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은 여러 갈래의 강이 모이는 바다 같은 것"

학자서 공무원으로 변신한 차인순 국회 입법심의관

등록 2006.10.25 14:21수정 2006.10.2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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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기자]“대학에서 여성정책을 전공하다가 3년 전 국회라는 정책 현장으로 활동무대를 옮겼을 때, 처음에는 정말 답답했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너무나도 명확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책에 금세 반영되지를 않는 겁니다. 하지만 국회의 속성과 특징을 알아가면서 그런 조급증은 많이 없어졌어요. 정책이란 ‘바다처럼 여러 갈래의 강이 최종적으로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립니다. 또 일단 만들어지면 현장에서 바로 적용될 수 있을 만큼 선명하고 정확해야 하기 때문에 다듬는 데도 시간이 걸리는 거지요.”

3년전 국회입성…"현장 연구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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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노민규 기자

지난 2003년 여성학자에서 입법 공무원으로 변신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이하 여가위)의 차인순 입법심의관(43·3급)은 요즘 부쩍 일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 국회 돌아가는 일에 익숙해진 데다 그가 2000년경부터 관심을 기울여온 '성(性)인지 예산' 문제가 여성정책의 주류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국회 개방 임용직에 도전한 것도 사실은 이 문제를 현장에서 연구해보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그가 지난 2004년 이화여대에서 받은 박사학위 논문 제목이 ‘예산을 중심으로 본 지방자치단체 여성정책에 관한 연구’이다. 서울시를 사례 연구한 이 논문은 예산 형성 과정을 통해 정책을 들여다보면 정책을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인지 예산평가가 중요한 이유는 성인지 정책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라고 차 심의관은 의미를 부여했다. 이 방식을 통해 여성정책뿐 아니라 일반 정책의 성별영향평가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가 기존의 여성정책과 함께 추구해오던 성인지정책은 지난 9월 국회에서 ‘성인지 예산제도’도입을 담은 국가재정법이 통과되면서 제도적 틀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나의 법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고도의 공동작업”이라고 소개하는 그는 위원회 소속 입법조사관이 올린 검토보고서를 함께 다듬는 입법심의관의 일이 일반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다이내믹하고 보람이 크다고 설명했다.

정부나 국회의원이 올린 법안이 타당성이 있는지, 다른 법률과 체계적인 연결성이 있는지, 실현 가능한지를 살피고 위원회의 최종 책임자인 수석 전문위원에게 넘기는 것이 그의 일이다. 물론 최종 선택은 국회의원의 몫이다.


17대 국회 들어 여성 의원이 두 배 이상 늘어나면서 여가위 위원들의 활동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해졌다고 차씨는 전했다. 법률로 제정된 숫자가 크게 늘지는 않았지만 성인지적 관점에서 법 개정이 많이 이루어졌고, 의욕도 훨씬 높다는 설명이었다.

앞으로 여가위가 중점을 두고 발의를 해야 할 문제로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등 3대 여성인권 문제를 꼽은 그는 앞으로는 법률을 그저 만들어내기보다는 수혜자들에게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가를 세밀하게 평가할 단계라고 강조했다. 법무부·경찰과의 횡적인 연대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여가부에서 피해자 보호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해요. 가해자 처벌과 재발 방지, 예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정부 부처 간의 횡적인 연대가 보다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는 “성과 관련한 폭력 문제는 유흥산업과 인터넷이 계속 번영하는 한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특히 어린이 성범죄와 관련한 아동용 수사 기법이 하루 빨리 도입돼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어린이들에게 어른을 대상으로 하듯이 수사관 입회하에 육하원칙으로 설명할 것을 요구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여가부·청소년위 통합 환영

여성가족부와 청소년위원회의 통합에 대해서는 환영하는 입장이다.

“두 부처가 합친다고 여성정책 기능이 약화되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린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여성정책 담당자들이 얼마나 열정과 비전을 갖고 일을 해나가는가에 달려 있어요.”

그는 여성가족부가 좀 더 진취적으로 여성정책을 밀고 나갔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서울대 가정관리학과 졸업 후 여성학으로 진로를 바꾼 그는 지난 1990년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마쳤다. 이후 당시 폭발적으로 일어난 여성학 붐을 타고 대학 강사, 연구소 연구원,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등으로 일했다.

“지난 80~90년대 많은 여성 관련 법과 정책이 만들어지고, 고위직에 진출한 여성도 늘어났지만, 대다수 평범한 여성들의 고단한 삶은 여전한 것 같아요. 여성운동이 여성노동자·농민, 여성빈곤 문제에서 시작됐는데, 아직도 이 문제는 풀리지 않고 있잖아요.”

인터뷰 내내 ‘정책이 적용되는 현장’, ‘정책 수혜자의 의견과 느낌’을 강조하던 그는 앞으로 여성운동이 오히려 초기의 문제의식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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