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을 노래할 줄 아는 농사꾼 시인

[서평] 임동천 시인의 시집 <수산리 사람들>을 읽고

등록 2006.10.20 14:43수정 2006.10.2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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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현
농민 시인하면 이상하게 내가 아는 시인들이 많다. 그전에 문학회 모임을 할 때 수시로 문학 기행을 가던 김용택 시인을 비롯해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정이 들었던 박운식 시인, 그리고 이름없이 진안 시골에서 시를 쓰고 있는 이규홍 시인, 그리고 이번에 시집을 받은 임동천 시인 등이다.

보통 농민문학도 농민들이 나오는 시를 쓰느냐, 농민들이 직접 시를 쓰느냐에 따라 성격이 많이 달라진다. 임동천 시인도 그중에 한 사람인데 진짜 농사를 전업으로 삼고 있는 농사꾼 시인이다.


평생 직업으로 전업농을 하는 농민 시인들이 왜 농사짓는 시들을 안 쓸까? 시인들은 대부분 서정적인 시들만 쓰고 자기들이 살아가는 농민들의 삶은 그리지 않는다. '농민 시인'이란 농사짓는 일을 시로 많이 써야 하는데, 서정적인 시들만 써대는 시인들이 많다. 그러나 임동천 시인은 수산리 사람들이란 연작을 쓰면서 농민들의 삶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시인들은 대부분 다른 일들을 많이 한다. 우리나라가 시를 써서 먹고 사는 일이 되지 않기 때문에 보통 직업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들이 시를 쓰는 사람들은 급히 드물다. 그것도 일하는 사람들이 시를 쓰는 건 마치 사대부 양반들이 노래하는 것처럼 관념적이고 정서적인 시들만이 난무하다.

순애 엄니
장에 간다고 나가
돌아오지 않네
순애 아부지
마누라 찾아 나가
돌아오지 않네
순애 취직해 공부한다고 나가
아직 돌아오지 않네
바람 불고 다 털린 산과 들
겨울이네
육덕이 그리운 집 한 채
배곯아 삭신도 못쓰고 기우네

- '집' 전문


수산리 사람들에 나오는 수산리는 행정수도가 오는 충남 연기지역 수용지구에서 약간 벗어난 주변지역인 조그만 골짜기 동네다. 이곳은 다른 골짜기와 다르게 끝이 막혀있어 공주 쪽으로 통하는 길이 없다. 막다른 골목처럼 동네가 끝에 자리한 조그만 동네다.


이 짧은 시에서 수산리에 사는 순애네 식구들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나가는 장은 분명 조치원 장일 거다.

임동천 시인의 시어에는 어떤 음악적 흐름이 있다. 거칠 것 없는 흐름의 판소리 같기도 하고, 시골 노인네들의 말투처럼 툭툭 던지는 식의 언어가 시에서는 느껴진다. 시인이란 언어가 풍부해야 한다. 이처럼 언어가 부드럽게 넘어가는 건 일상적인 삶을 직선적인 표현을 없애고 생활을 형상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동천 시인의 시에서는 서정적인 음률이 흐르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삶의 이야기가 나온다. '순애 엄니가 장에 가고, 순애 아부지가 마누라 찾아 나가고, 순애가 취직해 나가고 배곯아 삭신 못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또 다른 시를 보자.

상경하는 만회네 식구들의
마지막 발자국을 쪼아 삼키는
등이 흰 나무 묵은 까치
더 늙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만회 아버지는 뽀얀 오십여 해
툴툴 먼지로 떠났다
더 늦기 전에 떠나야 할 사람들로 가득한
마을 어귀에
까치는 익혀둔 얼굴을 종일 삼키고
떠나는 이들의 숨은 두려움이 어둠에 묻히자
전선 위로 날아간다
남은 사람들이 밝히는 등이 파르르 떨고
서두르는 잠자리는 불을 꺼도 그림자가 남는다
밤새도록 종답논에 올무채가 쑥쑥 자라고
발목잡힌 종손들 기침
어둠 가득 전착제로 살포되는 밤.

