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통근으로 'H라인' 만들어 볼까?

넓은 들판 길을 자전거로 매일 출퇴근하는 나는 행운아다

등록 2006.10.20 17:00수정 2006.10.2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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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차가 없다. 차 운전도 서툴다. 우리 집에 있는 10년도 넘는 고물 소형차는 아내가 몰고 다닌다. 그래서 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버스를 타고 통근하였다.

요즘 내 통근수단이 바뀌었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벌써 한달 남짓 되었다. 자전거 통근을 하다보니 아침에 아내와 나누는 인사도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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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자전거 통근을 하며 자전거 타는 재미에 푹 빠졌다. ⓒ 전갑남

"당신, 조심해야 돼!"
"내가 어린앤가? 만날 조심하게!"

"조심해서 나쁠 거 없잖아요."
"포장된 논길을 달리는데, 걱정할 거 없어."

이런 일이 아니더라도 아내는 잔소리꾼이다. 어제는 학교에 일이 많아 껌껌한 길을 자전거 타고 오는데 부재중 전화가 몇 통이나 찍혔다. 행여 어두운 길에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늦으면 택시를 타고 오든지, 전화를 하면 자기가 차로 데리러 갈 것인데 위험하게 자전거를 타냐고 야단이었다.

"다른 거 다 필요 없어. 건강이 제일이야!"

장갑을 찾아 현관문을 나서는 데, 밖에까지 따라 나오며 끊임없이 잔소리를 한다.

"저녁에 회식 있으면 자전거 놓고 오세요. 술 먹고 자전거 타면 차 운전하는 것보다 위험한 거 알죠? 그리고 해 떨어지기 전에 오셔요. 그나저나 이참에 당신 뱃살이나 빠졌으면 좋겠어!"

어서 대문을 벗어나야 잔소리가 그칠 모양이다. 서둘러야겠다. 뱃살 이야기까지 나왔으니…. 하기야 뱃살이 빠져 요즘 하는 말로 'H라인'이 되면 오죽이나 좋겠는가? 오늘따라 페달에 힘이 들어간다.

한참을 달리자 매일 거의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 아저씨가 걸어오신다. 몸이 좀 불편한 분이시다. 반가운 인사만 건넸는데, 오늘은 아저씨께서 길을 막아선다. 자전거에서 내렸다.

"아니, 어디 사시는데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셔?"
"서구촌입니다. 아저씨, 아침마다 운동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할 수 없어 하는 거지, 뭐. 운동 삼아 타는가 봐?"
"아뇨? 출근하는 거예요."

"출근? 그럼 운동도 하고 너무 좋겠어!"
"땀 흘려 달리니 상쾌하고 좋아요."

아저씨는 어디에 근무하느냐, 나이는 몇이나 되느냐, 자전거로 학교까지 얼마나 걸리느냐는 등 궁금한 것을 죄다 물어보신다. 그간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만날 자전거를 타고 다닐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고 한다. 자기소개를 하고서는 말씀을 이으신다.

"나도 건강할 때, 운동을 많이 해둘 걸 후회가 많아. 술 많이 먹고 몸 관리 안 해서 지금은 몸이 좀 불편하지.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져 이렇게 걷게 된 것만도 얼마나 감사한 줄 몰라. 다른 거 다 필요 없어, 건강이 제일이야! 건강해야 애들도 잘 가르칠 것 아냐?"

말씀이 다 끝나시고 내일 또 만나자고 한다. 자기가 시간을 너무 빼앗은 것은 아니냐하시며 서둘러가라 한다. 아침부터 아저씨의 덕담을 들으니 기분이 좋다.

자전거 타기에 맛들이면...

힘차게 페달을 밟아본다. '지금부터 속력을 내볼까?' 있는 힘을 다해 속력을 내서 달려본다. 논길은 과속을 해도 걱정이 없다. 곧게 뻗은 길은 자전거가 달리는데 장애요소가 하나도 없다. 차량이 다니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들 보러 나온 사람이나, 달리기를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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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논길을 매일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있다. 이런 행운이 어디 있을까? ⓒ 전갑남

발에 힘이 들어가니 벌써 등허리에 땀이 밴다. 시원한 바람이 겨드랑이까지 파고드는데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나는 요즘 심한 50견을 앓고 있다. 오른쪽 팔이 아파 배드민턴, 테니스, 탁구 같은 운동은 염두에도 못 내고 있다. 그래서 걷기를 하거나 가끔 산행을 하는 것이 운동의 전부다. 운동량이 절대 부족한 셈이다. 이런 내가 자전거를 타고 통근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행운인가?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운동이 있다. 내게는 자전거 타기가 잘 맞는 운동이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타는 데 재미도 있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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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전거이다. ⓒ 전갑남

나의 자전거 통근은 꽤 오래전에도 있었다. 처음 교직에 몸담을 때 농촌학교에서 10여 년간 근무했다. 그 때 근무한 학교에서는 학생들도 자전거를 많이 탔을 뿐 아니라, 대부분 선생님들도 자전거를 통근수단으로 이용하였다. 20분 남짓 타는 거리라 자가용보다 훨씬 더 편리하였다.

