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경희대에서 열린 윤금이 10주기 추모제 <금이의 마지막 편지> 공연장면.
권우성
윤금이는 케네스 마클이라는 그녀를 죽인 미군병사의 술 취한 조롱 혹은, 그녀의 몸을 찔러댄 우산대나 콜라병보다 더 많은 아픔을 이미 그녀를 학대했던 세상으로부터 받아 삼켰던 것이 확실했습니다.
빈농의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갓 마치고 취직한 구로공단이나 청계천, 성수동 방직공장, 커피값도 못 되는 일당에 갖은 잔병에 시달리다 때로는 사창가에 몸을 의지하기도 했던 그 시대 우리 누이들의 고단한 행적을 생각하면 윤금이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독약같은 세상의 아픔을 토해내는 그녀들의 신음소리가 사랑의 상대를 찾아 헤매는 보산리의 저녁에도, 내가 어릴 적 치기로 훔친 양색시 누이들의 밤에도 있었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 해 가을 윤금이의 상처 깊은 죽음은 내 유년기 동두천에 대한 기억과 추운 자취방의 몇날을 거쳐 울림이 작은 노래가 되었습니다.
'보산리 그 겨울' (노래 이지상)
좁다란 골목 뒤 계단에 늦은 별빛이 떨어지면
그 고운 두 눈 입술 위에 화장을 드리우고
누구에게 배워본 적 하나 없는 낯선 이방의 말 읊조리며
누굴 찾아 집을 나서니 가로등 너머 이방의 땅
무슨 잘못이 네게 있어 그 슬픔 모두 남겨두고
무슨 잘못이 네게 있어 그렇게 아프게 떠나갔니
보산리 그 겨울에 남겨둔 상처가 너무 많아
그 추운 겨울 지나 봄을 찾아 떠나갔니
너 떠나간 그 빈 거리에 늦은 별빛이 떨어지면
지워져도 잊을 수 없는 우리들 슬픈 그림자
세상 속에 노래가, 예술이 있다
때로 예술가란 존재는 고집은 뱀같은 동물처럼 다른 곳을 볼 줄 모르고, 자신의 작품에는 베짱이처럼 관대하며, 자존(自存)을 지키기 위해선 외나무다리의 염소처럼 싸울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회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예술가들의 존재를 특별하다고 여기는 것은 그들이 품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인식과 고민의 폭이 남 달리 넓다는 것을 용인하기 때문입니다.
게릴라와도 같은 위험한 상상을 통한 예술가들의 위대한 소통 능력은 한 시대의 환부를 꿰매기도, 해부하기도 하며 막강한 대중적 지지를 토대로 사회를 진보의 단상 위로 끌어올리기도 합니다. 진보의 역사 위에는 늘 그 시대를 대표할만한 예술가와 작품이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예술가의 고집이나 자존은 세상으로부터의 단절과, 독립된 자기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세상과의 불화(不和)속에서도 적극적인 치유의 방식을 찾아 나서는 순례자의 고통 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예술가의 예지적 능력 또한 스스로 만들어내는 상상력 보다 사회와의 관계로부터 부여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 합니다.
삶에 대한 경외와 노래가 만날 때
누군가 '험난한 노래의 길'이란 표현을 했습니다. 이는 사랑이든 이별이든 그 어떤 추상명사이든 개인의 사소한 감정을 말하기보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마주하는 보편적 정서를 끌어내기 위한 고민이 담겨진 표현입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의 사랑은 삶의 저변에 깔려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들춰내고 또 그 고통과 연대하며 결국은 그 고통을 넘어서고자 하는 가장 아름다운 투쟁의 모습일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 '험난한 노래의 길'을 찾는 과정을'삶에 대한 경외'라고 얘기합니다. '험난한 노래의 길' 속에서 만나는 고통과 희열, 분노와 사랑의 에너지를 오선지속의 선율로, 가슴속 깊은 폐부의 음성으로 토해내는 창작자가 있습니다. '험난한 삶의 길'에서 창작자와 같은 개인적, 사회적 경험을 공유하고자 노래를 찾는 수용자가 있습니다.
이 둘에게 '삶에 대한 경외'라는 말은 함께 적용되며 음악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이 둘의 만남 사이에는 눈물이라는 감동의 최고치가 경계에 놓이게 되는 겁니다.
김중미의 <거대한 뿌리>를 읽으면서 내 기억의 조각들을 훑고 지나가는 문장마다 쏟아냈던 저의 감동이나, 윤금이씨 추모제때 불렀던 '보산리 그 겨울'에 손수건을 적셨다고 하던 어느 한 여성 운동가의 눈물은 한 시대를 아파한다는 동일한 경험 속에서 만난 '삶에 대한 경외'의 산물이겠지요.
레지스탕스와 반체제 활동으로 구금과 석방, 그리고 정치적 망명까지 해야 했던 그리스 최고의 음악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나 민중의 한과 슬픔 분노를 노래하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망명까지 해야 했던 아르헨티나 민중의 목소리 '메르세데스 소사'. 혹은 미국의 지원 아래 이뤄진 군부쿠데타 시기에 오직 노래했다는 이유로 손목이 부러진 채 숨진 칠레의 혁명가수 '빅토르 하라'의 음악이 그 당시에는 물론 여전히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희망이 되는 이유도 여기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노래듣고 울어보기, 어려운 숙제인가요?