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중 3국이 빠른 시일 내에 6자회담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31일 발표했다. 사진은 미·북·중 대표들.연합뉴스
지난 10월 9일 북한의 핵실험 강행과 이에 대한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로 먹구름이 잔뜩 끼었던 한반도 상공에 모처럼 한줄기 햇살이 비춰졌다. 10월 31일 베이징에서 북-미-중 3국이 비밀회동을 갖고 이른 시일 내에 6자회담을 재개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우선 관심의 초점은 북한이 6자회담 복귀라는 선택을 하게 된 배경이다. 특히 북한은 그동안 6자회담 복귀의 전제조건으로 달았던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해제를 전제조건으로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크게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핵실험 이후 북한이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에 부담을 느껴 6자회담 복귀를 선택했다는 시각이다. 특히 한국과 중국 역시 부분적이긴 하지만 대북 제재 움직임에 동참할 조짐을 보이고 있고, 중국의 경우에는 지난 9월에 석유 지원을 중단한 것이 북한의 양보를 이끌어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북한 역시 핵실험을 강행할 때, 이 정도의 조치는 충분히 예견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4일 미사일 시험 발사를 강행했을 때,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안에 찬성한 바 있고, 한국 역시 쌀과 비료 지원을 중단한 바 있다. 그리고 미국 언론의 보도가 맞더라도, 중국의 석유 지원 중단은 핵실험 이전인 9월달에 일시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또한 북한이 10월 3일 핵실험 의사를 천명했을 때, 미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 중국, 러시아도 강경한 경고를 보낸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제재를 감수하면서까지 모종의 다른 노림수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핵실험은 6자회담 복귀 카드?
필자는 북한의 핵실험 다음날 '희망적 사고'를 전제로, 북한의 핵실험은 "핵 억제력" 확보라는 군사적 목적과 함께 6자회담 복귀 '명분찾기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노린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이는 북한의 궁극적 목표가 대미 관계정상화를 통한 생존에 있기 때문에, 이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이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다는 '양다리 걸치기'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이 그렇듯이 외교적 해결을 추구하면서도 외교의 실패에 대비하는 '양면 전략'(hedging strategy)을 북한도 추구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금융제재 해제 및 북미 양자대화 불가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고, 이에 따라 북한은 핵실험을 통해 핵 억제력 과시와 6자회담 복귀 명분찾기라는 나름대로의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미국의 금융제재가 해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6자회담에 복귀하는 것은 미국 주도의 압박에 굴복한 것 같은 모양새를 띠지만, 핵실험을 통해 핵보유국으로서의 모호성을 벗어버린 지금 전혀 다른 지위를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의 핵실험은 금융제재의 모자를 벗지는 못했지만 핵보유국이라는 새로운 모자는 쓰게 만들어, 미국이 주지 않은 6자회담 복귀 명분을 스스로 만든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핵실험 이후 부시 행정부가 이렇다할 태도 변화를 보여주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선택한 것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해준다.
북한, '협상 모드'로 전환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