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우리 고유의 웰빙문화를 찾아서

담양의 정자에서 배우는 옛 선인들의 풍류와 생활의 지혜

등록 2006.11.02 15:06수정 2006.11.0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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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담양에 가면 정자가 많다. 면앙정, 송강정, 식영정 등 사방 수 km 이내에 포진해 있는 수 십개의 정자들은 대나무와 함께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송순의 면앙정가와 정철의 사미인곡을 비롯한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산파역할을 한 그 아름다운 시가들은 모두 이러한 정자 안에서 탄생하였다.

면앙정은 면앙 송순선생이 중종 28년(1533)에 봉산면 제월리 소재 제월봉 언덕에 이를 건립하고 면앙정가를 지은 바로 그 자리이다. 중앙에 겨울을 나기위한 방을 넣고 사방으로 대청마루를 깔았는데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어 넓은 아랫녘의 들판이 시원스레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너럭?바회 우에?松竹(송죽)을 헤혀고

                           亭子(정자)?언쳐시니 구름 靑鶴(청학)이

                     千里(천 리)를 가리라 두 나래 버렷? ?.

                          玉泉山(옥천산) 龍泉山(용천산) 내린 믈이

                     亭子(정자) 압 너븐 들?올올히 펴진 드시

                     넙든 기노라 프르거든 희디 마나



면앙정의 천장이다. 중앙에 길게 굽은 나무는 한옥용어로 충량이라고 하는데 이는 보의 일종으로 기둥과 그 위에 걸리는 대들보나 퇴보와는 달리 한쪽은 기둥, 나머지 한쪽은 대들보 위에 걸어 집의 뼈대를 형성하는 부재를 이르는 말이다. 수평과 수직이 생명인 한옥에서 지나치게 휘인 부재를 자연스럽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조상의 지혜가 엿보이는 광경이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스산한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가을 이후에 사용되던 방의 모습이다. 주로 한쪽으로 치우쳐 방을 설치하는 경상도의 정자와는 달리 이곳 전라도의 정자들은 대부분 중앙에 방을 설치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방식은 아궁이에서 불을 때기위해 마루의 한 켠을 조립식으로 설치하여 탈부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또한 난간(계자난간)을 받치는 둥근 부재들을 볼 수가 있는데 이것은 계자각이라는 것으로 초기에 설치된 것은 아니고 중수과정을 거치면서 변형된 것으로 보여진다. 전통적인 계자각의 설치를 위해서는 보다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는데 아마도 경제적인 이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한생 연분(緣分)이며 하날 모랄 일이런가.
                                       나 하나 졈어 잇고 님 하나 날 괴시니,
                                       이 마음 이 사랑 견졸 대 노여업다…

가사문학의 백미라 일컬어지는 사미인곡의 서문이다. 송강 선생이 바로 이 집에서 지은 글인데 면앙정과는 불과 5분 여 거리에 있으며 선생이 1585년에 지어 사미인곡을 쓰고 난 이후에 폐허가 되어 방치되어 오던 것을 그의 후손이 1770년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인데 죽록정은 송강정의 또 다른 이름이다. 방을 중앙에 두었지만 북쪽으로 치우치게하여 아궁이를 설치했다. 면앙정과는 달리 새로 지은 듯 주춧돌과 기둥 합각부 등 많은 곳에서 최근에 대대적인 보수를 거친 흔적이 엿보인다.



마루 밑에 있는 누하주와 주춧돌이다. 정자나 누각의 마루 밑에 있는 기둥을 누하주라고 하는데 누상주와 한 몸을 사용하는 경우와 상하 기둥을 분리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마루가 낮을 때는 상하를 하나의 부재로 사용하는 예가 많다.

자연석으로 주춧돌을 깔고 울퉁 불퉁한 돌의 표면 위에 기둥이 딱 붙어 있는 광경인데 이것이 바로 한옥을 땅과 고정시키는 절묘한 선조들의 지혜인 기둥의 '그렝이'라는 것이다. 현대건축에서는 상상도 못하고 외국인들은 아예 이해할 수도 없는 기법이지만 이것이 오히려 지진에 강하고 세계 최고의 목조 건축물인 황룡사9층목탑을(아파트 30층 높이인 82m) 탄생시켰던 우리만의 과학인 것이다.

또 오른쪽으로 둥글게 비어있는 부분을 엿볼 수가 있는데 이것은 구들방의 화기가 기둥에 전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고 흙벽과 격리되어 나무가 부식되는 걸 방지하기 위한 배려의 공간인 것이다.



이것은 무엇일까? 마루 밑의 기둥과 기둥 사이에서 발견된 모습인데 기왓장을 엎어서 공간을 만들고 있다. 반대편 쪽에 불을 때는 아궁이가 있고 아까처럼 기둥 옆에 화방시설이 있다면 분명 어디엔가 굴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변의 어디에도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굴뚝은 없고 특이하게 이 구멍만 볼 수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굴뚝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굴뚝을 높이 설치하여 그 집의 위용을 내세우려는 현대인들과는 달리 소박하게 낮은 굴뚝을 설치하여 밥짓는 연기를 아래로 보내 마당에 깔리게 하여 굷주리는 이웃을 배려하고 또한 신선이 구름을 탄 양 도를 즐기던 선조들의 기발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나무는 마룻장을 받치는 동바리 기둥이다.

담양에는 이 두 정자 외에도 식영정, 독수정, 소쇄원, 명옥헌 원림 등 지척에 많은 정자와 원림들이 포진해 있다. 현재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알게 모르게 서구화 되어가고 있는데 서구지향 식의 웰빙만이 잘살아 가는 길이 아님을 깨닫고 조상들의 정기가 서린 이런 옛 것을 찾아 가족과 함께 주말 나들이를 하면서 보고 느끼며 배워보는 것도 괜찮은 웰빙인 듯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SBS U포터에도 함께 싣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SBS U포터에도 함께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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