유사성이 있으니 가장 유력한 후보라 이르기에 무방하다. 사마르칸트 아프랍시압 궁전의 <신라사신도> 벽화와 같은 계보에 있는 그림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40분 넘는 시간을 오로지 예빈도 앞에서만 서성이고 있다. 한참은 진열장에 코가 닿을 듯 가까이 응시하고 또 한참은 반대편 벽에 기대어 멀찍이 바라본다. 1300여 년 전 해동국인이 뚜렷한 모습으로 서 있는 광경이 묘한 감정을 자아낸다(비록 모사품이지만. 실물은 박물관 수장고에 있다. 전시품은 발굴에 참여한 당창동(唐昌東) 화백이 그린 모사).

석상처럼 부동자세를 유지하던 박물관 경비병('경비원'이 아니라 스물이 갓 넘은 앳된 군인들이다)이 흘끔흘끔 곁눈질로 나를 본다. 궁금하기도 하겠지. 저 자는 왜 자꾸 이 그림 앞에서만 얼쩡거리나 하고. 그러나 그가 어찌 알랴. 이국에서는 자기 나라 여행객만 만나도 반가운 것이거늘 하물며 이역만리에서 옛 동포를 접하는 자별한 심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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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빈도 앞의 중국인 가이드들. 10여 팀 이상의 가이드 모두가 한반도와 관련한 인물로 다섯 번째 조우관 인물을 설명했다. 사진 맨 아랫쪽의 영어 해설 가이드는 "한국과 일본 중 어느 하나일 것"으로 설명했다. ⓒ 오창학

개인, 혹은 한 무더기의 단체들이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어떤 표정으로 무슨 생각을 짓는지 지켜본다. 혹여 가이드가 딸린 단체가 지날 때면 무리에 끼어 설명을 엿듣기도 한다.

영어는 서툴고 중국어는 젬병이니 소상한 내용이야 알 길 없어도 다섯 번째 인물을 가리키며 내뱉는 단어가 무얼 의미하는지 정도는 알겠다. '까오리'(高麗:고구려), '신루워'(新羅)라는 말이 가장 많이 들리고 '조신'(朝鮮:북한을 이르는 말이니 아마도 고구려를 의미할 듯), '한구어'(韓國:신라를 말하는 듯함)도 간혹 나온다. 영어로 설명하는 가이드는 '코리아'(Korea)로 통칭해 말하는데 한 여자 가이드는 '한국이나 일본 중 어느 한 나라일 것'이라며 제법 정확한 안내를 한다.

에릭님은 사신으로 조아리러 온 과거의 흔적에 불편한 감정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먼 곳에 그림으로 남은 굴욕의 역사. 그러나 유홍준 교수의 말대로 중국이라는 '대형할인매장' 옆에 조그만 '구멍가게'로 태생한 운명 그 자체에 대해선 어찌할 수가 없잖은가.

다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다른 영세 가게들이 대형할인매장 옆에서 망해 넘어가고 흡수 통합되어 갈 때 당당히 업소를 지키며 끊임없는 맥을 이어갈 수 있었던 구멍가게의 저력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조공무역'이라 하나 그것이 당시 외교의 한 형태였다고 할 때 저 그림의 사신이 속한 나라들이 일찍이 동서문명 교류사의 주역들 중 하나로 참여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이 점이 바로 일본이 예빈도의 인물 중 하나가 자국인임을 주장하는 이유다. 문명 교류사의 객체로서, 피동적 수용자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체적인 활동국이었음을 증명하고자하는 노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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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대의 여인상 ⓒ 오창학

박물관에 있는 당 대의 여인상들은 한결같이 풍만하다. 툽툽한 볼에 결코 잘록하지만은 않은 허리. 당 대 최고미인으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는 미인 양귀비의 외모를 말할 때도 '날씬함'이나 '쭉쭉빵빵'과 관련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호기심 많은 어떤 이들은 그녀의 요강 분석을 토대로 몸무게 83kg이라는 가설까지 만들어 냈다. 그 가설의 신빙성 여부를 생각지 않더라도 중국 내 석굴조각이나 불교미술에서 당 대의 작품임을 입증할 때 풍만하고 복스러운 체형을 내세우는 바, 당시 미인의 조건으로 통통한 체형은 기본이었을 것이다.

가치규범의 변화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미의 기준이 변한다. 굳이 당 대와 현대의 가치기준을 따질 것도 없다. 우리네 모습을 비추어 보더라도 40년 전과 지금의 미인은 얼마나 다른가.

'다이어트' 광기가 세상을 덮더니 그것도 모자라 퓨마새끼 닮은 '작은 얼굴' 신드롬이 득세를 하고 급기야 '동안' 열기까지 가세한 지금 사람의 관점에서 1000년도 넘는 세월 저 편에 있는 미인의 모습을 떠올리기가 어렵더니 여기 박물관의 여인상들에서 한 줄기 감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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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괘릉의 서역 무인상(좌)과 시안 박물관의 서역인상(우) ⓒ 오창학

여인들의 조상(彫像)들 옆으로 서역 남자상이 몇 있다. 그런데... 이건 경주 괘릉 앞의 서역 무인상이 아니냐? 갑주도 없고 칼도 휴대하지 않았지만 텁텁한 장비수염에 우뚝한 코, 튀어나올 만치 부리부리한 눈, 배와 허리에 닿은 주먹 쥔 손. 그리고 다리 사이의 옷 주름까지... 괘릉의 무인 석상은 당시 신라에 들어와 있던 서역인(상인이든 용병이든 간에)을 모본으로 한 것일까. 아니면 여기 박물관에 있는 것 같은 조상 하나를 들여와 석조로 크게 뻥튀기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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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의 저녁 ⓒ 오창학

한 생각에 빠져있었기 때문일까. 쉬 날이 저문다. 방학일정을 맞춘 아내가 오늘에서야 시안으로 날아왔다. 느낌이 이상하다. 하루 넘게 바다를 건너고 차량통관을 위해 톈진에서 며칠을 기다리고 또 그만큼의 날짜를 어렵게 달려 시안에 도착했는데 아내는 오늘 한국을 떠나 금세 이곳에 나타난다. 지난날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이 한 없이 어이없다.

약조한 시간보다 늦게(이 짠순이 아줌마가 센양(함양)공항에서부터 택시가 아닌 버스를 탔다)숙소 현관에 들어서는 아내를 보니 왈칵 반가움이 몰린다. 마음 같아선 안아주고 싶은데 그저 두 손 비죽이 잡아주는 게 고작이다. 바보.

이제껏 얼굴 보며 살았던 사람이 이토록 반가울까. 매일 맡는 공기는 소중함을 모른다. 부부도 떨어져 봐야 서로의 가치를 아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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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아내가 합류했다. 시안의 대표 만두점 '덕발장'에서의 만찬 ⓒ 오창학

중국인들이 흔히 말하길 "인생의 즐거움은 잠자는 것과 교자를 먹는 것"이라하니 교자의 본고장인 이곳 시안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지. 마님(아내의 팀 내 대화명)의 합류기념으로 덕발장 교자연(德發長 交子宴)에 들렀다. 만두로 채운 땡땡한 배만큼이나 불룩한 시안의 밤이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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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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