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병원조차 못가는 농아인들, 왜?

자원봉사자와 농아인분들에게 들은 장애인 복지 현실

등록 2006.10.27 16:31수정 2006.10.27 16:3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얼마 전 한 장애인 단체에서 <‘농’아줌마들의 신나는 세상 즐기기>라는 행사를 했습니다. ‘농’아줌마들이 누구지? 하고 궁금증이 생길 텐데요, ‘농’아줌마란, 농아인 아주머니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농’아줌마들의 신나는 세상 즐기기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스포츠활동, 뜨개질, 종이접기 등 재미를 위한 교육과 요리교실, 컴퓨터, 지혜나누기 등 유용한 체험교실에 농아인 분들이 함께하는 것이라 하더군요.

어떤 분들은 “취미활동이네!”하실 수도 있겠지만, 농아인분들에게는 정말이지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는 활동입니다. 세상과 소통하는 일, 비장애인분들이야 일상이 세상과 소통하는 일이니 별다른 의미가 없겠지만,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 세상과 소통한다는 것은 곧 삶의 전부이자 삶의 의미를 되찾는 정말 소중한 일입니다.

특히 농아인분들에게는 더욱 그 의미가 크다고 하더군요. 자원봉사자분들에 따르면,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분들이 삶에 의욕이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신경을 조금만 쓰면 그분들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애인 분들과 (통역을 통해)이야기를 해봤습니다. 역시 우리나라 복지, 그 중에서도 장애인을 위한 복지에 대해 메모를 다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은 비판을 하시더군요. 굳이 어떤 말들을 했는지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여러분들 다 아실 겁니다(물론 장애인 분들에 대한 복지뿐 아니라 복지 사각지대에 계시는 분들도 너무도 많다는 것도 압니다).

농아인분들을 돕고 있는 김아무개 수화통역사는 “농아인들이 사용하는 언어(수화)는 음성언어와 달라서 음성언어 중심의 우리 사회에서 농아인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며 “그래서 농아인들은 하루 종일 집에서 무료하고 답답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모든 장애인 분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농아인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도 바로 세상과 동떨어져 홀로 지내는 외로움”이라고 덧붙입니다.


농아인분들의 가장 큰 고충은 아파도 병원조차 못 가는 것

일상에서의 불편함이야 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많은 말 들 중에 아플 때의 외로움과 서러움이 가장 크다는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병원을 가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니 자신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증상을 말하지도 못하고, 또한 의사가 어림잡아 진찰을 한다 해도 또한 청각장애로인해 들을 수 없으니, 병원 가는 것이 엄두가 안 난다고 합니다.


농아장애인 한 분이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니 아파도 병원에 올 엄두가 나질 않는다고 합니다. 이 날 찾은 병원은 전북 군산에 있는 나운한방병원인데요, 사진 속 원장님은 그동안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등 장애인분들에게 무료로 진료를 해 주었답니다.
농아장애인 한 분이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니 아파도 병원에 올 엄두가 나질 않는다고 합니다. 이 날 찾은 병원은 전북 군산에 있는 나운한방병원인데요, 사진 속 원장님은 그동안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등 장애인분들에게 무료로 진료를 해 주었답니다.장희용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아인들은 혼자서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건 물론 단체로 진료를 받으러 다니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단체로 가면 수화로 통역을 돕는 자원봉사자분들에 비해 농아환자분들이 많기 때문에 일일이 증상을 설명하고 의사의 처방을 설명하는 등의 일들이 수월하지 않습니다.

나누어 가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가진 분들도 계시겠지만, 솔직히 단체 진료를 의뢰해도 기피하는 병원이 많아 몇 번에 걸쳐 나누어 진료를 받는 것은 더 어렵다고 하네요.

제가 간 날도 모 한방병원으로 단체 진료를 갔는데, 환자와 의사 사이에서 음성언어를 수화언어로 수화언어를 음성언어로 부지런히 번역해서 전해주는데, 정말이지 정신이 없어 보였습니다. 저도 뭔가를 돕고 싶었지만, 제가 수화를 하지 못하니 그 분들을 도울 길은 전혀 없었습니다.

어떤 농아인분은 자신의 증상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또 궁금한 사실이 많은지 자원봉사자 분을 계속 붙잡고 수화를 하려 합니다. 솔직히 비장애인들도 병원에 가서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는 데, 또 의사가 하는 말이 궁금해 물어볼 것이 많은 데, 속 시원히 자기가 자기 증상을 말하지 못하니 오죽이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삼 장애인 분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료가 다 끝나고 돌아오는 동안 차 안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김 통역사분은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가 법으로만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말로 장애인분들을 위한 복지정책을 펴려면 장애인분들의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현장에서 들어야 한다면서, 한 예로 오늘처럼 농아인들이 병원을 찾았을 때 그 분들을 돕는 수화통역사나 자원봉사자를 병원측에서 의무적으로 고용, 이를 정부가 지원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하더군요.

탁상행정 장애인 복지정책,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수화통역을 하시던 한 분은, 지자체에 한 곳 정도라도 병원에 수화 자원봉사자를 국가가 채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장애인 복지정책을 바로 이 같은 현장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것이라면서.
수화통역을 하시던 한 분은, 지자체에 한 곳 정도라도 병원에 수화 자원봉사자를 국가가 채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장애인 복지정책을 바로 이 같은 현장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것이라면서.장희용
지극히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애인 편의에 관한 법률 등이 제정돼 있다고는 하지만, 어디 우리나라에서 법대로 되는 일이 있나요? 기껏해야 보도블록 깔고, 공공기관에 보이기식 편의시설 몇 개 갖춘 것이 아마 전부일 겁니다.

그나마 이마저도 무용지물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왠지 아세요? 장애인 관련 시설을 설치할 때 장애인 분들과 논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부에서는 참여를 하는 곳도 있지만, 그 조차도 대부분 형식적인 경우가 많다고 하더군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국가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 주고 있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비장애인들보다 더 권리를 보호해줘야 할 장애인분들에게 국가가 무엇을 해 주고 있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흔히들, 탁상행정이라 하지요. 매년 복지예산은 조금씩 늘어난다고 하는데, 그런 점에서는 좋은 평가를 할 수는 있겠지만, 그 늘어난 예산만큼 얼마나 장애인 분들을 위해 효율적으로 집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할 수가 없을 것 같군요.

수치상으로 장애인 복지예산을 얼마 집행했다고 하지 말고, 정말로 장애인들이 필요한 복지정책을 현장에서 듣고, 이를 정책으로 만들었으면 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세상, 누군가 그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오지 않을 세상입니다. 오마이 뉴스를 통해 아주 작고도 작은 힘이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땀을 흘리고 싶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2. 2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3. 3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4. 4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5. 5 사다리 타고 올라간 동료의 죽음, 그녀는 도망치듯 시골로 갔다 사다리 타고 올라간 동료의 죽음, 그녀는 도망치듯 시골로 갔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