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89회

제노사이드

등록 2006.10.16 18:59수정 2006.10.16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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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서 가자.

아직 해가 지기 전인지라 때도 좋았고, 솟은 더 이상 망설일 수가 없었다. 늑대 떼와의 일전이 결코 만만하지는 않을 테지만 식량이 부족한 형편에 이것저것을 따질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차와 함께 이십 여명 정도의 사냥집단을 모은 솟은 돌과 몽둥이를 들고서는 늑대들이 잠들어 있다는 곳으로 자세를 낮추고 다가갔다. 바람도 불지 않아 어느 방향에서든 공격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지만 늑대의 예민한 귀는 무시할 수 없어 솟은 조심스럽게 공격계획을 지시했다.


-그차 넌 저쪽에서 저 놈들을 몰아라. 난 반대쪽에서 돌로 저 놈들을 잡겠다.

그차는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솟의 전술에 찬성하고서는 목소리가 큰 자들로 다섯을 골라 늑대들이 잠든 풀숲으로 허리를 최대한 숙인 채 조심스럽게 접근해 갔다. 그차는 경험으로 늑대가 확실히 위험을 감지할만한 거리를 인지하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한 거리까지 접근하자 그차는 벌떡 허리를 곧추 세우며 소리를 질렀고 그를 따르는 이들도 일제히 풀숲에서 솟아난 것처럼 일어나 마구 소리를 지르며 늑대가 있는 곳으로 달려 나갔다.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던 그차는 순간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달려가는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늑대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차가 자신이 이상하게 느낀 사실을 명확하게 깨달은 순간 그를 비롯한 다섯의 사람들은 손에 몽둥이를 든 채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그들의 앞에는 늑대들이 자리에서 일어선 채 으르렁거리며 사람들을 노려보고 서 있었다. 반대편에서 지켜보고 있던 솟은 그차가 움직이지 않자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는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을 모조리 일으켜서 늑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도록 소리쳤다. 어쩌면 솟이 달려가기 전에 그차는 늑대들에게 갈기갈기 찢기고 솟마저도 위험해 질지 모를 일이었지만 동료의 위험을 뒤로하고 물러서는 것은 솟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멈추어라. 여기 늑대들은 너희들의 동료이다.


솟의 귀와 머릿속에서 은은하게 의미가 담긴 외침이 전해져왔다. 솟 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솟은 그 외침의 주인공이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었다.

-키!


키는 늑대 무리 속에서 당당히 걸어 나와서는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켰다. 늑대들은 뒷발길로 땅을 파더니 그 속에서 덩굴째 딸려오는 덩이식물의 뿌리를 꺼내어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배가 고프면 너희들도 언제든지 땅을 파라. 내가 함께 하는 한 땅 속에는 너희들의 먹을거리가 항상 있을 것이다. ‘그날이 가까워 오고 있다.

솟은 키가 느닷없이 말하는 ‘그날’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돌로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땅속에서는 거짓말 같이 덩이식물이 나왔고 솟의 일행은 불을 지필 필요도 없이 그것으로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늑대 때와 더불어 솟 일행이 돌아오자 남아있던 이들은 놀라움으로 일제히 술렁거렸다.

-놀랄 것 없다. 이들은 우리의 동료다. 모두들 땅을 파서 배를 채워라.

그곳에서 땅을 파자마자 나온 덩이식물을 캐어서 맛을 본 이들은 모두 솟에게 경의를 표했다.

-내가 알아낸 것이 아니다.

솟은 이렇게 말했지만 키는 솟에게 다가와 조용히 읊조렸다.

-내가 알려주는 것은 곧 솟 네가 알아낸 것이다. 늑대 때를 쫓아 간 이들도 모두 네가 알려준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넌 모두에게 추앙받고 있다. 그리고 큰 힘을 거느리게 될 것이다.

솟은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묘한 거부감이 들었지만 키는 이조차 감지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리고 이 힘을 이용해 네가 살던 마을로 돌아가 수이를 구해내어라. 저 하쉬 짐승들의 조언을 따라라.

키는 멀찍이서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는 아누와 짐리림을 손가락질 해대었다.

-하쉬?

-그래 저 짐승들은 그렇게 부르면 된다. 저 짐승들은 네가 알던 짐승들과는 전혀 다른 무서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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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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