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놈에게 두들겨 맞아도 기분 좋아요

아들놈과 대련해 지고도 행복한 아빠의 이야기

등록 2006.10.20 16:51수정 2006.10.22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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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 1학년인 큰아들을 멀리 타지로 유학(특목고) 보내고 아내와 작은아들(초5)과 함께 단란하게 살고 있습니다.


사실 언제부턴지 작은아들이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말수가 적어졌고 우리 가족은 내가 퇴근을 해도 별다른 대화 없이 그냥 잠자리에 드는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일입니다. 이른 저녁, 나는 약간의 취기에 기분이 좋은 상태로 귀가했습니다. 작은아들은 숙제를 하고 있었고 아내는 TV와 씨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작은아들이 방에서 나와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라고 인사를 한 뒤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립니다.

저녁도 먹고 들어왔고 아들의 눈치를 살피며 “재원이 요즘 시험기간이지?”라고 묻자 “네”하고 그냥 잘라 버리고 책과 씨름을 합니다.

나는 별로 할 일도 없고 해서 어항에 물도 보충하고 화초에 물도 줘가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아들이 거실로 나와 인터넷을 켜며 얼마 전 ‘택견 전국대회’ 참가했던 사진을 블로그에서 불러와 보여주며 자랑을 했습니다.

아들은 “아빠, 은메달은 딸 수 있었는데...”하며 아쉬움을 털어놨고, 이에 질세라 아내 역시 “어머 전국대회에서 동메달이면 잘했지 뭐...”하고 칭찬하자 아들놈은 기가 살아 품세을 가다듬으며 “내가 조금 봐줘서 그렇지 이길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a 작년에 촬영한 아들놈 모습입니다.

작년에 촬영한 아들놈 모습입니다. ⓒ 정일응

나는 기회는 이때다 싶어 “재원이 아빠하고 한판 해 볼래?”라고 했고 아내가 “으이그 참아라 일낸다”며 말렸지만 이미 대련을 시작 된 터였습니다. 사실 나도 한때 태권도를 했던 사람이라 살살 공격을 했고 그때마다 무서울 정도의 반격이 들어왔습니다.

“덤벼! 덤벼봐!”를 외치며 왼쪽으로 한바퀴 도는 순간 아들놈 오른발이 호미걸이로 내 가랑이에 깊숙이 들어와 있어 피하려던 순간, 아들놈이 손바닥으로 내 가슴을 밀쳐냈고 나는 공중으로 붕 날라 문지방에 쳐 박혔습니다.


순간 눈앞에 별이 보이는가 싶더니 아들놈이 내 머리를 끌어안으며 엉엉 우는 것입니다.
“아빠! 귀에 피나… 엉엉… 귀가 잘렸어….”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아들은 겁에 질려 떨면서 급히 엄마를 부릅니다.

사태파악이 안된 나는 얼른 일어나 거울을 보니 아뿔싸 귓불이 마치 가위로 잘라 놓은 것처럼 1cm가량 찢어져 덜렁거리는 것입니다. 황급히 다가온 아내는 “그래, 내가 뭐라 했어. 하지 말랬잖아! 병원가자.” 이어 아들놈은 황급히 내 옷을 주섬주섬 챙겨 가지고 나옵니다.

아들놈 엄청나게 놀랬나 봅니다. 그때까지 울먹거리며 복도까지 따라 나와 “엄마 나도 같이 가면 안돼?”라고 말하더군요. 아내는 “안돼! 집지키고 있어 걱정하지 말고”라고 말한 뒤 부랴부랴 차 시동을 걸고 인근 병원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응급실에 당직의사 하는 말 걸작입니다. “여기서 꿰매면 흉터가 심하게 남을 테니 다음날 성형외과로 가서 수술 하세요.” 나는 그때부터 심각했습니다.

응급처치만 하고 돌아오는 길에 대학병원에 의사로 있는 처남에게 전화를 해보라고 아내에게 부탁하니 내일 오랍니다. 오는 길에 또 잔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뭐 전국대회는 아무나 나가나?”

그렇습니다.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들놈과는 뭔가 통했고, 이 계기로 더욱 진한 가족의 정을 느끼는 순간 이었습니다. 이제 아들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아빠가 돼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집에 도착했습니다.

“아빠 꿰맸어?”
“아니다 내일 삼촌한테 가서 수술해야 한데.”

걱정하는 아들이 안쓰러워 꼭 안아주고 잠을 청했지만 아내는 귀가 틀어진 상태로 굳어 버릴까봐 한숨도 못 잤답니다. 귀 틀어진 남편하고는 못산답니다. 출근 후 직원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고 나는 귀찮았지만 하나 둘 설명을 해야 했습니다. 바빠서 병원을 못가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자꾸 전화가 옵니다.

“오빠가 지금 병원에서 기다리고 있데, 빨리 가서 수술하고 와요.”

사실 별로 아프지 않아 그냥 두려고 했습니다. 주사 맞기가 세상에서 가장 싫었고 더구나 마취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에 병원가기가 두려웠던 것입니다. 오후에 병원에 도착하니 처남이 “어! 심각하네 실핏줄이 잘렸어.” 무조건 수술대위에 누워야 했고 30분이 넘는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별 통증은 없었지만 수술을 마치는 시간까지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회사로 돌아오는 1시간동안 가족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내가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그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또 가장으로서 집안을 이끌어 가는데 부족함은 없는지….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서니 제일먼저 아들놈 달려와 귀를 살피지만 붕대를 풀지 않아 환부를 볼 수는 없고 며칠 후에나 가능하다고 설명하자 미안했던지 갖은 어리광을 다 부립니다.

아들놈 갑자기 큰 도화지 위에 병원 수술실을 그리며 “나도 삼촌이 전공한 의사가 될 테니까 엄마 아빠 기다려….” 평소 처남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항상 의사가 되겠다고는 해 왔지만 전공 학과를 선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오늘(20일) 아침에는 출근을 서두르는 나에게 아들놈이 커피를 타서 가지고 옵니다. 생전 처음 아들놈이 타준 커피를 마시고 출근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경남뉴스연합에 함께 실려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경남뉴스연합에 함께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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