광명시에서 4년간 근무할 때도 자전거 통근을 했다. 학교에서 10여분 거리를 뒷골목으로 자전거를 탔다. 그러다 이곳 강화에서 10년 넘게 살면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였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자전거 통근을 하기에는 너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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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기에 위험한 찻길. 차도가 좁고 사람길이 없다. 이곳을 달릴 때는 신경이 곤두선다. ⓒ 전갑남

올해 봄, 지금 근무하는 학교로 옮기고는 자전거 통근을 몇 번 시도해보았다. 거리상으로 좀 멀다싶지만 다닐만한 거리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찻길이 자전거 통근을 하기에 너무 위험했다. 시골 찻길은 차도가 너무 좁다. 우리 동네에서 근무하는 학교까지는 자전거전용도로도 없고, 덤프트럭 같은 큰 차가 지날 때면 겁이 날 정도이다.

한 달 전이다. 학교에서 일하는 기사 한 분이 자전거 통근을 시작했다. 집에서 자전거로 20여분 거리를 달리는데 너무 좋다며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기사님의 이야기를 듣더니만 우리 집과 가까운 동네 사는 선생님 한 분이 내게 제의를 했다.

"교감 선생님, 우리도 자전거 타볼까요?"
"난 위험해서 안돼. 그리고 자전거도 녹슬고, 버스가 나아."

"논길을 개발해보죠."
"그럼 너무 머잖아요."
"찻길이나 별 차이 나지 않아요. 한 40분 타면 되요."

나는 귀가 번쩍 띄었다. '40분 거리를 논길을 타고 간다?' 거기다 자기네 집에 자전거 두 대가 있는데 탈만하다고 1대를 끌고 와서 권하지 않는가? 이렇게 해서 내 자전거 통근은 시작되었다. 사람은 한 번 시작한 것을 맛들이면 거기에 미친 듯 빠지게 된다고 한다. 요즘 내 자전거 타기에 빠진 것도 그런 셈이다.

아! 황금벌판을 자연과 벗하며 달리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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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를 앞두고 있는 황금벌판이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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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가다 만나는 가을풍경이다. ⓒ 전갑남

황금벌판이 이제 야금야금 자리가 비어지고 있다. 콤바인 소리가 군데군데 들리기 시작한다. 아직 이슬이 가시지 않는 들녘이지만 부지런한 농부들은 벌써 추수할 채비를 하고 나왔다.

논길은 여러 가지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다. 며칠 전까지 만해도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더니만 요즘은 잠잠하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것은 사람만이 아닌 듯싶다. 풀벌레 소리가 들리지 않자 추수가 끝난 논에는 새들이 몰려왔다. 먹이를 쪼아 먹느라 정신이 없다가 내 지나가는 소리에 놀라 비상을 한다. 자기들 하는 일에 훼방부리는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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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판에서는 쇠기러기 군무를 볼 수 있다. ⓒ 전갑남

며칠 사이에 쇠기러기떼도 시꺼멓게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타작이 끝난 들판에 떨어진 벼 이삭은 녀석들의 먹이로 그만인 모양이다.

내 자전거 통근 길은 처음엔 마니산을 등지고 달린다. 그러면 진강산을 앞에 두고 곧게 뻗은 길이 너무도 호젓하다. 그리고는 기억자로 꺾어 우측의 수로를 따라 달린다. 이제는 석모도 해명산을 등지고, 전등사가 있는 정족산을 바라보고 달리게 된다. 뿌연 안개 속을 뚫고 달리다 보면 어느 새 정족산 위에는 붉은 해가 솟아있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자연과 호흡하며 달리는 출근길이 너무도 좋다.

논길을 다 벗어나면 신경을 곤두서야 하는 찻길에 다다른다. 찻길은 차도와 사람길이 구분이 없어 위험하다. 200m 남짓 가파른 길을 달려야 한다. 이때는 있는 힘을 다해 숨이 턱이 차도록 밟는다.

교문이 바로 앞이다. 나는 개선장군처럼 들어선다. 청소를 하는 학생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오늘은 한 녀석이 느닷없는 말을 꺼내 모두 깔깔깔 웃게 만든다.

"교감 선생님! 'D라인'이 이제 'H라인'으로 바뀔 것 같아요."

교무실을 들어가며 배를 만져본다. 정말 'D라인' 내 몸매를 'H라인' 아니 'S라인'까지 만들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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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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