산 사람은 떠나고
송장만 들어오는 마을 어귀
행상집 너머 묵은 까치는
용케도 익혀둔 얼굴을 종일 뱉었다.

- '까치' 전문


임동천 시인은 청년기에 시골로 돌아와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남들은 청년기에 농촌에서 도시로 다 떠나는데, 임 시인은 농사를 지으러 시골로 돌아온 것이다. 지금은 담배농사와 논농사, 복숭아, 그 외 자질구레한 농사를 짓는 전업농이다. 집 옆에 축사도 지어 소도 기르고 해 남들은 농사지어 빚만 늘어난다는데 임 시인은 농사를 잘 지어 1년 수확이 쏠쏠하게 되는 걸로 안다. 그만큼 임 시인의 농사는 내실있는 농사인 것이다.

위 시에서도 나오듯이 시골은 상경하는 사람들이 많다. 산사람은 떠나고 죽어 묻힐 송장들만 행상집이 있는 시골로 기어드는 게 요즘의 시골풍경이다. 그만큼 사람들은 떠나고 혼자 시골을 지키는 시인의 외롭고 적막한 시골살이는 쉽지 않은 것이다.

'보도연맹', '보안법', '숲 이야기' 등의 시에서 보면 임동천 시인의 역사의식을 엿볼 수 있다. 인공이 판을 치고 전쟁이 나기 전 이곳에서 가까운 곳 은고개라는 곳에서는 인근에 사는 인공 때 사람들을 모아다 생매장해 죽인 곳이 있다.

보도연맹이라고도 하고, 그때는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구덩이에 묻혀 그 근처는 사람들이 얼씬도 못하게 해놓고, 다 죽였다는 은고개 사건이 임 시인이 살고 있는 바로 인근에서 벌어졌다.

사나흘 동안을 살려달라고 사람들의 아우성이 있었는데, 동네 사람들은 무서워서 그곳에 가보지를 못했다고 한다. 그때 인공 때는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각 지역마다 인민위원회를 조직하고, 동네마다 자치적으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특히 서면 쪽은 시베리아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인민위원회 조직이 성했고, 지금도 노인들을 만나면 생생하게 그때를 증언한다.

'보안법'에서는 순박한 어부 박씨가 납북되어 그쪽이 베푼 호의를, 그야말로 막걸리 보안법이라고 술자리에서 이야기하다 호되게 당한다. 언제나 조치원 경찰서 형사한테 감시당하며 살다 울도 담도 없는 바다를 그리워하고 술로 얼큰해진 어부 박씨는 그냥 그렇게 새로운 세상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다.

'숲 이야기'에서는 지게 지고 숲으로 들어간 아버지가 10년 늙어 돌아오셨다. 전쟁은 끝났지만 사람들은 더 사나워졌다고 했다. 전쟁이 끝나고도 이데올로기는 더욱 기승을 해 인공이라는 이유로 서방이 맞아 죽었다.

귀가

붕어빵을 사들고 집으로 간다
어둠은 무겁고 춥지만
누구나 희망의 안쪽은 36도쯤
식기 전에 먹이자고 잠바 품에 넣고
감싸며 아이들에게로 간다

추운 겨울 5일장이면
호떡을 품고 오시던 어머니
속이 터지고 쭈굴쭈굴해진 호떡
고맙다는 인사도 잊게 했던
그 맛
어머니의 흐뭇해 하시던 눈빛을
이제 알것도 같은데
식기 전에 먹이자고 서두는 걸음
자꾸 어머니처럼 절룩거린다.


내가 좋아하는 시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사가는 붕어빵의 따스한 정이 드러나는 시다. 식기 전에 잠바 품에 싸안고, 그 먼 장을 다녀오는 시인의 마음이란 농사를 짓는 농부의 평온하고 평화로운 마음이 아니면 이처럼 표현할 수 있을까?

시란 이런 아름다움을 표현해내는 것이다. 임동천 시인의 집 동천사에 가보면 집 구석구석에 이런 평화로움이 살아있다. 세상의 욕심이 없고 자연 그대로를 내 것으로 만들어 살아가는 임동천 시인이 부러운 뿐이다.

수산리 사람들

임동천 지음,
시문학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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