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새 아파트야? 쓰레기장이야?

[고발] 입주 예정 아파트 훼손 방치...주공 "입주 전까진 문제 안돼"

등록 2006.11.01 14:56수정 2006.11.0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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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공사 자재와 쓰레기로 지저분한 아파트 내부. 입주자가 항의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그대로 방치돼 있다(제보자 제공).

공사 자재와 쓰레기로 지저분한 아파트 내부. 입주자가 항의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그대로 방치돼 있다(제보자 제공). ⓒ 오마이뉴스

a 지난 9월 말 촬영한 아파트 화장실 모습. 입주가 시작된 새 아파트단지 화장실이라고 믿기 어려운 모습이다.(제보자 제공)

지난 9월 말 촬영한 아파트 화장실 모습. 입주가 시작된 새 아파트단지 화장실이라고 믿기 어려운 모습이다.(제보자 제공) ⓒ 오마이뉴스

지난 8월 말부터 입주를 시작한 서울의 한 대단지 주공 아파트. 이 아파트 1층에 입주 예정인 김아무개(53·주부)씨는 지난 7월 21일 사전 점검차 자신의 집을 찾았다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누가 오랫동안 사용했는지 화장실엔 오물이 가득 차 있었고 양변기 물도 내리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다. 공사 자재들도 쌓여 있어 인부들이 작업장으로 사용한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입주가 시작되기 전이라 일단 시공사에게 모두 치워달라고 요구하는 선에서 강하게 항의하고 돌아왔다.

쓰레기장 같은 '새 아파트', 두 달 넘게 방치

두 달이 지난 9월 30일경 모든 게 정리돼 있으리라 믿고 다시 집을 찾았지만 상황은 더 심각했다. 작업 인부들이 철수하고 입주가 시작된 지도 한 달이 지났지만 화장실 오물은 여전했고 거실엔 나무 자재들도 그대로 쌓여 있었다. 사람들이 억지로 열려고 한 듯 현관 문짝 하나도 비틀어져 문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고 거실 벽지도 지저분했다고 한다.

a 집안 한 켠에 쌓여있는 공사 자재들.

집안 한 켠에 쌓여있는 공사 자재들. ⓒ 오마이뉴스

새 아파트에 들어간다는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던 김씨는 "어이없고 분한 생각이 들면서 여기에다 우리 가족을 어떻게 재우고 밥을 먹이나 싶어 울고 싶었다"고 당시 심정을 밝혔다.

차라리 집을 주공에 반납하고 중도금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생각에 지난 10월 초 주공에 항의했지만 담당자 태도는 더 실망스러웠다. 아직 잔금을 치르기 전이라 집 소유권은 시행사에 있어 법적 책임이 없고, 입주 전에 청소만 하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다.


김씨는 결국 사람들이 오염시켜 놓은 화장실 양변기와 벽지, 현관 문짝을 교체해 달라고 요구했다. 우여곡절 끝에 주공 측에서 교체를 약속했지만 이 과정에서 시행사와 시공사가 보여준 무책임한 태도에 김씨는 큰 상처를 받았다.

김씨는 "내 돈 내고 내 집 들어가려고 권리 주장하는데 소비자의 권리는 어디도 없고 생산자 편의 위주의 시스템만 강조했다"고 밝혔다.


10월 말 이사를 앞두고 시공사측에서 나무 자재를 치우고 양변기를 바꿔줬지만 훼손된 현관문과 지저분한 집 안 모습은 그대로였다고 한다. 결국 온 가족이 나서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이사했지만 화장실 등엔 여전히 찌든 얼룩이 남아 있는 상태다.

"잔금 전까지 주공 소유...법적 책임 없어"

a 1층 베란다 모습. 주공측은 조경공사 중인 인부들이 열린 베란다 문을 넘어 집안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1층 베란다 모습. 주공측은 조경공사 중인 인부들이 열린 베란다 문을 넘어 집안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시공사인 ㄱ건설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이미 현장에서 대부분 철수한 뒤라 연락이 되지 않았다. 시행사인 대한주택공사 측은 지난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입주자에게 불쾌감을 준 잘못은 인정했다.

주공 홍보실 관계자는 "조경공사 중이던 용역업체 인부들이 열린 베란다 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가 화장실 등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시공사에도 강력히 항의했고 앞으로 인부들을 철저히 교육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입주자 요구대로 양변기를 교체했고 일부 훼손된 벽지와 현관문도 하자보수 차원에서 교체할 예정이어서 더는 문제될 게 없다는 것.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불쾌감을 느낀 입주자의 편의를 봐주는 차원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입주자가 잔금을 치르기 전까지 집은 주택공사 소유이기 때문에 시행사에 법적인 책임은 없다는 것이다.

부동산 소송 전문 최광석 변호사는 "제3자에게 임대해준 게 아니라면 아파트 공사 과정에서 시설물을 사용하더라도 건설회사에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순 없다"면서 "다만 그 과정에서 시설물에 문제가 발생한 부분은 하자보수 차원에서 고쳐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a 서울의 한 주공 아파트 단지(자료사진).

서울의 한 주공 아파트 단지(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김연기


"주공 자체감리제도로 감시 허술...후분양제 절실"

하지만 입주자의 항의에도 훼손된 시설물을 두 달 넘게 방치한 것은 주공의 관리감독 허술 때문이란 지적이다.

경실련 시민감시국 김성달 부장은 "공사 과정에 시설물에 문제가 있어도 사전 점검이 형식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일단 다 지어놓고 뒤늦게 하자보수 개념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시공 과정에서 철저한 관리감독역할이 중요한데 주택공사의 경우 외부기관에 감리업무를 맡기는 민간기업과 달리 자체감리를 해 감시 체계가 허술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이런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김성달 부장은 "선분양제에서는 일단 분양이 끝나면 건설업체가 아파트 품질을 높이려는 노력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면서 "선분양제에서도 분양 계약과 동시에 입주자의 소유권을 인정한 것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소비자 감시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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